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도도하게 펼친 잃어버린 고향의 그리움
주변부에서 중심으로 우뚝선 커리어우먼 진면모
촘촘하게 풀어낸 전시 한 차례 봐선 잘 안 보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는 다중적이다. 나는 <국립현대미술관 저력을 보여준 '정영선 아카이브'전>(2024. 4. 15) 기사에서 1세대 조경가의 작업을 통해 생소한 분야인 조경을 친근하게 보여주려는 노력이 돋보인다고 썼다. 전시를 두 차례 더 보고, 전시 기획자를 만나 인터뷰한 뒤에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다만 거기에 사족 몇 개를 붙인다.
<정영선 전>은 지난 4월 5일에 시작돼 9월 22일까지 열린다. 미술관 쪽에 따르면 전시가 중반을 넘긴 7월 23일 현재 17만 9680명의 관객이 들어 하루 평균 1648명이 몰렸다. 비교치가 없어 관객의 다소를 평가할 수 없으나 할애된 전시 면적에 비해 관객 수가 많은 것은 틀림없다.
왜 그럴까?
향수. 일부 토박이를 빼고 서울시민은 지역민 유전자를 갖고 있다. 아스팔트길, 지하철 출근으로 콘크리트 빌딩에서 월급쟁이로 살지만 그럼에도 길을 잃지 않음은 한가닥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고향 또는 언젠가 돌아가고픈 고향에 대한. 화분 몇 개로 달래고 있을 향수는 곧 자연 속의 삶일 터이다.
정영선도 비슷한 생각을 피력한 바 있다.
“내게도 언젠가 돌아가고 싶은 낙원이자, 살아있는 한 영원히 남을 그리움의 장소가 있다. 할아버지가 경영하던 고향 칠암과수원이다. 지금은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꿈속의 도원 같은 곳이다. 사방이 논과 깊은 반석 위를 흐르는 시냇물로 둘러싸인 얕은 둔덕 하나를 차지한 할아버지의 작은 과수원. 언덕 제일 꼭대기에 집이 있고 작은 과수원이 언덕 아래로 펼쳐진 곳. 사랑방 큰 유리창에서는 사과꽃이 눈처럼 날리고, 그 너머 아스라이 논들이 있고 인가는 한 채도 보이지 않는 그런 곳.”
정영선은 자신의 작업에 향수를 녹여 넣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관객의 심금을 건드렸다고 본다.
미술관은 어떻게 이를 사전에 간파하고 기제를 마련했을까?
기획자인 이지회 학예사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모 사설전시장에서 기획한 정원가꾸기 전시가 촉매가 되었다는 것. 그 전시는 대중매체가 주목하지 않았지만 알음알음으로 관객이 많이 들었고, 관련 전시기획자들이 한번쯤 들를 만큼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 전시에 정영선 몫으로 일부가 할애되었는데, 정영선, 또는 조경에 포커스를 맞춰 별도의 전시를 꾸려도 되겠다고 판단했다는 게 학예사의 말이다. 국현에서는 김구림처럼 생존한 원로작가를 조명하는 전시를 펼쳐온 바 그 카테고리에 정영선을 포함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정영선이 기성의 땅, 기성의 건축, 나아가 남성성이 지배하는 건축계에 자신의 생각을 투사하여 전혀 다른 의미를 드러내는 작업이 변기를 뒤집어 전시장에 냄으로써 기성 예술을 전복한 마르셸 뒤샹에 비견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도도 있었다고 했다.
실마리야 어쨌든 전시가 흥행한 데는 조경가 정영선의 인간승리 드라마도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여기엔 조경의 탯줄이 얽혀 있다.
한국 현대조경은 박정희 시대에 태동했다. 당대 고속도로 건설, 사적지 정화, 관광지 개발, 산업단지 조성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면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조경가 오휘영의 청와대 조경담당관 기용, 한국종합조경공사 설립, 대학의 조경과 개설, 조경기술사 제도 시행 등이 성사됐다. 정영선은 대통령령으로 개설된 서울대 환경대학원 1기 졸업생이었고, 재학 중 경주 불국사 성역화 기본계획 수립에 참여했으며 여성 1호 국토개발기술사(조경) 자격을 취득한 바 있다.
국가 및 재계 클라이언트의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면서, 정영선은 자신의 조경철학을 다듬어나갔다. 배정한은 이를 세 개의 변곡점으로 설명한다. ‘아시아공원’과 선수촌에서 관계 맥락 연결을, ‘희원’에서 경관을 넘나들기를, ‘선유도공원’에서 지사(地史) 읽기라는 철학을 추출해 냈다. 안명준은 정영선의 전통조경론을 대상지의 내외부 경관을 연결한 차경론, 경관을 시퀀스로 해석하여 이야기의 흐름을 도입한 원로론(園路論), 한국의 지형적 특성을 반영하는 지사론(地史論)으로 정리한 바 있다. 혹자는 이를 토종식물의 중시와 더불어 정선의 진경산수화 개척에 비견하기도 한다. 겸재가 기록자로서 유력 반가의 산수유람에 동행하면서 자신의 화론을 정립한 과정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남성성이 지배하는 건축계에서 치열한 노력 끝에 우뚝 선 그의 행보는 커리어우먼의 표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는 ‘연결사’를 자처하는데, 이는 인간과 자연, 인공과 자연, 건축과 조경, 자본과 조경 사이에서 작동하고, 여기에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대지처럼 여성성이 큰 몫을 했다고 본다. 구축적인 건축이 탄소배출이라는 원죄를 갖고 있는 데 반해 조경이 이를 상쇄하는 점도 이와 관련되지 않는가.
전시 자료들은 각각의 프로젝트에서 정영선, 또는 서안의 몫이 어디까지인지를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물론 조경이 주가 되는 정원이나 리조트 설계는 전체가 그의 몫임이 분명하지만 선유도공원처럼 건축과의 협업이 중요한 프로젝트의 경우 건축-조경의 경계선이 불분명하다. 이에 대해 이지회 학예사는 협업을 통해 프로젝트가 아름답게 완성되는 점, 토목, 건축의 보조적인 분야로 치부되어온 조경이 독립분야로 정립되는 과정에 주목하라고 말했다.
눈 밝은 이는 전시장 들머리에 정영선이 대표로 재직한 서안의 전현 직원들 이름이 표기돼 있음을 보았을 터이다. 정영선의 작업이 혼자만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서안 구성원들의 공동작업임을 내보이기 위함일 터이다. 이는 전시가 정영선 개인 또는 서안의 작업을 펼쳐보이지만 실제는 이를 통해 현대 한국 조경사를 조명하고자 하는 의도와 통한다.
그런 점에서 전시장은 조경과 정영선을 한 번에 품기에 넉넉하지 않다. 어쩌면 미술관이 품기에는 조경이 그리 낙낙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이지회 학예사 말마따나 조경을 통해 건축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로 삼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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