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끼로 뭉친 경기도미술관 ‘민화와 K팝아트 특별전’
옛그림과 현대작품 나란히 “프레임 새로 짜라” 주문
‘똘끼’ 기획자가 ‘똘기’어린 작가들을 모아 ‘똘끼’ 넘치는 전시를 꾸렸다. 경기도미술관 ‘민화와 K팝아트 특별전 ‘알고 보면 반할 세계’(11월 15일~2025년 2월 23일)를 두고 이른다. 경기도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는 전시다.
전시 얼개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K팝아트 작품들(102점)과 조선시대 민화(27점)를 나란히 또는 마주보게 섞었다. 이들 옛 그림과 동시대 그림의 병치는 개별로는 시간의 고금, 미디어의 고정성과 유동성(다양성), 작가군의 익명성과 기명성 등이 대비되면서 꼬리뼈가 간질간질한 낙차를 보여주는데, 전체적으로는 대중성이란 공통점을 도드라지게 만든 게 묘미다. 말이 뒤섞었지 어디 뒤죽박죽이겠는가.
전시를 짧게 줄이면 “이 잡것들아, 바로 이게 K팝아트라구”다. 1980년대 이후 서구에서 밀려들어온 팝아트에 대한 반작용, 혹은 한국적 변용으로 일어난 것으로, 전통 민화의 속성, 또는 세계관에 닿아있는 당대 작가들의 작품군이라는 주장이다. 통상 K팝아트라고 하면 이동기 손동현 등 만화, 영화, 게임의 캐릭터를 소재로 하여 알락달락 키치스런 색깔의 매끄러운 그림으로 알려진 터에 ‘프레임을 다시 짜야 한다’는 도발이다. 일부 게으른 평자와 발 빠른 화랑의 농간에 놀아난 당신들은 바보라는 얘기다. 경기도미술관 전유라 함은 서울에서 떨어져 있어 기존 판과 틀을 벗어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방초아 학예사가 오랫만에 돌아온 김종길 팀장과 합을 맞췄기에 판과 틀을 뒤집을 수 있었다.
민화의 속성 또는 세계관이 무엇이기에 K 팝아트의 원조라고 도발하는가?
전통민화는 양반 권력층이 향유한 산수화나 문인화 등과 달리 풀뿌리 민간에서 생산, 소비한 그림이다. 해학, 풍자, 기복, 주술적인 내용을 우화적, 상징적으로 풀어 다시점 기법 등 희한한 기법으로 쌓은 구조를 갖고 있다. 걸개, 병풍, 장롱 등 생활용품이 되어 사용자와 생로병사를 함께하는 속성을 갖는다.”
민화는 당연히 박물관(가회민화박물관, 경기대학교 소성박물관)에서 빌려왔을 테고, K팝아트는 어디서 빌려왔는고 하니 소장처가 아니라 개별 작가들한테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민화는 조선시대 후반 민간에서 유행한 ‘촌스런 그림’으로 규정되었고, 소장처가 안착된 데 반해 기획자가 염두에 둔 K팝아트는 잊혀졌거나 아직 제 철을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획자의 발넓음과 눈썰미가 발빠름과 어우러져 두루 한자리에 모았으니, 앞엣 것이 당기고 뒤엣 것이 당겨 두세 번 보게 만든다.
전시는 ①꿈의 땅, ➁세상살이, ③뒷경치 등 세 가지 소주제를 뭉쳐 잇댔다. ①꿈의 땅에서는 수복강녕을 빌고 선경을 꿈꾸고 ➁세상살이에서는 현실을 비틀고 조롱하며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③뒷경치에서는 도래할 세상에 대한 상상을 펼쳤다. 민화와 현대작품을 병치하여 하등 이상하지 않은 것은 둘 사이에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는 비슷함이 있음이요, 새로 짜고자 하는 프레임이 적실하다는 얘기다. ‘DMZ산수’ 연작의 손기환은 정치적 팝아트인 민중미술에 대한 오마주, 탱화 그리듯 경면주사로 그린 ‘불꽃변주’ 밑그림은 이수경, 옛 그림을 모티브로 하여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박달나무 동산’은 손동현의 재발견이고, 나머지 작가들은 과문한 나에겐 기획자의 공으로 돌릴 수 밖에 없는 똘끼의 발굴이다.
전시장을 돌아볼 차례다. 경기도미술관 전시의 특징은 전시장의 생김을 그대로 따른다는 것. 1, 2, 3, 4 전시실이 좁은 통로로 연결되는 구조이다. 보통 1, 2 전시실을 튼 메인 전시실로 완결되고, 전시가 커지면 3, 4 전시실을 추가로 이용한다. 듣자니 애초 3개 전시실만 쓰기로 했다가 4개 주전시실에 2개 소전시실로 규모가 커졌다고 한다.
인트로 공간은 전시 소개문 외에 ‘포도도’가 한쪽 벽을 메우고 있다. 포도도는 한폭 크기가112×47.5cm인 10폭 병풍으로 포도덩쿨이 용수철을 늘인 것처럼 가로로 퍼진 모양이다. 가회민화박물관 대여품인데 솜씨가 뛰어난 대작이다. 자손이 많고 집안이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내용. 가회 수장품이 대개 그러하듯이 이것 또한 대갓집 잔치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전시실은 박경종 ‘만수만복’ ‘보물찾기’, 백정기 ‘촛불발전기와 부화기’ ‘퓨저’, 김지평 ‘백납병풍’ ‘두려움없이’ ‘산수화첩’, 이양희 ‘twig & trunk’ 이수경 ‘쌍둥이 춤’ ‘불꽃변주 2023’ 연작, 오제성 ‘INDEX#3-다보각경도’ ‘금강산전도’ ‘갓트론’, 김상돈 ‘불광동 토템(청, 흑, 적)’ 이은실 ‘망상의 일렁임’ 연작, ‘꽉찬’ ‘숨겨진 계곡’ 박그림 ‘웅조도’ ‘이간’ ‘감로’ 이인선 ‘뿔과 뼈’ ‘등용문’ ‘꿀과 독’ ‘아에이오우’ 손동현 ‘박달나무 동산’(10), ‘웅크린 용’
가장 내 눈을 끈 작품은 박그림. 웅조도라 하니 수컷일 터인데 사랑을 나눈다. 중성적인 이미지를 가진 관음도를 모티브로 한 ‘이간’. 두 남성이 아기 호랑이를 보듬고 있다. 두 작품 다 동성애가 주제다. 박카스 병에 댓가지를 꽂은 ‘감로’와 더불어 기지가 번득인다. 김상돈의 ‘불광동 토템’ 시리즈는 양공주를 위한 위로, 또는 과열된 욕망에 대한 조롱으로 읽힌다. 기지촌에서 얻었을 법한 낡은 플라스틱 의자를 모란, 바나나잎, 댓닙, 양파, 마늘 따위로 장식했다.
이은실의 작품은 ‘심리적 풍경화’라 할 법한데, 채도를 달리하며 뭉개진 형상 속에 보는 이의 심리에 따라 여러 형상이 보인다.
2전시실은 인생살이. 김은진 ‘신의 자리-인산인해 2’ ‘내려오는 길 1’ 손기환 ‘DMZ 산수’ 김재민이 ‘태도의 연습’ ‘소인 연구 중간발표-소인에게 사랑을’을 배치했다. 최수련은 두 소주제에 걸쳐 있어 ‘한글세대를 위한 필사(귀신의 이치)’ ‘파자공부’ ‘아홉가지 질문’까지는 인생살이, 그 다음 ‘염라대왕 자네는’ ‘우물 밑에 귀신이 사는 곳’ ‘죄를 논할 일이 아니다’는 뒷경치로 친다. 분류야 아무러 하든, 손기환은 빼고 김은진, 김재민이, 최수련 등 젊은 똘끼부대다. 김은진 ‘신의 자리-인산인해 2’는 히에로니무스 보스를 떠올리게 하는데, 한국사회를 살아내는 여성들 이야기를 담았다. ‘내려오는 길1’은 내려다 본 여성의 머리채 모양을 모티브로 산수화를 그렸다. 최수련은 설화집, 화론집을 한글로 풀어 필사하는 과정을 작품화했다. 예컨대 ‘한글세대를 위한 필사(귀신의 이치)’의 경우 광목에 무지개 다리와 버드나무 그림을 깔고 말풍선 안에 귀신론 원문과 번역문을 그려넣는 식이다. 我等爲鬼神者 己欲溺而溺人, 己欲縊而縊人, 有何不可耶 우리처럼 귀신이 된자들은, 스스로 물에 빠져 죽으면 다른 사람도 익사하길 바라고, 자산이 목매달았으면 다른 사람도 목매달아 죽기를 바라는 법입니다. 이것 역시 어찌 불가하겠습니까? 김재민이는 참 각별하다. 대한소인협회장, 즉 소인 우두머리를 자칭하는 작가는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 이야기를 조사하여 그 특징을 설치 작품화한다. 그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소인의 특징은 △위계에 민감하다. △사랑을 준다 싶은 집단 또는 네트워크에 빠져든다 △‘나도 힘들어’라는 태도를 보인다 △큰 의제나 담론을 좋아한다 △조바심이 있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은 △모든 상황을 이분법적으로 사고한다. △상대방에게 낙인을 찍는다. △특정사건이나 상황을 지나치게 일반화한다. △긍정적인 상황은 최대한 배제한다.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상황을 자신과 연결 지어서 생각한다. 윤 아무개를 연상시키는 쩍벌남도 작가가 소재로 삼은 걸로 미루어 소인 축에 들지 싶다.
3전시실은 특히 똘끼가 난만한 작가들이다.
비교적 소품에 속하는 임영주 평면화는 ‘밑’이라는 통칭 하에 부제를 붙이는 방식인데, 그 꼴이 요상하다. 깜깜한 밤에 산 속에 들어가 그려낸 야경. 당연히 제대로 뵈는 게 없고 있어도 있는 듯 없는 듯하고 어머 저거 귀신 아냐? 하는 것도 들어있다. 사찰벽 십우도를 모티브로 한 ‘심우도’. 무심히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자 뒷모습이 뽀글뽀글 파마 아줌마다. 지오디 노래 가사를 화제로 한 풍경화 ‘우릴봐라’는 ‘우담바라’ 패러디다. 비디오작품 ‘요석공주’ ‘인증샷-푸른하늘 너와 함께’ ‘애동’은 짤방이라고 하는 ‘밈’을 단위로 한다. 원효의 애인을 모티브로 한 요석공주에는 작가 본인이 출연해 기상천외한 짓을 한다. ‘애동’은 애국가 해돋이 영상에 등장하는 촛대바위에 투사된 성적코드를 담았다.
지민석 ‘오문자도’는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백수백복도’를 현대화한 작품. 민화의 수, 복, 강, 녕 대신 코(카콜라), 스(타벅스), 구(찌) 자로써 현대인의 욕망을 잡아냈다. 조현택 ‘스톤마켓’ 시리즈. 파주, 익산, 화순, 여주, 부산 등 공동묘지 근처에 있는 석조물 판매장 사진으로 병풍을 만들었다. 불교, 도교, 천주교 등 종교시설 또는 무덤용 석조물인데 현세, 내세의 기복신앙이 집적된 조형물이어서 앵글을 잘 맞추면 사진 병풍으로 딱이다. 번지를 잘못 찾은 듯한 권용주의 ‘석부작’ 연작. 작가가 주워모은 시멘트 덩어리, 계란판, 신문지 등 폐품으로 유사품 바위를 만들고 그 위에 난을 심었다. 현실이나 내세나 그렇고 그렇지 않겠나.
전시는 뒤로 갈수록 무게와 의미가 더해지는 미괄식이다. 현대작품에 초점을 두되 끼워넣은 민화는 전시를 완성하는 동시에 자체로도 가품들이어서 그것만 보아도 훌륭하다. 나는 인트로 포도도 하나만 보고 돌아가도 되지 싶었다. 안쪽을 둘러보기 전까지는.
출품작가들은 모두 민화의 속성 또는 세계관에 끈을 대고 있는데, 이들은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가 아니라 ‘좋은 것이 우리 것이여’라고 정리된다. 이우환, 김환기 등 단색화가 세계적인 조명을 받은 것이 서구의 오리엔탈리즘 관점이었다면, 작년 말~올해 초 맨해튼 구겐하임 전시에서 집중 조명된 김구림, 성능경, 이강소, 이승택, 정강자, 하종현 등의 실험미술은 오리엔탈리즘이 제거된 한국이 초점이겠다. 민중미술은 그 연장선에 있어 다음 차례로 꼽힌다. 경기도미술관의 전시는 작가 본인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포스트 민중미술’ 범주로 묶을 수 있다. 김종길 학예운영팀장은 민중미술 다음 차례는 K팝아트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거기에 한 표 추가한다.
덧붙임: 80년대 초기 미술계 소집단운동 초기 작가와 작품들 역시 민화, 탈춤, 불교, 동학 등에 끈을 대고 있었다. 운동권으로 휩쓸려 들어가기 전까지 재치와 기지가 번득였다. 그 가운데 미술동인 ‘두렁’이 있어 민중적 표현양식을 고민한 바, 미적 전통의 계승과 예술작업의 민주화에 기여하였다. 두렁 창립 40돌을 맞아 ‘두렁, 지금’ 아카이브전이 관훈갤러리 1~3층에서 11월9일부터 29일까지 열린다. 현장예술을 추구한 탓에 두렁의 소산은 남은 게 많지 않다. 작가들이 개별적으로 갖고 있는 것들을 한데 그러모았다.
때 맞춰 자료집 <두렁, 앞뒤-한국 민중 미술사의 재구성>(미술동인 두렁 컬로퀴엄 편찬모임+수류산방)이 나왔다. 800쪽. 라원식, 김노마, 김명심, 김봉준, 김주형, 김진수, 박홍규, 성효숙,양은희, 이기연, 이억배, 이은홍, 이정임, 이춘호, 장진영, 정정엽 등 16명을 구술을 채록하여 활동의 전모를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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