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수 경북대 교수, 학술대회서 주장
동국제강·OCI 지주사체제로 전화하며
총수 지배력 높여 경영권 승계 본격화
“경제력 집중·소액주주 권익 침해 우려”
“지주회사 제도가 대기업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와 경영권 승계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지난 2일 열린 ‘지주회사 제도 25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제기된 주장이다. 신영수 경북대 교수는 이날 학술대회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지주회사 제도 도입이 국내 기업집단 및 정책환경에 미친 영향’을 주제로 발표했다고 5일 연합뉴스가 전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지주회사 체제가 선진적인 기업지배 구조로 여겨지면서 우호적인 정책 기조가 장기간 지속됐고 그 결과 대기업 총수 일가들이 이를 악용해 지배력 강화와 경영권 승계의 수단으로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배주주가 지주회사에만 전념하고 지주회사는 자회사의 지분율을 높게 유지하면서 독립성과 업종전문화를 추구하는 이상적인 상황에서는 지주회사 제도의 장점이 극대화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제로는 지주회사 제도가 총수 지배체제 강화와 경영권 승계 수단으로 전락할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주회사 제도는 1999년 도입됐다. 역대 정부는 지주회사를 허용하더라도 실제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기업집단이 많지 않을 것으로 보고 공정거래법과 세법 등 관련 법을 지주회사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여러 차례 개정했다. 대기업 집단 중에는 LG가 2003년 처음으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그 이후 2007년까지 지주회사의 수는 매년 5~7개씩 늘었다. 2007년 관련 부채비율 제한이 상향되고 자회사 지분율 요건이 완화된 이후로는 매년 10개 안팎으로 지주회사가 증가했다.
올해 지주회사의 수는 174개다. 2013년 127개와 비교하면 10년 만에 47개(27%) 늘었다. 일반지주회사가 164개, 금융지주회사가 10개다. 금융지주회사는 10년 전보다 3개가 줄었으나 일반지주회사는 50개가 증가했다.
지주회사 제도가 대기업 집단의 지배 구조를 투명화하고 기업 구조조정을 촉진할 것이라는 원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여러 차례 제기됐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9월 발표한 ‘지주회사 행위규제에 관한 새로운 접근법’이라는 보고서에서 “지배주주의 자금 투입 없이 지배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지주회사 설립 촉진을 위해 지주회사 행위규제를 완화하고 주식양도 차익 이연 과세도 계속 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가 공정거래법(지주회사 및 자회사 등의 행위규제) 차원에서만 논의돼 왔으나 이제는 상법 등을 통해 새로운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주회사의 기업가치가 자회사의 기업가치와 연동된다는 점에서 지주회사의 소액주주가 자회사에 대해 주주 관여 활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지주회사의 소액주주가 자회사의 임원에 대한 책임추궁을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다중대표소송의 필요 지분율을 낮추고 다중대표소송의 대상을 지주회사의 자회사 임원까지 확대하는 방안이다.
경제개혁연대는 또 “지주회사의 영업수익이 배당금수익과 상표권수익 등으로 구성되고 영업수익의 상당 부분이 자회사와 거래하며 발생하는 만큼 지주회사와 자회사 간 거래는 각 회사의 주주총회에서 사전 또는 사후 승인을 받도록 하고, 이때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해 말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높여 경영권을 승계하려는 의심 사례로 동국제강과 OCI를 꼽았다. 실제로 동국제강은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지주사 전환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월 동국홀딩스가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기업 분할을 끝냈다. 이에 따라 총수 일가의 지주사 지분율이 상승하며 경영권 승계 작업도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동국제강은 지난해 12월 인적 분할로 존속법인인 동국홀딩스(지주회사)과 신설법인인 동국제강과 동국씨엠을 각각 설립하는 방식의 지주회사 전환 방침을 의결했다.
인적 분할은 한 회사 내 사업부를 나눠 기존 회사와 주주 구성이 같은 회사를 신설하는 방식이다. 기존 주주는 분할 비율만큼 신설법인의 주식을 똑같이 나눠 받는다. 동국제강의 경우 대주주인 총수 일가가 인적 분할 존속법인의 현물출자 유상증자에 참여해 신설회사인 동국제강과 동국씨엠 보유지분을 내놓고 존속회사인 동국홀딩스의 자사주를 받는 방식으로 지배력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OCI도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지주회사 전환이 이루어졌다. 이 때문에 의결권 자문사인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는 올해 3월 “OCI의 인적 분할이 소액주주의 권익을 침해한다”며 반대를 권고한 바 있다. 회사의 분할로 실질적인 변화는 없이 대주주의 지주회사에 대한 지배력만 강화되고 지주회사를 통해 자회사인 OCI에 대한 지배력 또한 강화되기 때문이다.
동국제강과 OCI처럼 지주회사 제도가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와 승계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신영수 교수는 “지금처럼 지주회사 제도가 총수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활용되는 상황에서는 소액주주의 권익 침해와 경제력 집중 유발 등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주회사로 전환하며 총수 일가가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다른 규제와의 형평성 차원에서도 제도 전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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