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 자산가치·주주 무시한 합병비율
시너지 효과 고려해도 소액주주에 불리
“SK이노 합병가액 최소 10% 할증해야”
주식매수청구 8천억 넘으면 합병 힘들어
SK그룹은 최근 주력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이 SK E&S를 흡수합병하는 사업구조 개편 계획을 발표하며 SK이노베이션 소액주주를 배려해 합병비율을 책정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과 비상장사인 SK E&S의 합병비율은 1대 1.19로 정해졌다. SK E&S 보통주 100주를 보유하고 있으면 SK이노베이션 주식 119주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SK는 두 회사 합병비율을 1대 2까지 고려했으나 그렇게 되면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이 불리해 절충안을 찾았다고 했다. 두산이 알짜 계열사인 두산밥캣을 적자 기업 두산로보틱스 100% 자회사로 편입하며 지배주주인 총수 일가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사업구조를 개편하려는 것과 대조된다는 평가도 나왔다.
SK이노베이션 자산가치로 보면 합병비율 불합리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이 제기됐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평균 주가(시가)로 기업 가치를 매기고, SK E&S는 자산과 수익 등 본질가치를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책정하다 보니 불합리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라 상장법인인 SK이노베이션은 최근 1개월·1주일·전일 거래량 가중 산술 평균 종가의 산술평균을 적용해 회사 가치를 약 10조 8000억 원으로 추정했다. 이에 비해 비상장사인 SK E&S는 본질가치를 반영해 약 6조 2000억 원으로 평가됐다. 그 결과 최종 결정된 합병비율은 1대 1.9717417이다. 1주당 합병가액은 SK이노베이션이 11만 2396원, SK E&S가 13만 3947원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이 방식이 SK이노베이션 일반 주주들에게 불리하다고 주장한다. 두 회사의 자산가치를 기준으로 보면 SK이노베이션이 약 23조 5000억 원(1주당 24만 5405원)으로 SK E&S의 약 3조 8000억 원(1주당 8만 2475원)을 크게 웃돈다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 주가가 최근 3년간 최저 수준인 것도 합병비율이 불리하게 정해진 이유다. 경제개혁연대는 “현행 자본시장법상 주권상장법인과 주식비상장법인 간 합병의 경우 주권상장법인은 시가로 합병가액을 산정하되 시가가 자산가치에 미달하면 자산가치로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SK이노베이션 이사회가 자산가치의 절반도 안 되는 시가를 적용해 합병가액을 정한 건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주회사와 총수 일가에 유리한 흡수합병
이번 흡수합병으로 최대 주주인 SK와 그룹 총수 일가는 이익을 볼 가능성이 크다. SK이노베이션은 지주회사 SK가 최대주주이나 지분은 34.45%에 불과하다. 반면 SK E&S 보유 지분율은 90.0%에 달한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후 SK의 합병법인에 대한 지분율은 36.22%에서 55.91%로 상승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달리 SK이노베이션의 합병가액 산정을 순자산가치로 변경해 합병비율을 재산정하면 SK의 합병법인에 대한 지분율은 47.47%로 8.44%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으로 SK와 SK의 최대 주주인 최태원 회장 일가에게는 이익이 되지만(최태원 회장 17.73%, 친족 합산 24.50% 소유), SK이노베이션 일반주주들의 지분가치는 그에 상응해 희석된다. 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은 합병비율 산정이기는 하지만 SK이노베이션 일반주주들이 손해를 보는 구조라는 점에서 이번 SK이노베이션 이사회의 합병 결정이 과연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합병비율 재책정하거나 SK이노베이션 10% 할증해야”
경제개혁연대는 합병을 통한 시너지 창출이 목적이라면 SK이노베이션 이사회는 주주 전체의 이익을 고려해 SK이노베이션의 합병가액을 현행법이 허용하고 있는 자산가치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면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비율은 1대 0.545820175(합병가액은 1주당 24만5405원 대 13만3947원)로 정해진다. 경제개혁연대는 합병비율을 다시 책정하지 않는다면 SK이노베이션의 합병가액을 최소한 10% 할증할 것을 촉구했다.
이번 합병의 목적이 시너지 창출이 아니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 자회사로 현재 자금난을 겪고 있는 SK온에 대한 자금지원이라면 두 회사를 무리하게 합병하기보다는 SK이노베이션이 유상증자를 통해 해결할 수도 있다. 유상증자로 최대 주주의 SK이노베이션 지분이 희석되는 게 우려되면 SK E&S에서 받은 배당수익으로 SK이노베이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법도 있다.
“시너지 효과로 SK이노베이션 신용등급엔 긍정적”
SK이노베이션은 석유화학을 근간으로 배터리와 자원개발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77조 2000억 원, 영업이익은 1조 2000억 원 수준이었다. SK E&S는 수소와 재생에너지, 에너지솔루션,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이다. 지난해 SK E&S는 매출 11조 1600억 원, 영업이익 1조 3300억 원을 달성했다. 매출 규모는 SK이노베이션이 약 7배지만 수익성은 SK E&S가 월등하다. 두 회사 합병으로 SK이노베이션이 이득을 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국내외 신용평가사들이 이번 합병안이 SK이노베이션 신용등급엔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2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이번 합병으로 규모와 사업다각화, 운영 안정성이 향상되면서 지난해 재무제표 기준으로 매출은 14%,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은 48%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무디스는 “이는 SK E&S가 발전과 LNG 사업 등을 바탕으로 향후 안정적 수익을 창출할 것이라는 전망을 반영한 결과”라며 “향후 배터리 사업의 수익성 개선 여부가 회사의 신용등급 결정에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S&P도 “합병으로 SK이노베이션의 사업 규모와 포트폴리오가 확대되고, 현금흐름 변동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신용평가사들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주식매수 청구권 행사액 8000억 넘으면 합병 차질
합병에 반대하는 SK이노베이션 소액주주들은 주식매수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주식매수 청구권 가격을 11만 1943원으로 제시했다. 합병을 원하지 않는 소액주주는 이 금액에 주식을 팔 수 있다. 반대 주주가 많아 주식매수 청구권 행사액이 8000억 원이 넘으면 SK는 합병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SK그룹은 합병 시너지 효과로 향후 주가가 청구권 가격보다 상승할 것으로 본다. 이 예상이 맞는다면 주식매수 청구권 행사 금액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너지 효과에 대한 기대가 낮으면 주가가 지지부진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주식매수 청구권 행사액이 많아질 수 있다. 그 금액이 8000억 원이 넘으면 합병에 제동이 걸린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는 다음 달 27일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에서 합병을 최종 결정한다. 현재 SK이노베이션 2대 주주는 국민연금으로 지분이 6.2%이고 소액주주 지분율은 20%가 넘는다. 합병 성사를 위해선 참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과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승인이 필요하다. 합병의 주요 원인이 된 SK온의 배터리 사업 전망과 SK이노베이션 주가 흐름이 합병의 성공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재벌 그룹의 모회사와 자회사 이중상장이 문제"
한편 경제개혁연대는 SK와 두산의 사례처럼 일반 주주 이익을 외면하고 지배주주에 유리한 사업구조 재편이 반복되는 근본적 이유 중 하나로 모회사와 자회사, 손자회사까지 모두 상장함으로써 발생하는 ‘이중상장’의 폐해를 꼽았다. 이중상장 없이 모회사가 완전 자회사만 지배하면 일반주주 이익 침해 논란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룹 내 자본 배분의 효율성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상장 완전 자회사의 중간배당과 증자는 상장 자회사에 비해 훨씬 간편하고 빠른 속도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일본은 이중상장 문제의 해소를 위해 2020년부터 상장 자회사를 보유하는 의의와 상장 자회사의 지배구조의 실효성 확보 방안을 공시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그룹 전체의 기업 가치 향상과 자본 효율성 관점에서 상장 자회사를 유지하는 게 최적인지를 정기적으로 검토하고 그 결과를 투자자들에게 공개하는 가이드라인도 시행 중인데 한국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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