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성장률 상향하며 불쑥 금리 인하 제안
원 달러 환율 하루 만에 10원 가까이 상승
외식 물가·공공요금·서비스비도 고공 행진
“섣부른 금리인하는 고환율·고물가 고착화”
“내수 부양보다 불안한 물가 잡는 게 우선
오는 23일 열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를 앞두고 때 이른 금리인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반도체가 수출 회복을 이끌고 있으나 내수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어 선제적으로 금리를 내리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2%포인트까지 벌어진 기준금리 격차만 생각하다가는 금리인하 시점을 놓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그러나 냉면 한 그릇 가격이 1만 2000원으로 치솟는 등 물가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고 원 달러 환율도 달러당 1300만 원대 중후반을 맴돌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인하하는 것은 위험성이 크다. 고환율과 고물가가 고착돼 서민 생활을 더 힘들게 할 수도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금리 인상 타이밍을 놓쳐 1년 넘게 금리를 동결하는 비정상적 통화정책을 펼쳤다.
금리인하 필요성을 처음으로 제기한 기관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다. KDI는 지난 16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2.6%로 상향 조정하며 하반기 물가가 안정되면 통화정책의 긴축기조를 서서히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수출은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내수 부진이 계속되면 성장률이 떨어질 수 있으니 금리를 내려 경기 부양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다. KDI 정규철 경제전망실장은 “물가가 어느 정도 안정된다면 고금리 기조도 점차 중립적으로 가면서 우리 경제가 정상적인 수준으로 갈 것으로 기대한다. 재정정책도 지금 다소 확장적인 기조라고 평가하는데 경제가 정상적인 궤도로 간다면 재정 적자 폭도 줄면서 재정정책도 정상적인 궤도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에 앞서 국책연구소인 KDI가 금리인하의 운을 뗀 셈인데 하루 만에 ‘위험한 발상’이라는 사실이 증명됐다. KDI 자료를 낸 다음 날인 17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인사들이 금리인하를 경계하는 발언을 쏟아내며 원 달러 환율은 10원 가까이 올랐다.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이 둔화하면서 금리인하 기대감이 높아졌으나 연준 위원들은 금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완전히 꺾이기 전까지 섣부른 금리인하는 금물이다. 내수 부양보다 불안한 물가를 잡는 게 우선이다. 외식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고 전기와 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17일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서울 기준 8개 외식 대표 메뉴 중에 김밥과 자장면·칼국수·냉면·김치찌개 백반 등 5개 품목 평균 가격은 4월에도 전달 대비 또 올랐다. 김밥 한 줄 가격은 3362원으로 2년 전보다 15.6%, 1년 전 대비 7.7% 각각 상승했다.
서울지역 자장면 가격은 지난 3월 7069원에서 지난달 7146원으로 뛰었고 칼국수 한 그릇 값은 9115원에서 9154원으로 인상됐다. 냉면 가격은 한 그릇에 평균 1만1538원에서 1만1692원으로 가파르게 오르며 곧 1만 2000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을지면옥과 필동면옥 등 일부 유명 냉면집은 한 그릇에 1만 6000원까지 받고 있다. 이발소 요금과 목욕비 등 개인서비스 요금도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금통위 회의 직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하반기 월평균 2.3%까지 내려갈 것이라면 하반기 금리인하를 할 수 있겠으나 그보다 높다면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높아지는 것과 상관없이 물가 안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성급하게 금리를 내렸다가는 환율이 급등해 수입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이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지난달 주택 거래가 늘면서 주택담보대출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다시 늘고 있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고금리 상황에서도 큰 폭으로 증가한 가계와 기업 빚은 한국 경제의 뇌관이다. 이런 측면에서 선제적인 금리인하는 ‘내수 침체’라는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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