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개재벌 총수 지분보유사 내부거래 37.6%

지분율 5% 넘으면 내부거래 55% 훌쩍 넘어

대방건설, 넥슨, 삼성, 셀트리온, 한국타이어, 현대차 순

재벌 '사익편취' 감시 강화 필요성 커져

“내부거래 늘어나면 혁신 경영 힘들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5월 말 DB손해보험(DB손보) 본사에 조사관을 파견했다.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 의혹이 있어 현장 조사에 나선 것이다. DB그룹(옛 동부그룹)은 DB손보가 여러 계열사를 거느리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한 것에 대해 업계에서는 DB손보가 총수 일가가 지배하는 특정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사익편취를 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청사

DB손보는 상표권 사용료를 통한 계열사 부당 지원 건으로도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DB그룹은 김준기 전 회장 등 총수 일가 지분이 40%가 넘는 계열사 ‘DB Inc’를 통해 DB 상표권을 출원했다. DB그룹은 2017년 그룹 이름을 ‘DB’로 교체했고 DB손보를 포함한 계열사들은 2018년부터 상표권 사용료를 DB Inc에 지급하고 있다. 문제는 다른 대기업과 비교해 사용료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DB Inc가 상표권 사용료로 올린 수익은 1700억 원에 육박한다. 

재벌기업의 내부거래가 총수 일가가 지배하는 계열사를 부당 지원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은 DB그룹 문제만은 아니다.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 내부거래는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로 귀결되고 이는 경영권 승계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곤 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공정거래 행위는 편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넘나든다. 부당 내부거래를 통한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는 일반 주주 피해로 이어져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재벌기업의 내부거래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특히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의 내부거래 비중이 그렇지 않은 곳보다 크고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높을수록 그 비중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는 2일 이런 내용을 담은 자료를 내놓았다. 총수가 있는 78개 대기업집단의 3116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이들 기업의 지난해 국내외 전체 매출액은 1902조 4242억 원이었는데 이중 계열사 내부거래 금액은 33.9%인 644조 1206억원이었다. 조사 대상 기업 가운데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는 604개로 19.4%에 불과했으나 이들 계열사의 매출은 전체 매출의 절반 수준인 953조 1300억 원에 달했다. 이들의 내부거래 금액은 358조 3871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37.6%를 차지했다. 이는 총수 일가의 지분이 없는 계열사 내부거래 비중보다 7.5%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총수 일가 지분율이 5% 이상인 계열사의 평균 내부거래 비중이 55%에 달했다는 사실이다. 총수 일가 지분율이 높을수록 내부거래 비중도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총수 일가 지분이 있는 계열사의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그룹은 대방건설(86.3%)과 넥슨(84.1), 삼성(66.5%), 셀트리온(65.1%), 한국타이어(61.1%), 현대자동차(59.2%), LG(56.1%), HDC(41.1%) 순이었다.

 

 자료 : 리더스인덱스. 총수 일가 지분 보유 계열사들의 내부거래 비중 순위.
 자료 : 리더스인덱스. 총수 일가 지분 보유 계열사들의 내부거래 비중 순위.

대방건설은 42개 계열사 전체 매출액 2조 4671억 원 중 총수 일가 지분이 있는 대방건설과 대방산업개발 매출이 그룹 전체 매출액의 절반을 차지했다. 대방건설은 구교운 대방건설 그룹 회장의 장남 구찬우 대방건설 사장이 지분 71%를 보유하고 있고, 대방산업개발은 구 회장의 딸인 구수진 씨가 지분 50%를 보유 중이다. 넥슨 그룹은 총수 일가의 지분이 있는 2개 계열사 매출이 그룹 전체에서 점하는 비중은 1% 정도다. 그러나 두 기업 매출의 80% 이상이 내부거래를 통해 이루어졌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전체 매출액 358조 9158억 원 중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SDS, 삼성E&A 등 6개 계열사 매출액이 251조 8863억 원으로 70.2%였는데 이 중 내부거래 금액은 167조 4362억 원으로 66.5%에 달했다. 내부거래의 89.3%가 해외 계열사간 이루어졌다. 삼성그룹 계열사 중 내부거래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9.2%의 지분을 보유한 삼성SDS다. 이 회사의 내부거래를 통한 매출액은 전체 매출의 83.5%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셀트리온 그룹은 셀트리온홀딩스와 셀트리온, 셀트리온스킨큐어, 셀트리온제약, 티에스이엔씨 등 총수 일가 지분이 있는 5개 계열사 매출의 65.1%인 1조 8353억 원을 내부거래를 통해 달성했다. 이들 계열사 중 내부거래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의 친인척인 박찬홍 대표와 최승희 이사가 지분 100%를 소유한 티에스이엔씨로 지난해 매출액 156억 원의 65.1%인 102억 원이 내부 계열사를 통해 이뤄졌다.

한국타이어는 24개 계열사의 지난해 매출액 4조 1613억 원 중 97.8%인 4조 733억 원이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14개 계열사 매출로 잡혔다. 이들 기업 전체 매출액의 61.1%인 2조 4882억 원이 내부거래를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조현범 한국타이어 회장과 조현식 한국앤컴퍼니그룹 고문 등 일가가 5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한국프리시전웍스와 한국프네트웍스은 각각 매출액의 99.7%와 61.3%가 내부거래를 통한 매출이었다. 현대차와 LG 등 다른 그룹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총수 일가 지분율이 5% 이상인 대기업집단 매출액 중 내부거래 비중이 100%인 기업도 청원냉장(한진그룹), 한통엔지니어링(SM), 더블유앤씨인베스트먼트(HDC), 비컨로지스틱스(애경), 오픈플러스건축사무소(영원), 헬씨피플(보성그룹), 오케이데이터시스템(오케이금융그룹), 에스피에스테이트(삼표그룹), 에이치에스머티리얼즈(한솔그룹), LS에코에너지(LS그룹), 신영플러스(신영그룹) 등 11개사에 달했다.

리더스인덱스는 지난해 6월 개정된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근거로 총수 일가 보유 지분 현황을 조사했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친족의 범위를 ‘배우자, 4촌 이내의 혈족 및 3촌 이내의 인척, 동일인이 지배하는 국내회사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1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5촌·6촌인 혈족이나 4촌인 인척, 동일인이 민법에 따라 인지한 혼인외 출생자의 생부나 생모’로 규정했다.

 

  자료 : 공정거래위원회. 총수 있는 10대 기업집단 내부거래 비중 추이.
  자료 : 공정거래위원회. 총수 있는 10대 기업집단 내부거래 비중 추이.
  자료 : 공정거래위원회. 총수 일가 지분율과 내부거래 비중. 
  자료 : 공정거래위원회. 총수 일가 지분율과 내부거래 비중. 

재벌기업의 내부거래가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은데도 내부거래는 계속 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공시대상기업집단 내부거래 현황’ 자료를 발표했는데 2022년에도 총수가 있는 상위 10대 기업집단의 내부거래 금액이 196조 4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40조 5000억 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공정위 조사에서도 총수 일가 지분율이 높을수록 내부거래가 많았다. 특히 상표권 사용료 수입은 총수가 없는 기업과 비교해 총수가 있는 기업이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DB그룹 사례가 특정 재벌만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그동안 재벌기업들은 내부거래가 쉬운 업종 위주로 계열사를 늘리면서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와 함께 기업가치를 안정적으로 키워왔다”며 “내부거래를 통해 외형을 키울 수는 있겠지만 혁신에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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