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수공천하면 친명, 경선하면 비명”

제멋대로 계파 이름 붙이는 언론

4시간 만에 비명, 친명 계파 바꾸기도

국힘 분신 시도엔 ‘조용한 공천 속 일부 논란’?

더불어민주당 이개호 정책위의장이 8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홍익표 원내대표. 2024.2.8.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개호 정책위의장이 8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홍익표 원내대표. 2024.2.8. 연합뉴스

“특정인은 공천을 받으면 친명(친이재명)이 됐다가, 불이익을 받으면 가까운 사람임에도 바로 비명(반이재명)이 됐다가, 다시 그게 결정되면 다시 친명이 됐다가, 이런 식으로 자의적으로 쓰면 안 되겠다. 이런 왜곡의 결과가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통째로 망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4일 국회에서 최고위원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한 말이다. 이날 이 대표는 작심한 듯 40분간 질의·응답하며 ‘고무줄 잣대’를 들이미는 언론에 대해 비판했다. 민주당 관계자에 따르면 이 대표의 발언은 이개호 정책위의장 공천에 대한 언론의 보도 행태를 지적한 것이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달 25일 이 의장을 전남 담양·장성·함평·영광에 단수공천했다.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은 호남 지역에 단수공천을 한 이유에 대해 “상대 후보와의 격차가 심각하게 난 경우 단수로 선정할 수 있다”며 “이 의장은 이런 조건을 충족한다고 생각해 단수로 추천했다”고 밝혔다.

이후 지난달 29일 공직선거후보자추천재심위원회(재심위)는 공천배제(컷오프)된 예비후보들의 재심 청구를 인용해 3인 경선을 최고위원회에 보고했다. 그러나 민주당 최고위는 지난 2일 새벽까지 이어진 비공개 회의에서 재심의 보고를 기각하고 이 의장을 최종 단수공천하기로 결정했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비공개 최고위 이후 취재진과 만나 “이 의원 지역에 대해선 오랜 토론이 있었지만, 통합의 가치를 존중하고 당 기여도를 고려했다”며 “공천관리위원회 판단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재심위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결론냈다”고 밝혔다.

당3역 중 한 명인 정책위의장은 업무 특성을 고려해 통상 당 기여도를 높게 평가하는 만큼 단수공천받는 경우가 많다. 국민의힘도 유의동 정책위의장을 새롭게 만들어진 평택병 지역구에 단수공천했다. 단수공천의 근거가 되는 당 기여도에는 이같은 부분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언론에선 절차에 따라 공천, 재심이 이뤄진 사안에 대해 ‘특혜·밀실 논란’(뉴시스) ‘고무줄 기준 논란’(TV조선) 등으로 보도한 데 이어 ‘고무줄 잣대’를 들이댔다. 이른바 ‘친명횡재 비명횡사’ 기준에 맞춰 이 의장이 단수공천될 때는 ‘친명’이라고 했다가 경선으로 바뀌자 ‘비명’으로 슬쩍 바꿨다. 국민의힘과 전혀 다른 잣대다.

 

민영뉴스통신사 뉴시스는 이 의장의 공천이 발표된 지난달 25일 <민주, 정청래·이개호·김영진 등 친명계 다수 단수…비명 4인은 경선>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린 데 이어, 3인 경선안이 보고된 지난달 29일 <민주, 비명 이개호·송갑석 공천 방침 뒤집어…3인 경선으로>라고 보도했다. 기사 본문에선 이 의장에 대한 계파 구분은 없었지만, 제목에선 공천 당시 이 의장을 ‘친명계’라고 했다가, 3인 경선으로 이 의장이 불리해지니 나흘 만에 ‘비명계’로 바꾸는 등 ‘고무줄 보도’를 했다.

반대 사례도 있었다.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는 지난달 25일 <민주, '친명 지도부' 정청래·서영교·권칠승 단수 공천> 기사에서 이 의장을 ‘비명계’라고 썼지만, 단수공천이 확정된 뒤인 지난 3일 <여야 공천경쟁 주류 강세…대거 본선 안착> 기사에선 “친문(친문재인) 혹은 비명계 인사로 분류됐지만, ‘이재명 지도부’에 합류하면서 계파색이 옅어졌다는 평가가 많다”고 평가를 쓸쩍 바꿨다. 일주일 새 비명계 의원이 단수 공천을 확정받아 계파색이 옅어진 친명 지도부로 둔갑한 것이다.

국민일보는 연합뉴스와 마찬가지로 지난달 26일 <친명 정청래·서영교·김영진 본선 직행… 비명은 대체로 경선> 기사에서 “단수공천을 받은 현역 중 비명계로 꼽히는 이는 김태년·이개호·김한규 의원 등 3명 정도”라고 했다가, 지난 3일 <‘7부 능선’ 넘은 공천…여야, ‘친윤·친명’ 대부분 생존 ‘공통점’>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선 이 의장에 대해 “친문(친문재인)계로 분류됐지만 당직을 맡으며 계파색이 옅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표현을 바꿨다.

같은 날 비명과 친명을 바꾼 사례도 있다. 서울신문은 지난 25일 오후 2시 44분 온라인에 노출한 <민주, ‘친명’ 정청래·서영교 등 단수 공천… ‘비명’ 송갑석은 경선> 기사에서 “비명인 이개호”라고 썼다가, 같은 날 오후 6시 49분 노출한 <민주, 정청래·서영교 ‘친명 지도부’ 단수 공천> 기사에선 ‘친명계 지도부’ 중 한 명으로 이 의장을 언급하며 “본선으로 직행했다”고 썼다. 같은 언론사 보도에서 단 4시간 만에 정치인의 계파가 뒤바뀐 것이다.

 

언론이 이처럼 제멋대로 평가하는 것은 애초에 ‘친명’ ‘비명’ ‘친문’ ‘친노(친노무현)’ 구분이 명확하지 않음에도 당내 갈등을 부각시키기 위해 무리하게 구분지으면서 생긴 오류로 풀이된다. 민주당 내 계파는 고정 관념이 아니고 시대에 따라 해석된다. 과거 친노가 친문이 됐고, 친문으로 21대 국회에 입성한 민주당 의원 상당수가 지금은 친명을 자처하고 있다. 이 의장의 경우, 일부 언론에선 지금도 과거 기준으로 ‘친이낙연계’라 쓰고 있다.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언론 분위기도 ‘고무줄 보도’를 부추긴 원인으로 분석된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2024 총선미디어감시단’이 2월19일부터 23일까지 5일간 28개 주요 언론사의 기사를 분석한 결과, 정당 공천 중계보도가 급증했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공천 보도에서 질적·양적 불공정성이 존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29일자 민주당 '공천갈등'이 압도하는 총선 편파보도

민주당 공천 관련 기사는 이 기간 중 459건이었던 반면, 국힘당 관련 기사는 184건으로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민주당과 관련된 기사로는 ‘민주당 공천 논란’ 보도가 286건으로 전체 조사 사례 중에서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 밖에도 ‘민주당 공천 결과’ 보도 109건, ‘민주당 공천 탈락’ 보도 64건이었다. 반면 국힘당 관련 보도는 국힘당 공천 결과 전달 기사 142건뿐이었다.

민언련은 “민주당 공천 보도에서는 단순 (공천)결과 전달보다 공천 과정에 대한 비판이나 공천 탈락에 대한 반발 등 부정적 기사를 주를 이뤘으나, 국힘당 보도의 대부분은 단순 결과 전달 기사였으며 공천 관련 논란·반발이 이슈로 추출되지 않을 정도였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재명 대표의 ‘공천 책임론’이 한동훈 비대위원장에 비해 크게 부각됐다고 지적했다.

 

경찰이 2일 국민의힘 여의도 중앙당사 앞에서 분신을 시도한 장일 전 서울 노원을당협위원장을 제압하고 있다. 2024.3.4. 연합뉴스
경찰이 2일 국민의힘 여의도 중앙당사 앞에서 분신을 시도한 장일 전 서울 노원을당협위원장을 제압하고 있다. 2024.3.4. 연합뉴스

‘분신 시도’가 ‘조용한 공천’ 속 ‘일부 소란’?

그렇지만 언론의 자성은 없다. 편파 보도는 더욱 노골적이다. 국민의힘에 불리한 보도는 축소 보도하는 행태까지 이뤄지고 있다.

지난 2일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 앞에선 장일 전 서울 노원을 당협위원장이 공천에 반발하며 자신의 몸에 시너로 추정되는 인화성 물질을 뿌리고 불을 붙이는 일이 벌어졌다. 경찰이 현장에서 소화기로 진화하고 소방대원까지 출동했다. 병원에 이송됐던 장 위원장은 이튿날인 3일에 또다시 당사를 찾아 분신을 시도하다가 경찰에 현행범 체포됐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민영뉴스통신사 뉴시스는 2일 <국민의힘 '조용한 공천' 속 일부 소란…당사 앞 분신 시도도>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실제 몸에 불까지 붙인 사건을 ‘조용한 공천 속 일부 소란’이라고 표현했다. 소방대원까지 출동했고 자칫 잘못하면 시민들까지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을 작은 소동처럼 보도한 것이다.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는 3일 <與 공천탈락자, 이틀 연속 분신소동 벌이다 현행범 체포> 기사를 냈지만, 공천에 반발해 이틀 연속 분신을 시도했음에도 작은 사건처럼 ‘소동’(騷動·사람들이 놀라거나 흥분하여 시끄럽게 법석거리고 떠들어 대는 일)으로만 묘사했다. 조선일보, 한겨레 등도 연합뉴스를 따라 분신 소동라고 썼다.

국민의힘 공천으로 자살 시도가 두 번째 있었지만, 이에 대한 분석 기사나 추가 보도도 없었다. 검사 출신인 정필재 변호사가 단수공천된 경기 시흥갑에선 동다은 예비후보 배우자가 공천에 불만을 토로한 뒤 자살 시도를 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일부 지역언론만 보도하고 중앙 언론은 전혀 다루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이번에 분신 시도와 관련해 시흥갑 지역구 사례를 언급한 언론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이 대표는 전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언론이 공천 탈락자의 분신 시도까지 ‘일부 소란’으로 축소 보도한 것과 관련, “조용한 공천이 분신 시도까지라면, 내홍·갈등 어쩌고 하는 민주당 공천과 관련해서는 당사 앞이 어떨지 참 걱정이 돼서 최고위 회의 전에 미리 갔다”며 “그런데 놀랍게도 아무도 없었다, 어제도 찾아봤는데 한 분도 항의하는 분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무리하게 공천하지 않았다. 최대한 경쟁을 보장했다. 그런데 언론들은 물 흐르는 소리를 소음이라고 하고, (국민의힘의) 고인 물, 썩는 소리는 외면을 한다”면서 “(국민의힘은) 돈 봉투 받는 장면이 영상에 찍힌 정우택 국회부의장도 후보로 과감하게 선정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의 무리한 검사 공천, 측근 공천, 입틀막 공천, 썩은 물 공천은 엄청난 소음이 발생한다. 분신에, 삭발에, 항의에, 난장판 아니냐”며 “이 난장판 공천은 조용한 공천, 극히 일부분으로 취급하고, 민주당의 혁신 공천 과정에서 생기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불평의 소리는 침소봉대해서 마치 엄청난 대란이라도 발생한 것처럼 만드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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