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노트르담, 신앙의 빛과 전쟁의 그림자
호치민시 중심부에 우뚝 솟은 사이공 노트르담 대성당.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 성당은 1863년부터 1880년까지 17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이 베트남을 식민지배하면서 자신들의 신앙을 이 땅에 심으려 했던 결과물이다. 멀리서 보면 웅장하고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 뒤에는 억압과 고통의 역사가 깊이 자리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 이 대성당은 프랑스인들의 종교적 요새였다. 베트남 신자들은 성당에 들어갈 수 없거나, 들어가도 후미진 구석에 앉아야 했다. 프랑스인의 신앙은 귀했지만, 베트남인의 기도는 천대받았다. 종교의 이름으로 또 다른 차별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베트남의 신자들은 이곳을 찾았다. 이방의 신을 섬기면서도 자신들의 영혼을 지키려 했다.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자, 성당은 전쟁의 폭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폭탄이 떨어졌고, 총알이 스테인드글라스를 뚫고 날아 다녔다. 사람들은 대피소처럼 이 성당으로 몰려들었다. 신앙의 장소는 생존의 피난처가 되었다. 기도하는 할머니 옆에는 죽음을 앞둔 군인이 앉았고, 아이들의 울음은 포성에 묻혔다. 전쟁은 신의 집까지도 자비하지 않았다.
오늘날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다. 복구되지 않은 곳도 많다. 그것은 역사를 잊지 말라는무언의 증언이다. 성당 앞 광장에는 마리아 상이 조용히 서 있다. 천사의 얼굴로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전쟁 중에도, 그 후에도 이 동상은 변하지 않았다. 혹시 마리아는 베트남 인민의 눈물을 삼키며, 신앙의 희미한 불빛을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 풍자 만화가이자 교육자인 고경일 교수(상명대 만화애니메이션학부)가 동아시아 각국을 직접 발로 누비며 그 땅의 풍경과 역사,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그리고 쓴 그림과 글로 담아내는 <동아시아 기억여행>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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