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81기 동기회, '예비역 연대' 응원 캠페인

"대통령실 외압 밝혀라" 700km 행군할 계획

'적탄 뚫고 전열 갖춰 상륙' 해병대 문화 반영

예비역 단체로 국방 부조리에 목소리 낸 첫 사례

박창식 전 국방홍보원장
박창식 전 국방홍보원장

지난해 7월19일 해병대 1사단에서 복무하던 채아무개 일병이 수해가 일어난 경북 예천 지역에서 안전 장비도 없이 하천 수색에 투입됐다가 숨졌습니다(숨진 뒤 상병으로 추서).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은 임성근 사단장을 포함한 간부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경찰에 이첩하겠다고 이종섭 국방부 장관한테 보고해 직접 결재 서명을 받았습니다.

이 장관은 다음날 갑자기 결재를 뒤집었습니다. 국방부는 박 대령이 의문을 제기하자 보직에서 해임한 뒤 대대장 2명만을 경찰에 이첩했습니다. 장관은 왜 결재를 뒤집었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사단장을 봐주려고 장관에게 외압을 가했다는 추측이 나왔죠. 추측이 맞는다면 대통령은 직권남용 혐의를 받게 됩니다. 박 대령은 항명 및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군사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채 상병은 안타깝게 희생됐으며, 박 대령은 강직하게 직무를 수행하다가 고통받고 있습니다. 외압 여부를 포함해 사건 진상을 규명해야 합니다.

중요한 논점이 또 있습니다. 해병대 출신 예비역들이 진상 규명과 박 대령 응원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박 대령이 군검찰에 출석할 때 김태성 회장을 비롯한 학사장교 임관 동기회원(사관 81기) 몇 명이 우산을 받쳐준다고 함께 나갔습니다. 동기회원들은 성명서를 냈고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도 했습니다.

해병 1158기 출신인 정원철씨는 그 무렵 오픈 채팅방을 열었습니다. 장교, 부사관, 사병을 가릴 것 없이 예비역 8백여명이 모여들어 ‘해병대 예비역 연대’라는 단체를 만들었죠. 사관81기 동기회는 지난해 11월, 지난 2월, 3월에 해병대 복장을 갖추고 25km, 때로는 1박 2일 50km 행군을 했습니다. 해병대 2사단이 있는 김포에서 출발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향하기도 했죠. 4월6일에는 국회의사당에서 출발해 경찰청, 주한 호주 대사관, 조계사, 명동성당을 거치는 행군을 시작합니다. 이번 행군은 매월 1회 2년 동안 김포 해병대 2사단 앞, 채 상병이 쉬고 있는 대전 현충원, 사고 발생지인 경북 예천, 포항 해병대 1사단 앞을 주요 경로로 삼아 700km 구간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박정훈 해병대 전 수사단장(대령)의 3차 공판이 열린 3월2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해병대 예비역들이 수사 회피 의혹을 받는 이종섭 주호주대사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채상병 특검법' 수용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정훈 해병대 전 수사단장(대령)의 3차 공판이 열린 3월2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해병대 예비역들이 수사 회피 의혹을 받는 이종섭 주호주대사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채상병 특검법' 수용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병대 예비역들의 캠페인을 보면 단결력이 대단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김태성 동기회장은 필자와 인터뷰에서 자신들 활동과 해병대 문화 연관성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다룬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 보셨죠? 배를 타고 바닷가 적진으로 돌격하는 작전은 매우 위험합니다. 적한테 포위당하거나 흩어지면 모두 죽죠. 대원들이 서로 믿고 강력하게 결속해야 총탄이 쏟아지는 싸움에서 이기고 살아남죠. 상륙작전 전문 부대인 해병대는 단결력이 중요합니다.”

이번 기회에 해병대의 역사적 기원과 발전 과정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서양 해군 역사에서 돛단배, 즉 범선을 운용하던 시대에는 함선에 해병대를 태우고 다녔습니다. 적 함선에 다가가 갈고리를 던져 묶어놓고 해병대가 뛰어넘어 가서 상대와 백병전을 벌였습니다. 범선 시대가 저물고 증기선을 도입하자 양상이 달라졌습니다. 해군은 상대 함선과 멀찍이 떨어져서 함포를 쐈죠. 해군 장교들은 이제 해병대를 배에 태워주지 않았습니다. 해병대는 육상에 있는 해군 시설이나 경비하라고 했죠. 해병대 정체성이 흔들렸습니다.

1915년 1차 세계대전 때 영국과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연합군은 흑해로 진출하려고 보스포러스 해협에 있는 갈리폴리 해안 상륙작전을 벌입니다. 나중에 영국 총리가 되는 윈스턴 처칠이 해군성 장관으로서 작전을 지휘했는데요. 상륙작전에 대한 아무런 개념도 이론도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 밀어붙였다가 25만명의 사상자를 내고 참패합니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피트 엘리스(1880~1923)라는 미군 장교가 현대 전쟁에서 해병대 역할에 관한 해답을 찾아냅니다. 그는 소령, 중령 때인 1920년대초에 상륙작전 개념 연구 보고서들을 작성해 제출했고 미 해병대는 이것을 공식 전쟁계획으로 승인했습니다. 그는 천재적인 두뇌 소유자였지만 알코올 중독자로 악명도 높았습니다. 미 해병 대학교에서는 대형 강의실에 엘리스 홀이란 이름을 붙이고 강의실 입구에 그의 흉상을 놓았습니다. ‘엘리스와 미 해병대의 전쟁 방식’(2021년 번역 출간)이란 책이 그의 생애와 주요 저작을 잘 소개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3년 9월26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제75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분열을 지켜보며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3년 9월26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제75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분열을 지켜보며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필자도 상륙 전문 부대로서 해병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전쟁 때 전선 중심으로 적과 일진일퇴 공방전을 벌인다면 전쟁이 길어지고 피해가 커집니다. 전선 뒤쪽으로 상륙해 적의 허를 찌른다면 피해를 줄이고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죠. 이렇게 중요한 해병대가 흔들리지 않도록 채 상병 사건 진상을 빨리 규명하면 좋겠습니다.

해병대 예비역들의 활동은 의미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국방 분야에는 재향군인회, 육군협회, 해군협회, 공군협회, 해병전우회 등 큰 예비역 단체들이 있습니다. 육군 윤 일병 사건(2014), 공군 이예람 중사 사건(2021) 등 장병 인권 침해 사건이 종종 일어났습니다. 그때 굵직한 예비역 단체들이 장병 편에 서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해병대 예비역들의 활동은 국방 부조리가 생겼을 때 예비역들이 능동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나서는 첫 사례입니다. 해병대와 국방 발전에 보탬이 될 겁니다.

 

* 이 칼럼은 <뉴스토마토>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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