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2.75%로 동결…경기 부양은 뒤로
원화 급등락…예측하기 힘든 환율 흐름
관세 전쟁에 국내 정치 불확실성 여전
올해 성장률 전망치 추가 하향 불가피
12조 추경 성장률 0.1%p 높이는 효과
금통위원 6명 “3개월 내 금리 인하 필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으로 세계 공급망이 바뀌면서, 전 세계 성장률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관세) 효과가 없더라도, 1분기 정치적 불확실성이 생각보다 오래 이어져서 5월에 발표될 성장률 전망치는 상당히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한은) 총재가 17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 2.75%로 동결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한은은 이날 배포한 ‘경제 상황 평가’ 보고서에서도 “1분기 성장률이 2월 전망치 0.2%를 밑돈 것으로 추정된다. 소폭의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1분기에 대규모 산불이 발생할지 몰랐고, 정치 불확실성이 오래 갈지도 몰랐다”며 “미국 관세 충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전망치가) 애초 예상보다 나빠질 것 같다”고 경고했다.
한국은행도 “1분기 마이너스 성장” 이례적 경고
해외 투자은행(IB) 중에는 한국의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한 곳이 있다. 노무라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의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고, 한국은행 경제성장률 전망치 역시 5월에 큰 폭의 하향 조정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일부 해외 투자은행은 올해 한국의 성장률을 0%대로 낮췄다. 하지만 한국은행마저 역성장을 언급한 건 이례적이다. 이창용 총재의 발언 수위로 보면 1분기 마이너스 성장이 확실한 듯하다.
한국 경제는 내수 경기침체 장기화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 전쟁으로 매우 힘든 처지다. 이 때문에 성장률이 떨어지면 중앙은행은 통상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리는 게 순리다. 하지만 지금 금리를 인하했을 때 예상되는 역효과가 더 크다는 게 한국은행 판단이다. 원/달러 환율의 급변동과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아 금리를 내릴 타이밍이 아니라는 뜻이다.
원화 하락 추세 멈췄지만 여전히 불안한 환율
최근 환율은 다소 안정됐다지만 여전히 변동성이 큰 편이다.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화가 약세로 바뀌며 원화 가격도 달러당 1410원 대를 오르내리는 중이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 이전에 달러당 1300만 원대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던 시기에 비하면 원/달러 환율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롤러코스터를 탈 만큼 환율은 불안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창용 총재는 이를 두고 “갑자기 어두운 터널로 들어온 느낌”이라는 비유로 설명했다. “불확실성이 전례 없이 커졌다. 미국 관세정책 강도와 주요국 대응이 급격히 변하고 있는 만큼 전망의 기본 시나리오조차 설정하기 어려울 정도다. 향후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
이 총재는 경기 부양의 필요성이 있는 만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야 한다는 소수의견도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다수 금통위원은 정책의 불확실성과 자본의 유출입, 금융안정 등을 고려해 당분간 지켜보자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오세훈 헛발질에 집값 들썩이며 가계부채 비상
가계부채도 한은이 금리를 동결한 주요 요인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강남권에 대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했다가 다시 지정하는 과정에서 서울 일부 지역 집값이 들썩이고 있다. 이는 주택담보대출과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한은은 지난달 27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최근 일부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서 주택가격이 다시 빠르게 상승하고 여타 지역으로 확산하는 움직임”이라며 “안정세를 보였던 가계부채 증가 폭이 다시 확대될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주택 거래와 가계부채 사이에 시차가 있는데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 전에 주택거래량이 증가한 영향이 몇 개월 뒤 나타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창용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경기 부양에 대한 요구를 의식했는지 조만간 금리를 내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금통위원 6명 모두 3개월 내 기준금리를 연 2.75%보다 낮은 수준으로 인하할 가능성 열어둬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관세와 국내 정치 불안으로 원화 저평가
이 총재는 정부가 추진하는 추가경정예산(추경)과 관련해서는 말을 아꼈다. 적정한 추경 규모를 묻자 구체적인 숫자를 밝히지 않고 “구조적으로 재정적자로 연결되지 않도록 일시적 지출로 한정해서 하면 좋을 것”이라고만 했다. 다만 추경을 12조 원 규모로 집행하면 0.1%포인트 정도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은행은 정부지출승수를 0.4~0.5로 보고 있는데 정부 지출을 1원 늘리면 국내총생산(GDP)이 1.04~1.05원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원/달러 환율 수준에 대해선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에 비해 원화 가격이 더 내려간 것으로 봤다. 본질 가치보다 평가 절하됐다는 것이다. 트럼프 발 관세 전쟁의 불확실성이 거치면 원/달러 환율이 더 떨어질 여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총재는 환율 변동성이 줄어들려면 미국 행정부 관세정책이 어떻게 될지,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수용할지 보복할지 등이 정해져야 한다고 했다. 그 결과에 따라 미국의 물가와 성장, 통화 정책이 바뀌고 이는 달러 가격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미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 외에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어떻게 해소될지에 따라서도 환율 흐름이 달라질 것이라고 이 총재는 강조했다.
관련기사
- 최상목, 추경 찔끔 증액…그마저도 기업 지원용
- 오세훈의 규제 완화 헛발질에 투기꾼만 꼬였다
- 한은, 성장률 전망치 1.5%로 낮춰…"여차하면 1.4%"
- 금리 동결로 기우는 미국…한국은행의 선택은?
- 트럼프, 파월 사임 종용에 '금융시장 붕괴' 우려 고조
- 미·중 무역 전쟁에 한국 골병…경제성장률 ‘반토막’
- 겨우 버텨온 0%대 성장률 결국 '마이너스' 전환
- “돈 갈취 비행 청소년 상대하는 것같은” 대미 관세협상
- 윤 정부 3년에…'국민소득 4만달러 꿈' 말짱 꽝 됐다
- 롤러코스터 탄 환율…'대선 개입' 사법 쿠데타가 변수
- "트럼프 관세, 독인가 약인가" 미 연준-백악관 격돌
- 한은도 올해 0%대 성장 전망…"금리 내려 경기부양"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