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겨도 과태료 안 무는 계도기간 세 번째 연장
“전월세 신고제, 보증금 보호·시장 투명화”
그런데도 정부는 임대차 3법 무력화 시도
“전월세 시장 통제·감시가 사기 근절 대책”
정부가 전월세 신고제 계도 기간을 내년 5월 31일까지 또 연장하기로 했다. 지난 2021년 6월 1일 시행 이후 계도 기간 연장은 이번이 세 번째다. 계도 기간 중에는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정부는 또 최고 100만 원에 달하는 과태료를 완화하는 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사실상 제도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것이다. 전월세 신고제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통과된 임대차 3법 중 하나다. 임대차 3법 정식 명칭은 '주택임대차보호법 및 부동산거래신고법' 개정안으로 전월세 신고제 외에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를 말한다.
이중 전월세 신고제는 월세나 전세 등 주택 임대차 계약을 맺으면 30일 내로 계약 당사자와 보증금, 임대료, 임대 기간, 계약금, 중도금, 잔금 납부일 등 자세한 계약사항을 지방자치단체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하는 제도다. 전세 보증금 6000만 원 또는 월세 30만 원이 넘는 계약이 대상이며 아파트와 단독·다가구, 연립·다세대, 오피스텔, 고시원 등이 모두 포함된다.
전월세 신고제가 본격 시행되면 세입자가 따로 주민센터에서 확정일자를 받지 않아도 자동으로 확정일자가 부여돼 보증금을 보호받을 수 있다. 정부는 도입 과도기에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는 계도 기간을 설정하고 2022년과 2023년 두 차례 1년씩 연장했다. 과태료 부과에 앞서 자발적인 신고 여건을 조성한다는 것이 계도 기간을 둔 이유다.
전월세 계약은 부동산 매매와 달리 명확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임대인과 임차인의 정보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전월세 신고제가 필요하다. 임대차 거래 현황이 투명하게 공개되면 주변 임대료 시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임차인이 합리적으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고 임대인도 공실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현재 사회적으로 문제가 커지고 있는 전세 사기를 막는 역할도 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19일 발표한 계도 기간 연장 반대 성명서에서 “전월세 신고제는 임대차 정보격차를 해소하고 투명한 임대차 거래 관행을 확립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전제돼야 하는 정책”이라며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가 부작용을 일으킨 이유 중 하나도 전월세 신고제가 전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임대차 3법 중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는 2020년 7월 관련 법 개정 즉시 시행에 들어갔다. 두 법은 임대차 계약을 최대 4년 동안 유지해야 하고 2년 후 자동 재계약 때 임대료 인상을 5%로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비해 전월세 신고제는 11개월 후인 2021년 6월 시행하면서 1년간 계도 기간을 뒀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임대차 3법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임대차법이 오히려 전세 보증금 급상승을 유발해 세입자에게 부담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더 나아가 월세나 전세 같은 사적 계약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도 같은 이유로 임대차법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도 18일 계도 기간 추가 연장을 발표하며 “바람직하지 않은 제도인데 다시 돌리는 게 맞는 걸까 신중하게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대차 3법 시행 후 전세 보증금이 크게 오르며 물량이 급감하는 혼란이 일어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제도 정착을 위해 불가피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지난 2월 임대차법 위헌 소송에서 헌법재판소는 전원 일치 의견으로 합헌 판결했다. 임차인 주거 안정 보장이라는 입법 목적이 정당하고 임대료 상승을 제한해 임차인의 주거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단의 적합성을 인정한 것이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일부 보수언론은 임대차 3법의 시행 2년 후인 2022년 8월 임대료가 급등하며 전세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전세 매물이 쌓이면서 집값보다 많은 ‘깡통주택’이 늘었고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 사태가 발생했다. 금리가 큰 폭으로 오르면서 부동산 시장이 침체한 결과다.
임대차 3법은 부작용보다는 ‘임차인 보호’라는 취지에 맞게 정착되고 있다. 임대차법이 전세 시세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금리가 내리면 부동산 시장이 다시 뜨거워지고 전세 보증금도 뛸 것이다. 임대차법이 아니라 금리가 전세 시세의 직접적인 요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4년 전 논리를 그대로 내세우며 세입자 보호를 위한 임대차법을 무력화하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만큼 임대차법 폐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토교통부도 전월세 신고제가 확정일자 자동 부여 등 임차인 권리 보호에 기여했고 임대인과 임차인 정보 비대칭 완화와 같은 순기능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경실련은 “반복되는 계도 기간 연장은 전월세 신고제를 유명무실한 제도로 만들고 있고 과태료 부과금까지 대폭 낮춘다면 계도 기간이 끝나더라도 그 효과가 미미한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또 “전세 문제가 더욱 커지는 것을 막으려면 전월세 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통제와 조정이 필요하다”며 “신규 계약뿐만 아니라 기존 계약과 관리비도 신고하도록 하고 전세 보증금 6000만 원, 월세 30만 원이라는 예외 조항도 폐지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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