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의 상속세 완화 추진과 상반
상속재산 10억이면 상속세 1억 적정
5억 상속받아도 5% 정도 세금 내야
현행 세제 각종 공제로 부담 줄여줘
한국 상속세 실효세율 10~20% 불과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 경제단체와 자산가들은 집값이 급등하며 상속세가 중산층 세금이 됐다고 주장한다. 서울과 수도권에 아파트 한 채만 있어도 상속세를 내야 할 판이라며 엄살을 부린다. 그러나 일반 국민은 전혀 다른 인식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상속세를 완화할 게 아니라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상속세 명목세율은 50%로 높다. 하지만 각종 공제 등 감면 혜택을 받으면 실효세율(실제 조세부담률)은 10~20%로 낮아진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상속재산이 많을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는 누진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국민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 재계는 부자들을 대변해 상속세 완화를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국민 여론과 정반대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달 27일 발간한 ‘조세재정 Brif’ 178호에는 최근 발표된 재정패널조사(16차년도)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총상속재산 대비 적성 세부담 인식’ 보고서가 게재됐다. 이에 따르면 상속재산 10억 원에는 10% 세율을 선택한 응답 비율이 많았고 상속재산 5억 원일 때도 5% 세율이 적정하다는 응답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에 대해 연구원은 “응답자들은 상속세가 실제보다 덜 누진적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를 보면 상속재산 3억 원에 대해 비과세(세율 0%)하자는 비율과 세율 5%를 선호한다는 비율이 비슷한 것으로 조사됐다. 상속재산의 액수가 적어도 어느 정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국민 인식이 깔린 것이다. 다만 상속재산 1억 원에 대해서는 비과세 답변이 우세했다.
부자들과 일반 국민의 상속세에 대한 인식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은 명목세율과 실제로 납부하는 세금간 괴리가 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현행 상속세제는 일괄공제(5억 원)와 배우자공제(5억 원)가 각각 적용돼 10억 원 이상에 대해 과세되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 국민이 주변에서 이를 목격하다 보니 상속세를 강화하자는 의견이 많은 것이다. 더욱이 상속세를 내는 대상은 전체 국민의 극소수에 불과하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3년 상속세 과세 대상 피상속인(사망자)은 약 2만 명이다. 통계청이 조사한 사망자 약 35만 명의 5.7%에 그친다. 집값 급등으로 서울과 수도권에 한 채만 있어도 상속세를 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과장된 주장임을 알 수 있다. 상속세 완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주로 자산가들이고 정치적으로는 보수성향이 많다. 이에 대해 연구원은 “진보성향 응답자들은 10억 원 이상 상속재산에 대해 2~5%포인트 더 높은 세율을 선호하는 반면 보수성향 집단에서는 200억 원의 유산에 2%포인트 낮은 세율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상속세의 명목세율은 선진국보다 높은 편이다. 기업 최대주주가 상속받을 때는 20%를 할증한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한 제도다. 이를 근거로 재계에서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상속세를 과세하는 국가라고 주장한다. 정부와 여당도 여기에 동조해 상속세 완화를 밀어붙였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에 막혀 상속세 완화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으나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러나 명목세율이 아닌 실효세율은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높지 않다. 나라살림연구소가 추정한 2023년 기준 상속세 과세 가액 대비 실효세율은 약 23%였다. 최상위 1% 피상속인은 실효세율이 10% 내외였고, 상위 2%는 실효세율은 7%대 그쳤다. 상속세율은 소득세와 재산세를 비롯해 관련 세금 체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뒤 적정성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 명목세율이 높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완화를 주장하는 것은 국민 정서와 상반되고 논리적으로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세계적으로 거액 자산가와 기업가 등 초부자들이 세금을 너무 적게 낸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다. 누진 세율을 너무 약하게 적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와 여당, 재계와 자산가들이 주장하는 상속세 완화는 세계적인 흐름에도 역행한다. 상속세의 세부 항목에 불합리한 점이 있다면 이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세금을 더 감면하는 쪽으로 상속세제를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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