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서울국제도서전 사태 어물쩡 넘겨서는 안 돼

홍태림 미술비평가 문화연대 집행위원
홍태림 미술비평가 문화연대 집행위원

최근 송경동 시인이 12.3 내란의 책임을 묻는 예술행동 ‘국민의 힘 해체쇼!’와 관련하여 집시법 상 소음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국가수사본부의 강제수사 대상이 되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를 민주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저지하여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는 사실이 무색해지는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이 기사를 읽은 후, 쓰린 마음을 안고 뉴스 포털의 스크롤을 내리다가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을 인터뷰한 <한겨레> 기사를 바로 접할 수 있었다. 그 기사에는 주로 2023년 서울국제도서전 파행에 대한 비화가 담겨있었다. 그렇다, 송경동 시인이 대통령실 경호원들에게 사지가 들려 쫓겨나는 사건이 발생한 그때 그 도서전이다.

 

2023년 6월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송경동 시인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논란이 있는 오정희 소설가의 2023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 임명에 항의하고 있다.(사진출처: 연합뉴스)
2023년 6월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송경동 시인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논란이 있는 오정희 소설가의 2023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 임명에 항의하고 있다.(사진출처: 연합뉴스)

블랙리스트 관련자 홍보대사 임명, 강제 퇴거 당한 문화·예술인들

서울국제도서전 홈페이지에 실린 표어 ‘출판과 출판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담는 그릇’은 당시 도서전 개막식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장면과 함께 파산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행에 관여했던 인물인 오정희 소설가는 2023년 도서전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기 위해 입장권까지 구매해 도서전에 입장한 문화·예술인들은 김건희 경호를 이유로 현장에서 강제 퇴거 당했다. 출판인과 작가, 독자의 소중한 축제에서 버젓이 자행된 이 폭력은 국가권력이 주권자의 정당한 표현의 자유를 탄압한 사건이었다. 사실 이 사태는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로부터 비롯되었다. 당시 다수의 문화·예술인이 블랙리스트 책임자의 홍보대사 위촉을 철회하라고 거듭 요청했지만, 출협은 도서전에서 국가폭력이 발생한 후에도 여전히 좌고우면했기 때문이다.

 

“출판과 출판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담는 그릇”임을 강조한 대한출판문화협회 소개문(사진출처: 서울국제도서전 홈페이지)
“출판과 출판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담는 그릇”임을 강조한 대한출판문화협회 소개문(사진출처: 서울국제도서전 홈페이지)

앞선 <한겨레> 인터뷰에는 대통령실의 외압으로 인한 2023년 도서전 개막식 무대 디자인 변경 및 슬로건 조정, 그리고 문체부와의 2년에 걸친 법적 다툼이 무혐의 종결된 것과 관련된 뒷이야기와 소회가 담겼다. 관련하여 윤철호 회장은 도서전 무대 배경색 변경이 대통령실의 외압에 따른 것이며, 자신은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문체부 국·실장에 대한 고소 이후, 문체부로부터 출협이 지속적으로 불이익을 받았다고도 회고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출협이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대응했다가 불이익을 받았던 과거까지 다루는 인터뷰 자리에서마저도, 출협이 오정희 소설가 홍보대사 위촉을 강행한 것이나, 2023년 국제도서전 개막식 현장에서 벌어진 국가폭력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로 인해 파행된 당시의 도서전에 대해 협회의 대표가 진심 어린 성찰을 유보했다는 점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조각 하나로 출판의 자유 수호할 수 있는 것 아니다

출협은 2024년에 이태호 작가가 제작한 ‘책을 지키는 사람’을 건립하며 민주주의와 출판의 자유를 수호하겠다는 메시지를 다시 강조했다. 출협은 이 동상을 세우기 이전에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국가권력의 부당한 개입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적이 없다. 그리고 당시 출협이 블랙리스트 책임자를 홍보대사로 기용한 과정과 배경을 철저하게 진상조사한 후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 방지책을 수립하여 공개하라는 문화·예술계 요구도 수용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책을 지키는 사람’은 민주주의를 담는 그릇인 출판이라는 가치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출협의 지난 과오를 별다른 성찰 없이 덮기 위한 가림막으로써 존재한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한출판문화협회 건물 입구에 설치된 '책을 지키는 사람'(2024). 좌대에는 “민주주의와 출판의 자유를 위해 희생된 모든 이들을 기억하며”라고 새겨졌다. (사진출처: 대한출판문화협회 홈페이지)
대한출판문화협회 건물 입구에 설치된 '책을 지키는 사람'(2024). 좌대에는 “민주주의와 출판의 자유를 위해 희생된 모든 이들을 기억하며”라고 새겨졌다. (사진출처: 대한출판문화협회 홈페이지)

물론, 윤철호 회장은 2023년 도서전 이후 문체부와의 갈등 속에서도 출협을 지키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힘써온 인물임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2년에 걸친 문체부발 보복성 수사를 견디며 협회를 지켜낸 그의 노고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더욱 묻게 된다. 왜 블랙리스트 책임자가 다시 공적 무대에 등장하도록 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초래한 결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입장 표명과 협회 차원의 수습책을 마련하지 않았는지를 말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 출협이 이제라도 민주주의를 담는 그릇인 출판의 자유를 위해 2년 전에 문화·예술 현장이 제시한 요구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한발 나아갈 수 있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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