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협 회비 납부 결정 땐 '정경유착' 퇴행

준법감시위 “한경협, 정경유착 고리 못 끊어”

삼성전자 노조 파업과 임금 협상도 시험대

이번엔 ‘노조 탄압 삼성’ 오명 벗을 수 있을까

삼성 경영 방식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두 가지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에서 간판만 바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에 회비를 납부할지 여부다. 다른 하나는 위기로 치닫고 있는 삼성전자 노사관계다. 현재 파업 중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과의 임금 협상 결과는 과거 '무노조 경영'을 표방했던 삼성이 변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또 다른 잣대가 될 것이다. 삼성전자 노사는 23일 임금 교섭을 재개할 계획이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 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삼성생명 서초사옥에서 열리는 삼성 준감위 3기 정례 회의에 참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7.22. 연합뉴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 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삼성생명 서초사옥에서 열리는 삼성 준감위 3기 정례 회의에 참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7.22. 연합뉴스

정경유착 상징 한경협(옛 전경련) 회비 납부 결정 보류

한경협 회비 납부는 일단 보류된 상태다. 정경유착을 끊을 수 있을지 검토가 더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는 22일 오전 열린 회의에서 이 문제를 매듭지려고 했다. 하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이찬희 준감위 위원장은 이날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준감위 정례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한경협이 과연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인적 쇄신이 되었는지에 대해 위원들의 근본적 문제 제기가 있었다”며 회비 납부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경위를 설명했다. 한경협은 지난 4월 삼성과 SK, 현대차, LG 등 4대 그룹에 회비 납부를 요청했다. 액수는 그룹별 35억 원 정도로 많지 않다. 그러나 이들 그룹이 회비를 납부하는 행위는 의미가 작지 않다. 다시 정경유착 시대로 돌아가겠다는 뜻으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성을 비롯한 각 그룹이 회비 납부를 고민하는 것도 이런 상징성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처벌받았다. 이후 이 회장은 여러 차례에 걸쳐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고 다짐했다. 삼성 준감위는 작년 8월 ‘한경협 가입 권고안’에 회비 납부 전에 사전에 승인받도록 했다. 한경협이 정경유착 행위를 하거나 회비와 기부금을 목적 외에 쓰면 즉시 탈퇴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이찬희 위원장은 회비 납부 결정을 보류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전경련에서 한경협으로 변한 이유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고 한 취지였는데 지금 상황이 인적 구성이나 물적 구성에 있어 정경유착의 고리가 끊겼는지에 대해 근본적 의문이 있다. 그것은 한경협 스스로가 한 번 검토해봐야 할 문제다. (우리는) 한경협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지, 시스템적으로 그게 가능한지를 검토해 (회비 납부 문제를) 다시 논의할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 이름을 바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의 표지석. 2023.9.19. 연합뉴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 이름을 바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의 표지석. 2023.9.19. 연합뉴스

삼성 준법감시위 “한경협, 정경유착의 고리 끊겼는지 의문”

한경협은 지난해 5월 전경련에서 이름을 바꾸며 윤리 헌장을 제정하는 등 혁신안을 발표했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고도 약속했다. 류진 한경협 회장은 “어두운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잘못된 고리는 끊어내겠다. 윤리경영을 실천하고 투명한 기업문화가 경제계 전반에 뿌리내리도록 하겠다. 단순한 준법 감시의 차원을 넘어 높아진 국격과 국민 기대에 부응하는 엄격한 윤리의 기준을 세우고 실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말과 행동은 전혀 달랐다.

윤석열 대선 캠프 선거대책위원장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김병준 전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을 상근 고문으로 임명했다. 상근부회장에는 외교관 출신인 김창범 전 인도네시아 대사를 영입했다. 경제 이슈에 대한 분석과 해법을 제시하는 '싱크탱크'로 환골탈태하겠다더니 기업인이나 연구원이 아닌 관료 출신을 상근부회장에 앉힌 것이다. 인적쇄신은커녕 정경유착 근절과는 거리가 먼 인사였다.

합리적인 경제 정책 제안보다 재벌 총수의 이익만을 관철하려는 보고서를 내놓는 행태도 그대로다. 합경협은 지난달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전제로 하는 이사의 충실의무 인정 여부 검토’ 보고서를 발표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한경협 의뢰로 작성한 보고서인데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을 반대하는 내용이다. 대다수 증시 참여자와 야당은 물론 정부도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원인인 재벌 개혁을 위해 필요성을 인정하는 상법 개정을 억지 논리로 막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삼성이 간판만 바꾸고 본래 행태를 버리지 못한 한경협에 회비 납부를 보류한 것은 당연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경협이 끈질기게 요청하고 있어 못 이기는 척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 삼성이 회비를 납부하면 다른 그룹도 비슷한 결정을 내릴 게 뻔하다. 그렇게 되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이전으로 퇴행하는 셈이 된다.

 

22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세미콘 스포렉스에서 열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총파업 승리 궐기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7.22. 연합뉴스
22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세미콘 스포렉스에서 열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총파업 승리 궐기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7.22. 연합뉴스

삼성전자 노조 파업 철회와 입금 협상 타결도 중요

이찬희 위원장은 전삼노 파업과 관련해 “노사 문제는 삼성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라며 “노사 문제를 포함한 삼성의 여러 가지 준법 경영에 관한 문제들을 간담회에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삼노는 지난 15일 파업 동참을 호소하는 동영상을 올리는 등 사측을 강하게 압박 중이다. 이에 회사 측이 대화를 제안하며 다시 협상을 벌이고 있다.

삼성은 오랜 기간 무노조를 표방한 그룹이다. 노사관계가 서툴 수밖에 없다. 전삼노 파업에 대해서도 무반응으로 일관하다 문제가 커지자 어쩔 수 없이 대화를 제안했다. 전삼노는 22일에도 경기 용인시 삼성 세미콘 스포렉스에서 총파업 궐기대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는 전국사업장 조합원 1200명 넘게 참여했다. 23일에는 기흥 나노파크에서 임금 교섭을 재개한다.

전삼노는 기본 인상률 3.5%를 반영해 평균 임금인상률 5.6%를 요구한 상태이고 사측은 평균 임금인상률 5.1%를 마지노선으로 제시했다. 전삼노의 파업과 임금 협상을 원만하게 타결하면 삼성은 한 단계 도약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노사관계가 더 악화하면 삼성전자의 경쟁력과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악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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