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점·약점·기회·위협(SWOT) 분석으로 본 청사진
강점-디지털 플랫폼 장착한 K-문화, 빠른 성장기조
약점-전통문화 자존감, 민간 후원 메세나 문화 결여
기회-경제적 효과 넘어 '소프트파워' 확대할 호기
위협-정책의 정치화, 안팎서 흔드는 역사 정체성
『대한민국 보수는 왜 매국 우파가 되었나?』 의 이병권 작가가 새정부 출범에 즈음해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 ‘왜, 지금 문화강국인가’의 문제 제기와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담대한 기획, △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여정에 놓인 강점·약점·기회·위협(SWOT) 분석, △ 문화강국 길의 노정도 등 3편으로 나누어 게재한다. 한국메세나협회에서 10년간 사무처장을 지낸 경험을 토대로 웅숭깊은 제안을 내놓았다. <편집자 주>
문화는 한 사회의 가장 입체적인 상징입니다. 단순히 경제력과 군사력을 반영하는 것을 넘어, 그 자체 고유의 매력과 창의적 정신이 꽃피우지 않으면 경제력과 군사력은 단지 강자의 자만을 드러내는 데 머뭅니다. 따라서 어느 시대나 문화는 반드시 그 사회의 가치와 정체성을 드러내는 거울 역할을 합니다.
고대 아테네, 르네상스 시기의 피렌체와 베네치아,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중심이 된 뉴욕 모두 그 시대를 상징하는 문화적 시대정신의 산물이었습니다. 공통점은 민주주의와 개방성, 사상의 자유, 이를 뒷받침하는 재정 기반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모든 요소를 가능케 한 것은 ‘민주주의와 공화정의 정신’이었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개방과 다양성에서 비롯됩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만 창의성과 예술, 인간성의 총체적 진보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작고한 미국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Joseph Nye)는 이러한 문화적 영향력을 ‘소프트파워(soft power)’라 정의했습니다. 소프트파워는 강제력이나 경제적 보상에 의존하지 않고, 문화와 가치, 정책의 매력으로 타국을 끌어들이는 힘입니다. 대한민국이 문화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핵심 요소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문화강국으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퇴보할 것인지, 경계에 서 있습니다. K-콘텐츠는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전 세계를 매료시키는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으나, 동시에 여러 한계도 노출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취약성, 전통문화 및 가치의 퇴색, 정책의 일관성 부족, 기업과 개인의 후원 부진 등 구조적 한계가 문화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문화강국으로 가는 중층적 도전에 직면한 우리는 과연 어디에 서 있으며,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냉철히 점검해야 할 시점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대한민국 문화정책과 문화 환경의 현주소를 진단하기 위해 SWOT 분석(Strengths, Weaknesses, Opportunities, Threats)을 동원합니다. 강점, 약점, 기회, 위협의 각 요소 간 유기적 연계를 모색하여 우리가 가진 강점을 어떻게 기회와 결합시켜 극대화할 것인지, 약점은 기회를 통해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위협은 강점으로 어떻게 상쇄할 것인지 교차 분석함으로써 문화강국 전략의 구체적 조건을 도출해 보고자 합니다.
강점
한국은 이미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강력한 문화 파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K-팝, K-드라마, K-영화, K-게임을 넘어 이제는 K-뷰티, K-푸드로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한류는 일시적 유행을 넘어 상당 기간 세계인들을 사로잡을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K’ 브랜드는 문화 수출 산업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OTT, 소셜미디어 등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퍼진 K-문화는 첨단 디지털 기술력과 결합하여 전례 없는 성장 동력을 제공합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한국의 문화 자산을 강력한 사회의식과 결합한다면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보편적이면서 독창적인 감동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인프라는 문화 창작과 유통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구조적 강점입니다.
약점
구조적 약점도 존재합니다. 무엇보다 전통문화예술에 대한 인식 부족이 심각합니다.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인 철학과 가치, 역사에 대한 자존감 결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식민지 경험과 독재체제를 거치면서 아직 극복하지 못한 결과로 보입니다. 전통공예와 미술, 종교 미술과 건축예술은 서양과 비교해 수준이 낮다는 선입견에 짓눌려 연구와 개발을 소홀히 했습니다. 여전히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실입니다.
전통문화는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 중심의 주류 문화에서 배제됐으며, 지금도 교육과 정책에서 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합니다. 아울러 문화예술에 대한 무조건적 후원을 뜻하는 '메세나(Mecenat) 전통'이 매우 취약합니다. 대다수 문화예술 지원이 정부와 지자체에 의존하는 가운데, 민간 영역의 후원과 투자는 일본과 비교할 때 크게 부족합니다. 일본이 공공 30% 민간 70% 비율이라면, 우리나라는 그 정반대로 공공 70%, 민간 30%에 불과합니다. 이는 정치적 예속의 위험뿐 아니라 예술의 자율성과 창의성 저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문화정책이 정권 교체 때마다 단절되고 새로 시작되는, 구조적 비일관성이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기회
그럼에도 외부 환경은 한국 문화에 기회의 창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고, 정부도 문화 수출 50조 원 시대를 선언하며 지원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AI, VR, AR 등 첨단 기술과의 융합은 문화산업의 형태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닙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디지털 기반 콘텐츠 소비가 일상화되면서 한국의 디지털 강점이 더욱 돋을새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대규모 투자 계획은 구체적인 실행 방안 부재와 정치권력의 개입 및 통제로 인해 창작 의지를 위축시키고 권위주의 분위기를 확산시킬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윤석열 정부의 반정부 문화인 탄압 사례는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사례입니다.
위협
국제 경쟁 또한 매우 치열합니다. 문화 획일화의 위협, 정치 불안에 따른 정책 지속성 결여, 미국·중국 등 강대국의 문화 전략 강화는 한국 콘텐츠가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한류가 단발성 열풍에 그칠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국내적으로는 문화 다양성 축소와 공공정책의 정치화가 자유로운 문화 생태계를 억압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특히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과거사 왜곡 시도는 한국의 역사적 정체성을 위협하며, 이에 맞설 국내 역사학계의 주체적 대응력 부족은 역사 정체성을 시민 중심으로 바로잡는 데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강점 × 기회
SWOT 분석은 각 항목이 독립된 요소가 아니라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전략적 활용 가치가 큽니다. 다음은 그 교차 결합적 전략 방향입니다. 대한민국이 보유한 K-콘텐츠, 디지털 기술력, 창의적 문화 생산 역량은 매우 강력한 경쟁력입니다. 이를 글로벌 문화 수요 증가와 디지털 플랫폼 확산이라는 기회와 결합한다면, 문화 수출을 뛰어넘어 문명적 영향력 행사가 가능합니다. 조지프 나이의 ‘소프트파워’ 개념처럼 물리적 강제력이 아닌 문화와 가치, 매력으로 세계를 사로잡는 전략은 한국이 직면한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새로운 외교·안보 전략으로도 작동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K-콘텐츠의 생산·기획·유통 단계에서 문화 다양성, 인권, 지속가능성 등 보편적 가치를 자연스럽게 담아낼 수 있는 생태계 구축이 필수적입니다.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지속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과 산업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초예술에 대한 공공 지원과 민간 후원 활성화, 예술가의 자율성 보장이 절대적으로 요구됩니다.
약점 × 기회
전통문화와 역사적 자산에 관한 연구와 교육의 강화는 위기이자 기회입니다. 한국 문화가 단지 한류 콘텐츠에 머무르지 않고 깊이 있는 문화정체성 확립으로 이어지려면 고유문화의 재발견과 현대적 재해석이 필수입니다. 민간의 문화예술 투자를 활성화하는 한편, 정부 지원의 한계를 극복하는 실질적 방안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마지막 장에서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첨단 디지털 기술과 전통문화의 융합은 한국만의 독특한 콘텐츠를 창출할 가능성을 높입니다. 예를 들어 VR을 통한 고궁 체험, 전통음악의 현대적 편곡, 한국적 미학이 반영된 게임 콘텐츠 등입니다.
강점 × 위협
한국 문화산업의 글로벌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이에 따른 정치적 외압과 국제적 경쟁, 내부 분열에 대한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문화정책의 정치적 독립성과 예술계 자율성 보장, 국제 문화 교류 확대를 통해 외부 위협을 내부 강점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요구됩니다.
약점 × 위협
문화 다양성 축소, 역사 왜곡, 정치적 간섭 등은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문화산업 전반이 위축되고 국민의 문화적 정체성 혼란이 가중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학계, 문화예술계가 연대하는, ‘시민 사학적’ 접근으로 역사와 문화의 민주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문화강국으로 도약하려면 단기적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장기적인 전략을 구축해야 합니다. 전통과 현대, 공공과 민간, 기술과 예술,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토대 위에서 균형 잡힌 문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민주주의와 문화가 결합할 때 비로소 국민 모두가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진정한 문화강국이 실현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치권과 행정은 문화 자율성 보장에 최우선을 두어야 합니다. 민간과 시민사회가 적극 참여하는 메세나 문화투자의 환경 조성을 서둘러야 합니다. 과거 식민지 잔재 극복과 민주화 투쟁을 통해 다져진 한국 사회의 역량을 기반으로 대한민국은 ‘문화강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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