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불안에 반환보증보험 가입자 폭증

임차인이 보증금 보험료 100% 부담

임대인 부담 보증은 대위변제 1/3 불과

“임대인 반환보증보험 가입 의무화해야”

지난해 전세 사기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들이 급증했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집값이 전세보증금 밑으로 떨어지는 '깡통 주택'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전세사기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드러난 전세 사기 피해자만 2만 명이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밝혀지지 않은 사례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을 것이다. 이들 중 약 70%가 사회 초년생인 청년들이다.

전세 사기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보증보험 가입자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지난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이하 반환보증보험) 가입실적은 전년보다 16조 원 증가하며 71조에 달했다. 역대 최고 수준이며 10년 전인 2013년 765억의 932배나 됐다. 전세 사기에 대한 임차인들의 불안감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상이다. 문제는 보증보험에 가입해 보험료를 부담하고 있는 당사자가 임대인이 아닌 임차인이라는 사실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정호철 경제정책국 간사와 김성달 사무총장 등이 27일 오전 경실련 강당에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실태분석 발표 기자회견 중 피켓을 들고 있다. [경실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정호철 경제정책국 간사와 김성달 사무총장 등이 27일 오전 경실련 강당에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실태분석 발표 기자회견 중 피켓을 들고 있다. [경실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반환보증보험 가입실적 변동현황을 분석한 결과 2019년 이후 임대인(사업자용) 가입실적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반환보증보험 제도 도입 초기인 2013~2014년에는 사업자용 가입실적 비중이 80%를 차지했다. 그러나 2015년 사업자용 비중은 20% 이하로 급락했고 2017년부터 1%대, 2019년부터 0%대로 하락했다. 2022년은 사업자용 가입실적이 한 건도 없었다. 전세 사기에 대비한 보증금 반환 책임을 임차인이 떠안고 있는 셈이다.

가입실적 금액을 보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2013년부터 10년간 사업자용 가입실적 금액은 2조 3000억 원에 그친 데 비해 임차인용은 119배인 279조 원에 달했다. 가입 건수도 임차인용이 사업자용의 117배인 128만 건에 달했다. 경실련은 “전세 제도에 불안감을 느낀 임차인이 반환보증보험에 적극적으로 가입했고 임차인의 가입이 당연하게 여겨지기 시작하자 사업자용은 가입 필요성이 없어져 버린 것”이라며 “이런 현상은 보증금 미반환을 예방하는 책임이 온전히 임차인에게 전가되었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는 반환보증보험 외에 임대보증금 보증이 있다. 임대인(채무자)이 임대보증금을 임차인(채권자)에게 반환하지 않으면 보증기관이 대신 임차인에게 임대보증금을 돌려준다는 점에선 효력은 동일하다. 차이점은 보증신청인, 즉 보증보험료를 부담하는 쪽이 어디냐는 것이다. 반환보증보험은 임차인의 선택에 따라 가입이 결정되는 반면 임대보증금 보증은 임대사업자에 해당하는 임대인이라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자료 : 경실련. 전세보증금반환 보증보험 가입 실적 추이.
 자료 : 경실련. 전세보증금반환 보증보험 가입 실적 추이.

임대보증금 보증은 반환보증보험과 달리 임대인이 보증을 신청한다. 임대인과 임차인이 전세 계약을 체결하면 임대인은 HUG에 보증신청을 해야 한다. 이때 해당 주택의 담보권 설정 금액은 주택가격의 60% 이내여야 할 수 있다. 담보권 설정 금액과 임차보증금의 합이 주택가격을 넘어서면 안 된다. 가입이 완료되면 HUG는 임차인에게 보증이 발급되었음을 안내한다.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이 발생하면 임차인은 HUG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고, HUG는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한다.

임대보증금 보증의 보증료는 임대인의 신용에 따라 차이가 큰데 통상 임대인이 75%, 임차인이 25%를 분담한다. 경실련 추산에 따르면 2억 5000만 원의 전세보증금에 대해 보증에 가입했을 때 연간 보증료는 임대인이 13만 6000원~298만 원, 임차인은 4만 5000원~99만 원이다.

반환보증보험은 임대인(주택사업자)이 가입하는 건설사용과 임차인(개인 또는 법인)이 가입하는 일반용이 있다. 건설사용은 임대보증금 보증과 마찬가지로 임대인이 가입하는 상품이다. 그러나 지금은 가입자가 거의 없어 유명무실한 상태다.

반환보증보험은 전세보증금과 선순위채권을 더한 금액이 ‘주택가격 x 담보인정비율(90%)’ 이내여야 가입할 수 있다. 주택가격 1억 원에 전세보증금 4000만 원이면 선순위채권이 5000만 원 이하여야 한다. 가입이 완료되면 HUG는 전세보증금 반환채권을 양도받고 채무불이행 발생 때 임차인에게 보험금(전세보증금)을 지급하고 임대인에게는 구상권을 행사한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보증료는 주택 유형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임차인이 100% 부담한다는 점에서 임대보증금 보증과 차이가 있다. 임차인의 보증보험 보증료 부담은 결국 임대료를 높이는 것과 같다.

반환보증보험과 임대보증금 보증의 대위변제 금액 현황을 보면 임차인이 아닌 임대인에게 보증금 미반환 책임을 부과하는 게 훨씬 더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경실련에 따르면 최근 4년간 반환보증보험 가입실적 금액은 198조 5000억 원이고, 대위변제 금액은 4조 2000억 원이었다. 가입실적 대비 대위변제 비율은 2.1%다. 이에 비해 같은 기간 임대보증금 보증은 가입실적 금액은 106조 7000억 원, 대위변제 금액은 7261억 원이다. 대위변제 비율이 0.7%로 반환보증보험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자료 : 경실련.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 상품별 가입실적 변동 현황
  자료 : 경실련.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 상품별 가입실적 변동 현황
  자료 : 경실련. 연보별 전세보증금반환보증-임대보증금보증 가입실적 및 대위변제 비교.
  자료 : 경실련. 연보별 전세보증금반환보증-임대보증금보증 가입실적 및 대위변제 비교.

경실련은 “반환보증보험과 임대보증금 보증이 똑같은 기관의 상품이고 가입 시 심사하는 내용도 주택가격과 보증 금액, 근저당 등 거의 비슷하다”며 “그런데도 임대보증금 보증의 대위변제 발생이 적은 것은 임대인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임대보증금 보증은 임대사업자의 의무가입 사항이다.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려면 자치단체에 등록신청서를 제출해야 하며 5년 이내 임대사업 부도가 발생한 사실이 없어야 한다. 임대보증금 보증에 가입하지 않은 임대사업자는 임대보증금의 100분의 10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반면 반환보증보험은 임차인이 선택적으로 가입하기 때문에 임대인은 담보인정비율 등 요건만 갖추면 책임질 사항이 별로 없다.

경실련은 “반환보증보험 가입을 모든 임대인에게 의무화한다면 자격이 없는 임대인이 임대시장에 진입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며 “전세제도가 지닌 태생적 문제들을 모두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전세 사기 피해를 줄이고, 임차인에 대한 보호 범위는 대폭 확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실련은 또 “전세 계약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주체는 임대인이며 임대보증금 미반환 위험도 임대인으로부터 발생한다”며 “임대보증금을 돌려받는 주체가 임차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보증보험 가입 책임을 임차인이 지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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