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선구제-후 구상권 행사' 법 개정 반대

"사적 계약…세금으로 피해보전 안된다" 논리

현행법으론 피해 인정 어렵고 그나마 반환 하세월

부실 건설사 지원엔 수십 조원 투입하면서

보증금 수천만 원 구제 인색한 정부·여당

전세 사기 피해자의 10명 중 7명 이상은 20~30대 청년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사회 초년생으로 전세 보증금을 대출해 마련했을 것이다. 전세 사기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극심한 생활고에 처한다. 신속한 피해 구제가 절박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실효성 없는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 특별법)'을 핑계로 청년 피해자들의 구제 요청을 외면하고 있다. 부실 건설사를 지원하는데는 수십조 원을 투입하면서 보증금 수천만 원을 돌려받지 못해 절망하는 청년들에게는 너무 냉담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철빈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처리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1.4. 연합뉴스
이철빈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처리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1.4. 연합뉴스

5일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1일 전세사기 특별법 시행 이후 7개월간 피해지원위원회가 인정한 피해자는 누적으로 총 1만 944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신청 중에 81.8%가 가결되고 8.7%(1166건)는 부결됐다. 6.5%(879건)는 특별법 적용에서 제외됐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피해자로 인정된 대상의 73%가 20~30대 젊은이들이라는 사실이다. 30대가 48.2%로 가장 많고 20대가 24.8%였다. 40대가 15.7%가 뒤를 이었다. 피해자 대다수가 경제활동을 활발하게 해야 하는 세대인 셈이다.

다세대주택 피해자가 34.7%(3792명)로 가장 많았고 오피스텔이 23.6%(2579명), 아파트·연립이 17.6%(1925명), 다가구가 14.5%(1587명) 순이었다. 임차보증금이 1억 원 이하인 피해자가 44.3%, 1억 원 초과~2억 원 이하는 36.1%, 2억 원 초과~3억 원 이하는 16.37%였다. 보증금이 5억 원을 넘는 피해자는 2명이다. 지역별로는 서울(25.2%)과 경기(21.4%), 인천(18.4%) 등 수도권에 피해자의 65%가 집중됐다.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는 4일 열린 제18차 전체 회의에서 피해자 결정 신청 847건 중 688건을 가결했다. 특별법상 피해자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74건은 부결됐고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에 가입했거나 최우선변제금을 받아 보증금을 전액 돌려받을 수 있는 61건은 피해 인정 대상에서 제외됐다. 직전 심의에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해 이의신청을 낸 55명 중 31명은 피해자 요건을 충족한다는 사실이 확인돼 이번 회의에서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됐다.

전세사기로 인정된 피해자가 1만 명이 훌쩍 넘었으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 중에도 전세 보증금을 받지 못해 고통받는 이들이 많다. 피해자로 인정받았어도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전입 신고 후 확정 일자를 받아 놓아야 하고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해야 하며, 임대인의 파산을 비롯해 경매와 공매, 압류 등 요건을 갖춰야 한다.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할 의도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할 필요도 있다. 무엇보다 임대 보증금이 3억이 넘으면 구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처럼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실제 구제를 받는 피해자는 확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세사기특별법이 ‘무늬만 특별법’이라는 볼멘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보증금을 돌려주기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해주는 땜질 처방도 문제다. 일단 빚을 내서 힘든 상황을 모면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빚이 많은 젊은이에게 더 빚을 내서 해결하는 건 무책임한 정책이다. 전세 사기 대상이 된 주택을 피해자가 우선 매입하라고 하는 것도 현실과 괴리된 대책일 뿐이다. 우선매수권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양도하면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는 지원도 탁상공론의 산물이다. 지난 6개월간 LH가 피해 주택을 매입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전세사기 피해 지원을 위한 특별법 시행 첫날인 지난해 6월 1일 오후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내 전·월세 종합지원센터를 찾은 피해자가 직원의 도움을 받아 상담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2023.6.1. 연합뉴스
전세사기 피해 지원을 위한 특별법 시행 첫날인 지난해 6월 1일 오후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내 전·월세 종합지원센터를 찾은 피해자가 직원의 도움을 받아 상담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2023.6.1. 연합뉴스

엉터리 특별법으로 피해 구제는 부지하세월이다. 피해자들은 실효성 있는 지원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 전국대책위와 시민사회대책위(전세사기대책위)는 지난 4일에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을 빨리 처리할 것을 촉구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지난달 27일 상임위인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특별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다.

특별법 개정안은 피해자에게 보증금을 미리 돌려주고(선 구제) 절차를 거쳐 공공기관이 나중에 회수하는(후 회수) 내용이 핵심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이 피해 임차인의 보증금 반환 채권을 매입해 전세 피해자들을 우선 구제한 뒤 책임자에게 추후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이다. 피해자가 거리로 쫓겨나는 일을 막기 위해 명도소송과 경매, 공매 등을 유예 또는 정지하는 내용도 담겼다. 피해자 인정 요건에서 보증금 기준을 7억 원으로 높이고 외국인도 피해자 범위에 포함했다. 한마디로 구제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에 개정안의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정부와 국민의힘은 사적 계약으로 발생한 피해를 세금으로 보전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논리로 특별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보이스피싱 등 다른 범죄로 피해를 본 사람들과 형평성에 맞지 않고 공공기관이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는 점도 반대 이유로 꼽았다. 국가가 전세 보증금을 보전하면 채무 불이행을 부추기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런 원칙론을 따지기에는 피해자가 너무 많고 이들의 사정이 너무나 절박하다. 피해자 단체들은 정부의 직접적인 현금 지원 방식 없이는 피해자들이 추가로 빚을 내서 빚을 갚고 또 빚을 내서 전세나 월세를 살아야 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당장 경매와 공매, 명도소송이 진행 중이거나 전세대출 만기가 다가오는 피해자가 겪고 있는 압박과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며 “정부와 여당은 더 이상 특별법 개정을 반대하지 말고 조속히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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