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 임종윤 사장 부당 내부거래로 사익편취 의혹

개인 대주주 돌아서며 모녀-형제 분쟁불씨 살아나

송영숙 회장 “경영일선 퇴진, 전문경영인체제로”

재벌 경영권 승계 때마다 반복되는 ‘오너 리스크’

한미약품은 한국을 대표하는 제약사 중 한 곳이다. 창업자인 고 임성기 회장은 2020년 8월 별세하기 전까지 신약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복제약에만 의존했던 대다수 국내 제약사들과는 달리 험난한 길을 개척한 모범적 기업가였다. 하지만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한미약품 그룹은 모녀(임 회장의 아내인 송영숙 회장과 딸 임주현)와 형제(장남 임종윤과 차남 임종훈)가 나뉘어 경영권 분쟁을 벌였고 지난 3월 우여곡절 끝에 형제 쪽이 승리하는듯 했다.

 

한미약품 사옥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미약품 사옥 [연합뉴스 자료사진]

하지만 그 뒤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임종윤 한미사이언스·한미약품 사내이사(사장)가 사익편취를 위해 부당 내부거래를 주도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또 창업자 일가 외에 한미약품 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한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모녀 쪽에 가담하며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다시 살아났다. 고 임성기 회장과 친분이 두터웠던 신 회장은 한미사이언스 지분 12.43%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3월 주주총회에서는 형제 쪽을 밀었다.

송 회장은 8일 자신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전문경영인체제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앞서 한미약품 그룹은 임종윤 사장이 연루된 부당 내부거래 의혹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오너 리스크’가 불거지자 송 회장이 전문경영인체제 전환을 신속하게 발표한 것이다. 

송 회장은 2020년 9월 장남 임종윤과 함께 한미사이언스 각자대표를 맡았고 2022년에는 단독 대표 자리에 올랐다. 올해 초 OCI그룹과 통합을 추진하다 임종윤 형제의 반대로 좌절됐다. 당시 신 회장은 형제 편을 들었다. 그 후 한미사이언스가 임종훈 단독 대표 체제로 변경하면서 송 회장은 대표이사 직위에서 해임됐다. 그러나 임 사장의 부당 내부거래 의혹이 제기되고 신 회장이 입장을 바꾸면서 한미약품 경영권의 향방이 달라진 것이다. 

지난 3일 송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은 한미사이언스 지분 6.5%를 1644억 원에 개인 최대 주주인 신 회장에게 넘기는 주식 매매계약과 함께 공동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약정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로써 이들 세 사람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한미사이언스 지분 약 35%와 우호 지분을 합쳐 50%에 육박하는 지분을 확보했다. 

송 회장은 8일 배포한 입장문에서 “신 회장을 중심으로 전문경영인체제를 구축해 새로운 한미그룹으로 재탄생하기를 바란다”며 “한미약품의 다음 세대 경영은 전문 경영인이 맡고 대주주들은 이사회를 통해 이를 지원하는 선진화된 지배구조로 가야 한다고 (임성기) 선대 회장은 누누이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형제 쪽이 추진하려고 하는 것처럼) 한미 지분을 해외펀드에 매각해 한미 정체성을 잃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게 저의 확고한 신념이자 선대 회장의 뜻을 지키는 길이었고, 이를 위해 저와 신 회장이 찾은 최선의 방안이 이번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이 지난 5월 14일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그룹 본사에서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를 앞두고 건물로 들어서고 있다. 2024.5.14. 연합뉴스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이 지난 5월 14일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그룹 본사에서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를 앞두고 건물로 들어서고 있다. 2024.5.14. 연합뉴스

이번 결정의 계기가 된 부당 내부거래 의혹은 한미약품 자회사인 북경한미약품과 임종윤 사장이 소유한 홍콩 코리그룹이 연관돼 있다. 한국경제신문 등에 따르면 코리그룹 핵심 계열사 룬메이캉은 북경한미약품에서 생산하는 의약품의 중국 내 유통을 맡으면서 지난 20년 동안 매년 수천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미약품이 임 사장의 개인회사에 일감을 몰아주었다는 의혹이 불거진 이유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이사는 지난 5일 임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한미약품 경영에 위해가 될 수도 있는 위중한 사안으로 생각됐고 감사위원회에서도 해당 내용의 심각성을 인지해 공식적으로 내용에 대한 명확한 조사를 요청했다”며 “기사에 언급된 내용들에 대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일차적으로 확인하고 필요시 추가적인 조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북경한미약품 지원으로 발생한 코리그룹 수익은 임종윤 사장의 또 다른 투자 기업인 디엑스앤브이엑스(DXVX)으로 흘러 들어간 의혹도 있다. 임 사장은 지난 2021년 코스닥 상장사인 DXVX를 인수한 뒤 한미약품 그룹과의 연결고리를 확장해왔다. 이는 송 회장 모녀가 임 사장이 주도하는 형제 경영에 반대하고 OCI와 합병하려고 했던 이유일 수도 있다.

물론 모녀와 형제 쪽의 경영권 분쟁은 상속세 납부 재원과도 관련이 있다. 고 임성기 회장의 한미사이언스 지분 2308만여 주(당시 지분율 34.29%)가 송 회장과 세 자녀에게 상속됐는데 이에 따른 상속세가 약 5400억 원에 달했다. 이들은 지난 3년간 상속세의 절반가량을 납부했다. 송 회장 모녀는 신 회장에게 지분을 넘기면서 받은 돈으로 나머지 상속세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미약품 경영권 분쟁 일지. 연합뉴스
 한미약품 경영권 분쟁 일지. 연합뉴스

한미약품 그룹이 유한양행처럼 전문경영인체제를 정착시킬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아직 임 사장 형제가 경영권을 쥐고 있어 분쟁의 소지가 다분하다. 현재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9명 중 5명을 형제 쪽이 확보하고 있다. 지난 3월 경영권 분쟁 때 주주총회에서 형제 쪽이 승리한 결과다. 송 회장 쪽이 전문경영인체제로 전환하려면 형제를 설득하거나 소액주주의 지분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임종윤 사장은 송 회장과 신 회장의 주식 매매계약에 대해 “단순 지분 매매일 뿐 경영권과는 관계없다”고 했다. 전문경영인체제 전환에 부정적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재벌기업 총수 일가가 자녀 지분이 충분하지 않은데도 무리하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한미약품 같은 ‘오너 리스크’는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부분 재벌기업은 불법과 편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경영권 승계를 강행한다. 이런 측면에서 한미약품 그룹은 새로운 길을 가는 셈이다. 송 회장 모녀와 신 회장은 주식 매매계약을 체결하며 “창업자 가족 등 대주주와 전문 경영인이 상호 보완하는 한국형 선진 경영체제 확립과 현장 중심 전문 경영인 체제로 재편할 것”이라고 했다. 이 약속을 지키려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계획과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소액주주와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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