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년에 걸쳐 여성들이 이름을 획득해 가는 과정
전통→현대, 공예→예술, 이행하는 파노라마 장쾌
60여개 기관에서 작품을 그러모은 노고에 고마움
자수 뒷면을 본 적이 있는가. 거죽의 매끈한 형상을 구현하기 위해 시치고 홀치고 꼬고 비튼 바느질 흔적이 어지럽고, 시작과 중간과 끝에서 옭아맨 매듭과 이를 끊어낸 잇자국이 선명하다. 물 위 청둥오리의 우아한 움직임이 실은 수면 아래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발짓과 다르지 않다는 것.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2024년 5월 1일~8월 4일)은 몇 개의 층위에서 겉보기 근사함 이면의 고단함을 보여준다. 자수 자체가 그렇고 전시기획자, 국립현대미술관이 또한 그렇다.
들머리에 내보인 기획자의 글은 더덜 없는 전시의 텍스트화다.
“바늘을 도구 삼아 다채로운 색실로 직물을 장식하는 자수는 인류의 오랜 문화유산 중 하나다. 이천 년 역사를 지닌 한국자수는 동아시아 국가들과 교류 속에서 시대마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웠다. 다만 훼손되기 쉬운 재료 특성상 현전하는 고대와 중세 유물은 그 수가 지극히 적고, ‘전통자수’로 불리는 유물 대부분은 명칭과 달리 19세기~20세기 초에 제작되었다. ‘자수’ 하면 대개 이러한 전통자수, 특히 조선시대 여성들이 제작하고 향유한 ‘규방공예’ 또는 이를 전승한 전통공예로서의 자수가 떠오른다. 근대기 이후에는 마치 자수가 역사를 가지지 않은 것처럼 ‘근현대 자수’는 어딘가 낯설다. 19세기 이후 자수의 역사, 즉 개항, 근대화=서구화, 식민, 전쟁, 분단, 산업화, 세계화 등 격변의 시기를 거치면서 그 사이 자수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는 주류 미술사 관심 밖에 놓여 있었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는 자수 작가와 작품을 발굴해 소개하고 미술사에서 주변화되었던 자수 실천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살펴본다. 관람객은 섬세하고 아름답게 수놓은 듯한 자수 역사의 뒷면에 순수예술과 공예, 회화와 자수, 창조와 모방, 전통과 근대, 서양과 동양, 남성과 여성, 공과 사, 구상과 추상, 수공예와 산업(기계)공예, 아마추어리즘과 프로페셔널리즘 등 여러 층의 실들이 엉켜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세상을 명확하게 이분법적 경계에 의문을 던지듯, 자수의 재료인 바늘과 실은 바탕천의 표면을 뚫고 뒷면을 접촉하곤 다시 표면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한국 근현대 자수의 계보와 불연속성을 고찰하는 이번 전시가 자수라는 바깥의 사유를 통해 순수미술 중심으로 서술되는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지평을 확장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기획자는 한번 더 관객을 충격한다.
1전시실 ‘백번 단련한 바늘로 수놓고’ 첫머리에 김종학의 ‘백화만발’(1998, 캔버스에 아크릴릭, 79×229, 개인소장)을 표나게 내세웠다. ‘꽃의 화가’라고 불리는 김종학이 민예품을 수집하고 이를 작품에 녹여내는 작업을 해왔으며 이번 전시(1전시실)에 그의 소장품을 다수 찬조출품하였기에 대우를 했다고 간주되지만, 내 눈에는 다르게 보인다. 자칭 예술과 공예 사이에 금을 긋고 차별해온 기존 미술계에 먹이는 엿이 아닐까. 둘 사이에 무슨 경계가 있으며, 세칭 공예를 폄훼하는 게 말이 되는가, 라는 무언의 외침.
바로 뒤의 배치가 공교하다. 방석(19세기, 비단에 자수, 필드 자연사박물관)과 보료( " ), 활옷( " ). 이들은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나갔던 것들을 빌려온 것이다. 문호를 개방한 조선이 박람회를 통해 처음으로 조선과 그 문화를 세계에 알린 물건들 중 일부다. 당시 고종 정부는 박람회에 종로의 시전을 연상케 하는 부스를 만들고 조선의 이러함을 선보였던 바, 이번 전시품을 포함해 도자기, 유기, 족자, 병풍, 목가구, 가마 등 수공예품이 주류였다. 국가 차원의 참여인 만큼 출품작은 국내 최고의 장인들이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들머리의 이러한 배치는 전시가 19세기 방석과 21세기 아크릴릭 회화 사이를 아우른다는 사실을 표나게 내세운 건데, 전시가 가진 시간성은 물론, 예술-공예, 회화-자수, 창조-모방, 전통-근대, 서양-동양, 남성-여성, 구상-추상, 아마추어리즘-프로페셔널리즘의 낙차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전시는 덕수궁관이 생긴 바대로 1~4전시실로 나누어 펼쳐진다. 1전시실 ‘백번 단련한 바늘로 수놓고’, 2전시실 ‘그림 갓흔 자수’, 3전시실 ‘우주를 수건 삼아’, 4전시실 ‘전통미의 현대화’. 전시실을 차례로 거치면서 이분법적 낙차는 자연스럽게 스펙트럼으로 전화한다.
1전시실은 전통공예. 전통공예라 했지만 실제로는 왕실 및 사대부 계급이 사용했던 고급품들이다.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이거니, 세월에 따라 민간에서 만들어진 것들은 시나브로 소멸되고 장인급에 해당하는 이들의 수작들만 살아남아 박물관에서 거둬들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주류는 병풍. 양기훈, 김규진의 밑그림을 자수로 옮겼다. 순원왕후 가례 때 제작된 것으로 전해지는 십장생수 이층농이 화려하다. 평안도 안주에서 원시 수공업 형태로 만들어 전국에 유통된 ‘안주수’에 제작자이름이 남아있음도 이채롭다. 서울 창신동 지장암 소장의 ‘자수 지장보살도’는 정교함과 화려함이 압권이며 제작연대와 제작자(대정 6년, 안제민)가 박혀있다. 인정투쟁을 해온 불교 화사의 맥일까, 수공예가들이 이름을 얻어가는 단계의 모습일까.
2전시실은 강점기 일본 사립여자미술학교(뒤에 여자미술전문학교로 바뀜) 유학생과 그들이 귀국하여 교사가 되어 가르친 제자들의 결기로 채웠다. 박을복, 나사균, 윤봉숙, 황인원, 이장봉 등 유학생의 작품과 향상여자기예학교(현 동명학원),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숙명여자고보, 이화여자대학교 자수과 등 학생들의 개인 또는 합동작품들이다. 당시 유명짜한 일본인들의 작품과 병렬하여 일본풍 자수와 인상파 영향권임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유학생들의 교과서와 졸업작품은 덤이다.
3전시실은 해방 이후 일본풍의 극복과 전통의 회복, 구상에서 추상으로 옮아가는 단계의 작품들을 모았다. 대학교의 자수과가 섬유예술과로 바뀌면서 벌어진 현상, 또는 자수과를 섬유예술과로 바꾸게 한 역학의 드러남에 해당한다. 전통과 현대가 용광로처럼 들끓어 전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김인승의 밑그림에 수를 입힌 김혜경의 ‘정야’를 필두로 김인숙 ‘장생도’, 엄정윤 ‘들꽃’, 이영숙 ‘무제’, 장영란 ‘기 시리즈’, 김혜순 ‘성화’ 이신자 ‘여인들’, 박을복 ‘표정’, 조정호 ‘성장’, 이장봉 ‘환상’, 한상수 ‘삶’, 최유현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등이 오랫동안 발길을 붙든다. 송정인은 ‘마음시리즈’, ‘작품 시리즈’, 대작 ‘벽걸이’ ‘우화’ ‘작품0 시리즈’ 등 다수의 작품이 공개됐다. 정필순 ‘작품’, 차영순 ‘건축(도시의 얼개시리즈)’, 강신희 ‘드러남; 사물의 파토스’은 가히 압권이다.
2전시실과 3전시실은 공예에서 미술로 대변신하는 과정인지라 자의식의 꿈틀거림이 장관을 이룬다.
4전시실은 이번 전시의 대미. 작가들이 자수를 어떻게 미학적으로 승화하는지, 미디어를 달리하여 어떻게 소화 계승하는지를 보여준다. 말 그대로 전통미의 현대화. 이인선, 써니킴, 정영양, 권복해, 이학, 윤정식, 김학기, 송정인, 박을복, 한상수, 최유현 손인숙, 함경아 등을 아우른다. 특히 한상수의 대작 ‘궁중자수 모란 병풍’, 최유현이 10년에 걸쳐 만든 ‘팔상도’ 앞에서는 그 대담함과 정교함에 말을 잊는다.
1~4전시실을 관통하는 것은 조선 여성이 이름없음에서 이름있음으로 옮아가는 큰 흐름. 1전시실이 이름없음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2~4전시실이 이름을 획득하는 과정을 장쾌하게 보여준다.
얼추 130여 년의 시간을 2시간에 훑어내리는 일인지라 전시관람은 격렬한 정신노동에 해당한다. 앞에서 언급한 기획자 말마따나 복잡하게 얽힌 경계를 넘나들어야 하거니와 그것이 품은 뒷모습까지 들여다보이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전시장 사이 소파에서 잠시 눈 감을 수밖에.
주관람층은 여성, 그 중에서도 중장년층이 주류다. 전시장에 머무는 동안 끊임없이 귓등으로 들려오는 말은 감탄사 “어머!”와 “어깨 빠졌겠네”라는 탄식. 한물 간 장르라고 치부했던 기억 속의 자수가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작품의 공교함과 제작의 수고로움에 대한 공감이다. '지구인 반절' 여성작가들(물론 남성작가들도 있지만)의 굵직한 자취이니 그럴 법하지 않은가. 여성들끼리만이 아니라 남녀, 노소 손잡고 함께 보면 그 가치는 두 배가 될 것이다.
모두 170여점. 60여 개 기관에서 그러모으는데 들인 미술관 직원들의 노고로 한목에 눈맞춤하는 기회를 얻었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변방으로 치부된 자수를 미술관으로 끌어들여 어엿한 얼개로 엮어낸 시각 역시 치하해 마지 않는다. 개별 작품의 성격에 맞춰 전시디자인을 짜임새 구성한 것 또한 높이 살 만하다. 국현 소장품이 20여 점에 그친 점은 어떻게 봐야 할까. 이번 전시를 기회로 자수 소장품을 늘려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 한편으로 관련 박물관이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 있나 싶기도 하다. 다만 서울관에서 열고 있는 ‘정영선:이땅에 숨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의 조경 분야처럼 홀대받는 장르를 조명하는 전시를 뚝심 있게 열어 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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