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고금리 이자부담에 여유자금 50조 감소
기업도 경기부진 여파로 순조달액 90조 줄어
역할해야 할 정부까지 수입보다 지출 더 축소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와 기업의 자금 사정은 크게 쪼그라들었다. 가계는 은행‧보험 등 금융기관 예치하거나 채권에 투자한 액수가 전년보다 50조 원 넘게 줄었다. 기업들은 금융기관 차입이나 채권‧주식 발행으로 조달한 돈이 90조 원 가까이 감소했다. 고금리로 이자 내느라 허덕였고, 경기부진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4일 공개한 ‘2023년 자금순환(잠정)’에 따르면 가계(개인사업자 포함) 및 비영리단체의 지난해 순자금 운용액은 158조 2000억 원으로 전년(209조 원) 대비 50조 8000억 원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순자금 운용액은 해당 기간 중 자금 운용액에서 조달액을 뺀 값을 말한다. 자금 운용액은 금융기관 예치금과 보험 및 연급 준비금, 채권, 지분증권 및 투자펀드, 현금 등이다. 자금 조달액은 금융기관 차입금과 정부 융자, 상거래신용 등이다. 통상 가계는 여유 자금을 예금이나 채권, 주식 등에 투자하므로 순자금 운용액이 양(+·순운용)이며, 이를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기업·정부에 공급한다.
지난해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자금 운용액은 194조 7000억원으로 전년(283조 5000억)보다 88조 8000억 원이나 줄었다. 2019년(181조 6000억 원) 이후 가장 적은 규모다. 부문별로는 금융기관 예치금, 보험 및 연금 준비금, 채권 등이 10조~20조 원 감소했다. 특히 증권 및 투자펀드는 지난해 –4조 9000억 원으로 전년에 비해 36조 6000억 원이나 크게 줄었다. 운용액이 마이너스인 것은 해당 기간 중 금융자산 처분액이 취득액보다 많았다는 의미다. 지난 2013년(-7조 원) 이후 최저 수준이다.
가계의 자금 운용액이 이렇게 감소했다는 것은 여유 자금이 그만큼 없었다는 뜻이다. 한은은 가계가 위험자산을 축소하고, 우량주에 집중하면서 운용액이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정진우 한은 자금순환팀장은 "금리가 상승하면서 이자 비용이 늘었고, 경기 부진이 지속되면서 전체적인 가계소득 증가율도 둔화했다"고 설명했다.
가계는 지난해 총 36조 4000억 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한은 통계 편제가 시작된 2009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전년(74조 5000억 원)과 비교해 조달액이 38조 1000억 원이나 줄었다. 부문별로는 자금 조달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금융기관 차입(대출)은 66조 1000억 원에서 29조 6000억 원으로 급감했다. 이자 부담이 버거워 대출받을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기 부진의 영향으로 개인사업자 등의 상거래신용도 크게 둔화됐다.
지난해 비금융 법인의 순조달 규모는 109조 6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88조 5000억 원 축소됐다. 경기부진의 여파로 기업 경영자금의 조달 규모가 줄어든 것이다. 비금융 법인의 순조달 규모 지난 2021년 82조 원에서 2022년에는 198조 1000억 원으로 116조 1000억 원이나 급증했었다.
자금 조달 방법 가운데 금융기관 차입이 208조 5000억 원에서 63조 6000억 원으로 급감했고, 채권 발행도 55조 3000억 원에서 26조 5000억 원으로 줄었다. 상거래신용도 51조 9000억 원에서 8조 3000억 원으로 감소했다. 한은은 기업 자금 조달액이 감소한 원인으로 대내외 불확실성 증대, 금리 상승에 따른 자금조달 비용 증가, 해외 직접투자 축소, 매출 부진 등을 꼽았다.
지난해 일반정부의 순조달 규모 13조 원으로 전년의 34조 원보다 축소됐다. 정부의 자금 운용액은 64조 6000억 원으로 전년(57조 원)보다 7조 6000억 원 증가한 반면, 조달액은 77조 6000억 원으로 전년(91조 원)보다 13조 4000억 원이 줄었다. 특히 국채 발행 규모가 85조 원에서 60조 원으로 20조 원이나 급감했다.
고금리와 경기 부진으로 가계와 기업 부문에 위축돼 있는 상황에서 정부조차 제 역할을 다하지 않고, 수입이 줄어든 것보다 지출을 훨씬 더 줄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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