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창업 일가 경영권 승계 허점 드러나

2% 보유 지분으로 주요 결정 좌지우지

3, 4세까지 경영권 유지하려다 분쟁 생겨

기업가치 높이려면 지배구조 개혁 시급

40년 가까이 공동 경영을 해왔던 영풍과 고려아연 총수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점입가경이다.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를 위해 영풍과 손잡고 주식 공개매수에 나선 MBK파트너스 쪽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쪽은 각각 상대방을 배임 등의 혐의로 고소하며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최 회장 쪽은 MBK파트너스가 경영권을 인수하면 국가 산업의 기반이 되는 고려아연의 핵심 기술이 중국에 넘길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고려아연은 25일 이차전지 양극재 핵심 원료인 전구체 제조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면 고려아연의 중국 기업 매각은 힘들어진다. 이에 맞서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최 회장이 경영을 맡은 뒤 불투명한 의사결정과 투자 실패로 고려아연 기업가치를 훼손했다고 비판한다. 어느 쪽 말이 맞는지 진실 게임으로 흘러가는 형국이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창립기념일(8월1일)을 하루 앞둔 7월 31일 울산에서 열린 고려아연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7.31 [고려아연 제공] 연합뉴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창립기념일(8월1일)을 하루 앞둔 7월 31일 울산에서 열린 고려아연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7.31 [고려아연 제공] 연합뉴스

MBK파트너스,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 경영권 위협

이번 경영권 분쟁은 지분을 비슷하게 보유한 양대 주주가 기업 운영에 대한 견해 차이로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근본 원인은 재벌기업의 지배구조에 있다. 경영권이 3, 4세로 넘어오면서 지분이 희석됐는데도 어떻게든 경영권을 유지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고려아연 지분 구조는 공동 창업자인 장병희와 최기호의 일가와 이들의 우호 세력이 거의 절반씩 나눠 보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영풍의 2세 경영자인 장형진 고문과 우호 지분은 33.1%, 최윤범 회장과 우호 지분은 34.3%다.

최 회장 쪽 지분이 조금 많은 것처럼 같지만 1대 주주는 영풍(25.4%)이다. 최 회장 일가(15.9%)의 지분보다 훨씬 많다. 그러나 고려아연 경영은 줄곧 최 회장 일가가 맡았다. 창업자들이 정한 공동 경영 원칙에 따른 것이다. 양쪽의 갈등과 반목이 본격화하기 것은 3세 경영자인 최 회장이 경영권을 장악한 2022년 이후다.

최 회장은 유상증자를 통해 한화와 현대차 등 다른 기업에 고려아연 지분을 넘겼다. 이에 영풍은 지배주주 지분이 희석될 수 있다며 반대했다. 최근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MBK파트너스는 최 회장의 투자 실패와 방만 경영 사례를 폭로하기도 했다. 영풍 쪽에서 제기한 의혹은 이그니오홀딩스 투자 관련 선관주의 의무 위반, 원아시아파트너스 운용 사모펀드 투자 관련 배임, SM엔터테인먼트 주가 조작 관여, 이사회 결의 없는 지급보증, 일감 몰아주기 등 한둘이 아니다. MBK파트너스는 영풍이 최대 주주인 만큼 기업가치를 떨어뜨린 최 회장을 몰아내고 안정적 경영권 확보를 위해 주식 공개매수에 나선 것이라고 주장한다.

소송전으로 번진 공동 창업 양대 일가의 이전투구

고려아연 쪽은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오히려 영풍이 고려아연에 부당한 요구를 했고 이를 수용하지 않자 사모펀드를 동원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섰다는 것이다. 고려아연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이제중 부회장은 지난 24일 기자회견에서 “(영풍 계열사인) 석포제련소의 유해 폐기물을 고려아연에 떠넘기려 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만 최 회장의 만류로 공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 고문과 영풍이 경영 실패로 환경오염과 중대재해로 국민께 빚을 지고서 기업사냥꾼 투기자본과 손잡고 고려아연을 노린다. 우리나라를 팔아먹고자 하는 행위이고 주주를 배신하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려아연 임직원과 사외이사, 일부 정치권은 최 회장 쪽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고려아연이 사모펀드에 넘어가면 기업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중국 자금이 MBK파트너스 펀드에 포함됐다는 점에서 기술 유출 위험도 커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고려아연은 비철금속 시장에서 세계 1위이고 현대차 등 주요 기업에 핵심 원자재를 공급하는 기업이다. 이에 대해 MBK파트너스는 중국 기업에 매각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고려아연 지분 현황. 연합뉴스
고려아연 지분 현황. 연합뉴스

다른 재벌기업과 다르지 않은 고려아연 지배구조

그러나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간과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과연 고려아연이 현재 지배구조로 핵심 기술과 영업력을 극대화해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느냐는 점이다. 고려아연의 최 회장의 개인 지분은 2% 남짓에 불과하다. 어떤 식으로든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무리수를 둘 가능성이 있다. MBK파트너스는 경영권을 인수하면 가장 먼저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한다. 속셈은 알 수 없으나 틀린 말은 아니다.

재벌기업의 가장 큰 문제이자 한국 증시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요인은 총수 일가의 이익만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지배구조다. 현재 고려아연도 이런 구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최 회장 쪽이 경영권 방어에 성공하면 지배구조 개선은 더 힘들어진다. 삼성을 비롯한 한국 재벌기업들은 3, 4세로 넘어오며 각종 꼼수로 경영권을 지키려 하고 있다. 고려아연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25일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 대해 “자본시장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논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포럼은 고려아연뿐 아니라 저평가된 국내 상장사 주주들이 가진 ‘그 외 다양한 권리’를 재평가받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포럼이 언급한 다양한 권리는 주주로서 주주총회에서 이사선임을 비롯해 일정 조건을 갖춘 주주제안과 인수합병 등 회사 관련 주요 사항에 대한 의결권 행사 등을 말한다.

“지배구조 개선 통한 일반주주 보호가 최우선”

포럼은 “(한국 재벌기업처럼) 패밀리 비즈니스는 일반주주에 대한 배려가 있다면 괜찮은 비즈니스 모델이나 1~2대를 지나 3대가 되면 대개 위기를 맞게 된다”며 고려아연도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윤범 회장은 지난 2019년 대표이사 사장 취임했고 2022년부터는 회장과 이사회 의장을 겸임 중이다. 하지만 수익성 악화와 차입금 증가 등 기업 가치를 떨어뜨렸다는 게 포럼의 평가다. 실제로 고려아연 주가는 주요국 대비 저평가된 코스피보다도 같은 기간 투자 성과가 낮았다.

포럼은 “지인들이 이끄는 한화, LG, 한국타이어그룹 등에게 도움을 청하기 전에 최 회장은 먼저 국민연금과 기관투자자, 외국인 투자자, 개인 등 일반주주 이익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게 순리”라고 지적했다. 고려아연 이사회에도 “선관주의 의무 입장에서 5820억 원이 집행된 미국의 전자폐기물 재활용업체 이그니오홀딩스 투자 사례를 중간 점검하고, 5561억 원이 집행된 사모펀드 원아시아파트너스 투자 건에 대한 사후 보고를 요청하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포럼은 MBK 파트너스를 향해서는 “일부 주식만 공개매수하지 말고, 고려아연 전체 주식 100% 공개매수해야 한다”며 “이것이 일반주주를 보호하고 거버넌스 개선을 이루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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