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 혜택 받고 지배력 강화하고 '일거양득'
공익재단의 주식 보유 기업 수 6년 만에 3배
38개 중 15개 재단서 총수 일가가 요직 차지
주식 자산 늘었으나 현금 기부는 30% 줄어
재계·여당 “공익재단 면세 확대해야” 떼쓰기
재벌기업 소속 공익재단들이 계열사 보유지분을 크게 늘리고 있으나 정작 계열사들은 기부금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공익재단이 핵심 계열사의 지분을 늘리는 것은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공익재단의 본래 목적이 계열사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사회공헌에 쓰는 것인데 총수 일가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전락한 셈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대한상공회의소 등 재계와 국민의힘은 공익재단이 사회공헌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이유를 규제 탓으로 돌리고 있다. 상속·증여세 면세 혜택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적고 공정거래법 등 여러 규제가 재단의 기금 마련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계와 여당 주장대로 규제를 풀면 공익재단을 통한 재벌 총수 일가의 지배력은 더 강화될 게 뻔하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는 30대 그룹 소속 공익법인들이 국세청에 제출한 결산 서류를 전수 조사한 보고서를 13일 공개했다. 공익재단들이 자산총액에서 계열사 주식 비중을 늘리고 있는 데 비해 계열사 기부금은 줄어들고 있다는 게 요지다. 리더스인덱스는 “지난 2017년 이후 경영권 승계가 가속화하면서 소속 공익재단들이 보유하는 계열사 주식이 늘어났고, 특히 상장회사와 해당 기업집단의 대표계열사 보유지분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총수 일가가 세제 혜택을 받고 설립한 뒤 이사장 등의 직책에서 지배력을 행사하며, 보유주식이 총수 2세 출자 회사 등 기업집단에 대한 지배력과 관련된 회사에 집중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공익법인 38개 중 15개에서 총수 일가가 이사장 혹은 이사 등 요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계열사 주식이 공익법인의 수익원으로써 기여하는 역할은 미미했다.
30대 기업 공익재단은 2017년 35개에서 지난해 38개로 증가했다. SK그룹의 최종현학술원, GS그룹의 허지영장학재단, 카카오의 브라이언임팩트 등 3개 공익법인이 추가됐다. 38개 공익법인이 보유한 주식의 기업 수는 2017년 76개에서 지난해 234개로 6년 만에 3배 이상 증가했다. 이들 공익법인의 자산 구성에서 주식자산 비중은 38.1%로 국내 공익법인 전체 주식자산 평균의 5배에 이를 만큼 높았다. 공익법인 보유 주식기업 중 계열사는 106개로 전체의 45.3%를 차지했으나 이들 기업 주식자산은 전체 주식자산의 93.1%에 달했다.
주식자산 비중은 커졌으나 계열사들의 기부금은 2017년 2392억 원에서 지난해 1688억 원으로 29.4%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기부금에서 계열사들이 출연한 기부금 비중도 낮아졌다. 2017년 공익법인 전체 기부금 2518억 원의 95.0%인 2392억 원이 계열사에서 나왔으나 작년에는 전체 기부금 2263억 원 중 계열사 비중이 74.6%(1688억원)로 하락했다. 반면 해당 기업을 통한 공익법인의 지난해 배당수익은 1937억 원으로 2017년 608억 원 대비 218.6% 늘었다. 공익재단이 보유한 주식의 기업 수가 3배 이상 늘었으니 이는 당연한 결과다.
30대그룹 소속 공익법인 중 총자산에서 특수관계가 있는 계열사 주식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SM그룹의 ‘삼라희망재단’이다. 총자산의 93.5%가 계열사 주식이었다. 삼라희망재단은 SM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계열사인 삼라의 지분 18.87%와 동아건설산업 지분 8.71%, 에스엠스틸 지분 3.91%를 보유하고 있다. 이사장은 우오현 SM그룹 회장의 맏딸인 우연아 삼라농원 대표가 맡고 있다.
삼성그룹의 삼성복지재단이 90.4%로 계열사 주식 비중이 두 번째로 높았다. 삼성복지재단은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토지와 삼성SDI 지분 0.25%, 삼성물산 지분 0.04%의 주식을 출연해 있었으나 이후 삼성전자 지분 0.08%, 삼성화재 지분 0.36%를 유상 취득함으로써 전체 자산 5397억 원 중 4876억 원이 계열사 지분에 대한 장부가액이다. 삼성복지재단의 이사장은 2019년부터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이다.
세 번째는 2021년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이 설립한 카카오그룹의 브라이언임팩트로 총자산 180억 원 중 계열사 주식자산이 143억 원으로 79.6%를 차지하고 있다. 브라이언임팩트가 보유한 카카오 주식은 지난 1년 새 52만 8200주가 무상 수증으로 늘어나고 40만 600주는 매각하면서 변동이 심했다. 재단 이사장은 올 4월부터 박승기 전 카카오브래인 대표가 맡고 있다.
한진그룹의 정석물류학술재단은 자산총액 662억 원 중 79.5%인 526억 원이 계열사 보유주식자산이다. 이 재단은 정석기업 10.0%, 한진칼 0.95%, 대한항공 0.1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DL그룹의 대림문화재단은 자산총액 74.3%를 계열사 지분으로 보유하고 있다. DL그룹의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대림의 지분 6.2%와 계열사인 삼인씨엔에스의 지분 1.41%를 보유하고 있다. 이해욱 DL그룹 회장이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CJ그룹의 CJ나눔재단은 자산총액에서 계열사 주식자산이 70.9%로 높았다.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CJ 지분을 2017년 0.56%에서 0.58%를 늘리며 지난해 기준 1.14%를 보유 중이다. CJ제일제당의 지분 0.2%도 보유하고 있으며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재단 이사장이다. 이외에 금호문화재단(69.0%)과 LG연암학원(66.7%), 삼성문화재단(65.3%), 포항공과대학교(60.3%), 두산연강재단(56.3%), LG연암문화재단(56.1%) 등이 자산총액의 50% 이상을 계열사 보유주식으로 가지고 있다.
현실이 이런데도 재계와 국민의힘은 기업 공익재단 관련 규제가 민간 기부 활성화를 저해한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리더스인덱스 보고서가 공개된 13일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 공익법인 제도개선 과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2일까지 공시 대상 기업집단 88개 그룹 소속 219개 공익재단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 결과인데 상속·증여세법, 공정거래법상 규제가 기부금을 기반으로 한 기업 공익재단의 재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선진국과 비교한 한국 기업 공익재단의 국가·사회적 기여도 관련 질문에는 절반 이상이 ‘낮은 수준’이라고 답했다. '떼쓰기'에 가까운 엉뚱한 처방을 주장하고 있으나 공익재단 스스로 ‘사회공헌’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실토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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