언제든 다시 개헌논의 있을 때 꼭 문화권 강화해야
시기상조 우원식 의장의 대국민 개헌 담화
현행 헌법은 38년 차에 접어들면서 급변을 거듭한 한국 사회를 충분히 반영할 수 없었다. 이에 개헌 논의는 오랜 시간 정략적 혹은 당위적 차원에서 지속되었다. 최근 12.3 내란을 기점으로 여야, 정치 원로, 시민사회, 학계 일부가 다시 개헌의 목소리를 높였다. 주로 대통령 4년 중임제, 책임총리제, 의원내각제, 양원제 등 권력구조 개편안이 제시되며 윤석열 파면 심판 기간 내에, 혹은 차기 대선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 흐름은 우원식 국회의장의 대국민 담화로까지 이어졌다.
개헌 논의는 언제든 불거질 수 있는 이슈이지만, 윤석열 파면 후에도 내란 종사자들이 여전히 완벽히 단죄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담아야 할 개헌을 성급히 추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국민의힘이 헌법을 개정하는 논의에 참여함에 따라 위헌 정당 심판 프레임이 급격히 퇴색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헌의 가장 이른 적기는 국민의힘이 해산에 준하는 상황에 이른 후 열리는 내년 지방선거라고 봐야 한다. 그러니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민의힘을 제외한 각 당의 대선후보에게 당선 이후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받는 정도로 입장을 조정하는 것이 적절하다.
언제든 불거질 개헌 논의, 왜 ‘문화권’은 빠져있는가
현재의 개헌 논의는 권력구조 개편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나, 기본권에 대한 논의도 분명 다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간 기본권과 관련한 화두는 대형 참사의 반복과 기후위기 문제를 고려한 안전권, 환경권 그리고 자기정보 통제권과 정보 독점과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정보권, 평등권 항목에 차별금지 사유 세분화 명시 등이 있다. 또한 재산권과 관련된 토지공개념 명문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내세운 노동권 강화와 같이 논쟁적인 부분도 존재한다. 이처럼 새로운 헌법을 위해 다양한 기본권 논의가 전개되고 있지만, 문화권 논의는 전무한 상황이다. 국회의장 직속으로 2024년 11월에 출범한 ‘국민 미래 개헌자문위원회’에 참여한 30명의 위원 중에도 문화 전문가는 없었다.
1948년에 UN 총회가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이 경제, 사회적 권리 외에도 문화적 권리를 실현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했다. 또한 2001년에 유네스코는 문화가 “사회 혹은 사회적 집단의 특유한 정신적∙물질적∙지적∙감성적 특성의 총체”이며 “예술 및 문학뿐만 아니라 생활양식, 공존의 방식, 가치 체계, 전통 그리고 신념을 포함”한다고 정의했다. 이처럼 2차 대전 이후 그 중요성이 계속 강조된 문화는 한때 복지의 한 영역 정도로 취급되어 위상이 높지 않았으나, 오늘날에는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독립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 이는 문화가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권으로서의 위상이 더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 헌법은 전문에 언급된 문화국가론이나 언론·출판의 자유 및 검열 금지 내용과 같이 자유권의 범주를 통해 간접적으로 문화권을 다루는 수준에 그친다. 이 측면에서 차후 개헌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면 문화권을 독립적으로 명시하고 강조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문화권을 강화할 수 있는가
문화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헌법의 전문, 총강이 담긴 제1장, 주권자의 권리와 의무가 담긴 제2장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헌법이 제정된 배경과 목적을 제시하는 기존 전문에서는 문화와 관련해 대한민국이 각 국민으로 하여금 문화에 대한 기회 균등을 누리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함을 명시한다. 일면 전문에 담긴 문화에 대한 내용은 큰 무리가 없지만, 오늘날의 상황에 비춰 보면 그 의미가 협애한 측면이 있다. 오늘날의 문화는 단순히 국가 주도의 보호와 지원을 받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주도하는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럼에도 현행 헌법은 이러한 문화의 역동적 전개를 반영하지 않는다. 또한 기존 전문은 문화의 문제를 개개인의 문제로 수렴함으로써 공동체 차원의 다양한 문화의 발현을 포괄하지 않는 한계도 있다. 따라서 차후 전문에서는 문화의 자율성, 다양성을 강조하는 내용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총강 제9조에는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ㆍ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부분은 민족에 대한 개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이주민, 다문화 가정 등이 늘어나면서, 전통적인 ‘민족’ 개념만으로 문화를 온전히 정의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제9조에서의 ‘민족문화’는 문화 다양성의 관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 보장에 ‘국가의 의무’ 보완해야
자유권에 해당하는 표현의 자유를 포괄적으로 명시한 제2장 제21조(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는 엄밀히 문화권으로 분류하기 어렵지만, 유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더 보완될 필요가 있다. 관련한 문제로는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부터 윤석열 정부의 '윤석열차' 검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콘텐츠 규제, 유튜브·SNS의 계정 삭제 및 차단, 가짜뉴스 규제 추진 등의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권력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됨을 더 명확히 강조하기 위해 제21조 1항을 “국가는 표현의 자유를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찬가지 맥락으로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명시한 제22조 1항은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지며 국가는 이를 보호해야 한다”로 수정할 수 있겠다.
문화 향유와 참여 등 보장하는 별도 문화권 조항 논의 필요
마지막으로, 헌법 제2장에서 개선된 전문과 총강의 내용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문화권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이는 문화권을 기존 자유권·사회권의 일부로 간접 처리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문화 그 자체의 가치와 자율성을 헌법적 차원에서 인정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문화 향유와 참여, 창조적 표현의 권리, 문화환경에 대한 접근성을 포함하는 조항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고문헌 교수는 자신의 논문 「문화헌법에 관한 비교헌법적 연구와 헌법개정안」(2019)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제안한 바 있다.
“①모든 사람은 문화생활을 누리고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②국가는 모든 국민이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 표현과 활동을 하고, 문화적인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증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③국가는 문화유산 및 공동체문화의 보존·계승 발전을 위해 법률에 정하는 바에 의하여 지원해야 한다.”
이 조항은 문화권을 단지 복지의 일환으로 보지 않고, 표현의 자유, 정체성의 다양성, 문화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핵심 권리로 재정립하려는 방향성을 담고 있다. 따라서 향후 개헌에서 이와 같은 별도 조항이 신설된다면, 문화권의 위상을 시대의 흐름에 맞게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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