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등 자사주 비중 높여 사익편취 규제서 빠져
기업 분할합병 과정서 자사주 이용해 지배력 높여
자사주는 의결권·배당권 없어 일반 주식과 달라
재벌 자사주 악용 막고 ‘주주환원’ 취지 살리려면
총 발행 주식 수 계산 때 자사주 제외하는 게 옳아
주주환원 정책의 주요 수단 중 하나인 자기주식(자사주)이 재벌의 사익편취 규제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벌기업은 총수 일가 지분율이 일정 비중 이상일 때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따라 일감몰아주기 등 사익편취 행위를 했을 때 처벌 대상이 된다.
그런데 자사주 비중을 높이면 총수 일가 지분율을 낮출 수 있다. 일부 재벌은 이 점을 활용해 사익편취 규제를 회피하고 있다. 자사주는 의결권과 배당권이 없다. 시장에서 유통되는 일반 주식과 엄연히 다르다. 그런데도 총발행 주식 수에 자사주를 포함하는 것은 제도의 허점일 수 있다.
총수 일가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전락한 자사주
경제개혁연대는 2일 논평을 통해 자사주를 활용한 규제 회피 문제를 지적하며 현재 롯데와 LS, HDC, DB, OCI, 삼천리, 영원 등 7개 그룹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자사주는 A 기업이 발생한 주식을 A 기업이 다시 사서 보유하는 주식을 말한다. 신주 발행과 정반대 개념이다. 자사주 매입은 기업 내부자금을 활용해 유통 주식 수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이론적으로는 주식 수가 감소하니 주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주가는 유통 주식 수 외에 여러 요인으로 가격이 등락한다. 그렇다고 해도 자사주 매입은 주가를 부양하는 효과가 있어 주주환원 정책으로 여겨진다.
자사주는 의결권과 배당권이 없어 주식 수를 감소시키는 역할만 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일부 재벌기업은 자사주를 '주주환원'이라는 본래 취지에 맞게 쓰지 않고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와 규제 회피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배력 강화는 인적 분할로 회사를 쪼갤 때 신설법인에 자사주를 배정해 지배주주 지분율을 높이거나 자사주를 우호 세력에 넘기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재벌기업의 자사주 악용 사례가 계속되자 금융위원회는 올해 1월 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고 6월에는 ‘자기주식 제도 개선방안 시행령·규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요지는 합병과 분할 때 자사주에 대한 신주배정을 금지하고 자사주를 처분할 때 매입하는 쪽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 제도와 비교하면 여전히 미흡하다.
일부 재벌, 자사주 활용해 사익편취 규제 대상서 빠져
특히 재벌의 사익편취 규제 기준이 되는 지분율을 계산할 때 총발행 주식에 자사주가 포함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 미국 등 주요국은 자사주를 뺀 유통 주식 수로 시가총액을 산출한다. 같은 맥락에서 공정거래법상 규제 대상을 선정할 때도 자사주를 제외하는 게 상식적이면서 현실에 부합한다.
공정거래법 47조는 총수 일간 등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즉 사익편취를 금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의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속하는 국내 기업은 특수관계인이나 총수 단독으로 또는 다른 특수관계인과 합해 발행주식총수의 20% 이상의 주식을 소유한 국내 계열회사 또는 그 계열회사가 단독으로 발행주식총수의 50%를 초과해 소유한 국내 계열회사와 거래하는 경우 사익편취 규제 대상이 된다. 그 회사와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나 사업 기회의 제공, 현금이나 다른 금융상품을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것 등이 금지된다.
현행법은 사익편취 규제 대상 여부를 결정하는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을 단순히 발행주식총수에서 동일인과 그의 친족(4촌 이내의 혈족 및 3촌 이내의 인척)이 소유한 주식 합계액 비율로 산정한다. 해당 회사가 자사주를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 이 계산 방식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으면 규제 회피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무엇보다 자사주 비중이 높아질수록 특수관계인의 배당권이 높아져 이 회사를 통한 사익편취 정도가 커질 수 있는데도 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 또 특수관계인 지분율을 계산하면서 자사주를 차감하지 않고 발행주식총수를 그대로 사용하면 사익편취 규제의 대상이 돼야 할 회사가 빠지는 일이 생긴다.
예컨대 롯데그룹 지주회사인 롯데지주의 자사주 비율은 32.34%로 매우 높다. 이는 롯데그룹의 주요 계열사가 2017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사업재편을 단행한 결과이다. 롯데지주는 2017년 10월 계열사들과의 분할합병과 2018년 4월 계열사들과의 합병 및 분할합병 등으로 많은 자사주를 보유하게 됐다.
롯데지주는 총수인 신동빈 회장과 그의 친족이 발행주식총수 대비 16.44%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사익편취 규제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자사주를 총발행 주식에서 빼면 이들의 지분율은 24.35%로 규제 대상이 된다. 롯데지주가 자사주 절반만 처분해도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20%에 근접한다. 사익편취 규제의 적용을 계속 면하기 위해서라도 롯데지주는 자사주 소각을 꺼릴 것이다. 주주환원 수단이어야 할 자사주가 제 역할을 못하는 셈이다.
“총발행 주식 수 계산할 때 자사주는 제외해야”
공정거래법상 사익편취 금지 규정은 2013년 8월 신설됐고 시행 시기는 이듬해 2월이었다. 당시 계속 중인 거래의 경우 시행일로부터 1년간은 종전 규제를 적용한다는 부칙에 따라 실제 사익편취 규제는 2015년 2월부터 시행됐다. 사익편취 규제 시행 시점부터 현재까지 앞서 거론된 7개 기업의 자사주 보유 변동 현황을 살펴보니 그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2018년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 입법 예고에 대한 의견 중 하나로 사익편취 규제의 총수 일가 지분 산정 때 의결권 없는 자기주식을 제외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익편취 규제의 적용 대상을 정할 때 자사주의 특수한 성격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국내 계열회사의 발행주식총수 대비 특수관계인이 소유한 지분 기준으로 정한 것은 제도의 흠결일 수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의결권과 배당권이 없는 자사주는 회사의 자산이 아니며 미발행 주식 또는 소각된 주식과 같은 것”이라며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사익편취 규제는 발생주식총수에서 자사주를 제외한 주식 수를 기준으로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을 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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