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넌스포럼 부회장 “철저히 심사해야”

“주가로 기업 가치 평가하는 건 난센스”

“두산 구조 개편은 총수 1인 위한 것”

“각 사 이사회 다시 열어 재논의해야”

두산그룹이 최근 사업구조 개편안으로 발표한 분할합병과 주식교환 증권신고서가 엉터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배주주인 총수 일가 지분이 많은 두산로보틱스가 지나칠 만큼 높게 평가되면서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일반 주주들이 황당한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IFC 더포럼에서 '두산그룹 케이스로 본 상장회사 분할 합병 제도의 문제점'이란 주제로 열린 한국기업거버넌스 포럼 36차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있다. 2024.7.22. 연합뉴스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IFC 더포럼에서 '두산그룹 케이스로 본 상장회사 분할 합병 제도의 문제점'이란 주제로 열린 한국기업거버넌스 포럼 36차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있다. 2024.7.22. 연합뉴스

연합뉴스에 따르면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은 22일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주주 권익 침해 논란이 일고 있는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금융감독원이 엄격하게 심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두산의 분할합병·주식교환 증권신고서를 면밀하게 검토한 결과 이번 구조 개편으로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주주들이 받게 될 두산로보틱스 주식의 초고평가 상태와 주가 하락 가능성이 대단히 추상적으로만 기재되고 제대로 고지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산로보틱스 주가는 이번 분할합병과 주식교환에서 가장 큰 핵심 위험 요소다.

천 부회장은 “증권신고서 내에서 두산로보틱스의 사업 분야인 협동 로봇 시장의 성장성이 높지 않음을 명확히 알리고 이런 시장 환경에 비추어 현재 주가 수준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부실기재는 증권신고서상 중요 사항 누락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해야 할 뿐 아니라 두산로보틱스의 실적 대비 주가 고평가 상태와 향후 변동 가능성 위험 등을 증권신고서에 상세히 기재하고 핵심 투자위험 최상단에 배치해야 한다고 천 부회장은 강조했다.

그는 영업이익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두산로보틱스와 매출 9조 7000억 원, 영업이익 1조 3000억 원의 안정적인 두산밥캣의 자본거래 과정에서 기업가치가 거의 1대 1로 비슷하게 평가받은 것은 ‘극단적 불합리’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지난 1997년 제정된 자본시장법 시행령 때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지난 17일 발표한 논평에서 그 이유를 조목조목 짚었다. 논평 제목도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에 얼음물 끼얹는 두산, 그리고 그걸 방관하는 자본시장법, 이 법의 상장회사 합병비율 조항을 최대로 악용한 사례’다. 거버넌스포럼에 따르면 두산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자본시장법이 상장회사의 합병에서는 예외 없이 기업 가치를 시가로 정하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가는 직전 한 달, 일주일, 전날 주가의 가중평균이다. 기업 가치를 계산할 수 있는 가장 쉽고 강력한 방법이지만 이런 방식은 오직 한국에만 있다고 포럼은 지적했다.

포럼에 따르면 미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상장회사라고 해서 주식시장의 시가만으로 합병에 필요한 기업 가치를 산정하지 않는다. 기업 가치가 시가와 30% 이상 차이 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우리 금융위원회는 이런 상장회사 합병비율 산정 방식에 문제가 있어 제도를 개선한다고 하면서 계열회사 간 합병에서는 시가를 강제하는 현행 방식을 유지했다.

한국 기업들의 합병은 99%가 계열회사 간에 이루어진다. 이때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같은 지배주주가 사실상 의사 결정하는 계열회사 사이에서 지배주주에게 가장 유리한 시기와 시가를 기준으로 합병 또는 주식교환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일반 주주는 회사 성장에 따른 수익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일이 반복된다.

포럼은 “이게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민낯”이라며 “두산이 이런 일을 또 반복하고 있는데도 누구도 저지할 수 없도록 손발을 묶고 있는 게 우리의 법과 제도, 자본시장법과 그 시행령”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주주에 대한 일반적인 충실의무, 보호 의무도 없으니, 두산밥캣의 이사들이 아무리 이 상황이 상식적으로 부당하다고 생각해도 이런 가격과 시기에 엄청난 고평가 테마주인 두산로보틱스 주식과 교환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할 법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자료 : NICE신용평가. 두산 사업구조 재편과 지분구조 변화
 자료 : NICE신용평가. 두산 사업구조 재편과 지분구조 변화

두산그룹은 지난 11일 지주회사인 ㈜두산을 비롯해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 두산밥캣 4개 회사를 분할합병, 주식교환을 통해 개편하는 일련의 자본거래 공시를 냈다. 두산에너빌리티에서 알짜인 두산밥캣을 떼어내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만드는 게 골자다. 이에 따라 연 매출이 10조 원에 육박하고 영업이익이 1조 3000억 원이 넘는 상장회사 두산밥캣의 과반수인 54% 일반 주주들은 황당하게 됐다. 작년 매출 규모가 두산밥캣의 183분의 1인 530억 원에 불과하고 무려 192억 원의 영업손실을 낸 두산로보틱스와 같은 기업 가치로 주식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두산로보틱스는 지난해 말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는 테마주 성격이 강한데다 이익이 나지 않아 시가총액 대비 이익 계산이 불가능할 만큼 초고평가된 상태다.

두산밥캣 일반 주주는 두산이 제시한 조건이 싫으면 최근 주가로 현금을 받고 주식을 회사에 팔아야 한다. 이에 대해 거버넌스포럼은 “좋은 회사인데 주가가 낮다고 생각해 본질가치를 찾아갈 것으로 믿고 오래 보유하고 있었던 수많은 주식 투자자가 로봇 테마주로 바꾸던지 현금 청산을 당하던지 양자 선택을 강요받는 날벼락을 맞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일반 주주들이 피해를 보는 것과 달리 이번 구조 개편을 통해 ㈜두산의 두산밥캣 지분율은 기존 13.8%에서 42%로 크게 상승하게 된다. 천준범 부회장은 “합병, 분할과 같은 자본거래는 기업의 거버넌스, 즉 의사결정 구조와 주주 간 이해관계를 변경해 빠르게 사업을 성장시키기 위한 구조조정 방식”이라며 “1명의 동일인(총수)이 사실상 모든 계열회사의 의사결정을 하는 한국의 기업집단에서는 합병, 분할을 해도 거버넌스 변경이 없으며 지배주주의 지분율 상승·지배력 강화를 위해 이러한 자본거래가 이용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분할합병과 주식교환을 진행하는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 등 3사 이사회는 주주 이익을 검토하지 않았다”면서 “그룹 전체가 아닌 개별 회사 관점에서 회사와 주주에 대한 이익이 되는지 상세히 검토하기 위해 이번 거래를 공시한 3사 모두 이사회를 다시 개최해 재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도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두산그룹사업 구조 개편 논란에 대해 “시장의 우려가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며 “제도적으로 고칠 부분이 있을지 살펴 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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