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이스라엘 방문, 병원폭격으로 역풍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통한 이-팔 공존 추구

하마스 기습의 정치적 목적 일단 달성된 셈

‘글로벌 사우스’의 대두를 의식하는 미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회담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회담 개시 전 언론에 공개된 모두발언에서 가자지구 병원 폭발 참사와 관련, "(이스라엘군이 아닌) 다른 쪽 소행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23.10.19. 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회담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회담 개시 전 언론에 공개된 모두발언에서 가자지구 병원 폭발 참사와 관련, "(이스라엘군이 아닌) 다른 쪽 소행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23.10.19. AP 연합뉴스

임박했다던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대대적인 지상공격은 5백명 이상의 민간인 사망자를 낸 17일의 가자 시내 병원폭격 여파로 적어도 당분간은 물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다.

바이든의 이스라엘 방문, 병원폭격으로 역풍

18일 이스라엘로 달려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그 사흘 전인 15일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그 1주일 전 하마스의 기습 게릴라 공격으로 지금까지 1400명 이상의 이스라엘인들이 숨진 사건을 두고 “홀로코스트만큼이나 야만적인” 일을 겪었다며,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파괴할 권리와 의무가 있으며, 미국은 그것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미국 내 여론도 그의 그런 생각을 지지했다. CNN의 여론조사에서 70%의 미국인들이 하마스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적 대응은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응답했다. 미국 미디어들은 매일 이스라엘 쪽 피해자와 유족들의 얘기를 중심으로 보도했다.

 

18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시위대는 가자시티의 알아흘리 아랍 병원에서의 폭발이 이스라엘의 소행이라고 비난했으나, 이스라엘은 이 병원을 폭격한 일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2023.10.18. AFP 연합뉴스
18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시위대는 가자시티의 알아흘리 아랍 병원에서의 폭발이 이스라엘의 소행이라고 비난했으나, 이스라엘은 이 병원을 폭격한 일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2023.10.18. AFP 연합뉴스

“이스라엘판 9.11사태”라는 표현도 그런 분위기에서 나왔다. 맨해턴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을 무너뜨린 2001년 9월 11일의 납치 항공기 연쇄충돌 테러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 대한 대규모 침공을 지지하게 만들었다. ‘이스라엘판 9.11’이라는 표현 자체가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적인 대규모 침공을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는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비극적인 병원폭격의 참상으로 바이든의 중동방문은 오히려 역풍을 맞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알자지라 등 아랍지역의 미디어들 연일 병원폭격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보도의 방향은 미국 미디어들의 반대 방향에 가깝다. 전반적으로 팔레스타인 쪽을 지지하거나 동정하는 아랍의 여론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에도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폭격을 받은 가자지구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전날 가자지구 알아흘리 아랍병원이 폭발해 최소 500명이 숨졌지만, 이스라엘 측은 책임을 부인하며 또 다른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이슬라믹 지하드를 배후로 지목했다. 2023.10.18. EPA 연합뉴스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폭격을 받은 가자지구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전날 가자지구 알아흘리 아랍병원이 폭발해 최소 500명이 숨졌지만, 이스라엘 측은 책임을 부인하며 또 다른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이슬라믹 지하드를 배후로 지목했다. 2023.10.18. EPA 연합뉴스

누구 소행인지 범인찾기는 이미 무의미

이스라엘 쪽은 자신들 소행이 아니라며 하마스 쪽의 오발이나 실수 탓으로 돌리고 있으나 여러 정황상으로 이스라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들이 많다. 그리고 설사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밝혀지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그런 상황을 만들어낸 책임은,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이미 3000명을 넘긴 사망자들이 늘어가는데도 무차별 폭격을 계속하면서 주민의 절반에게 소개령을 내리고 대규모 지상침공을 벌이겠다고 공언해 온 이스라엘이 전적으로 질 수밖에 없다. 범인 찾아내기는 이미 무의미해졌다.

요르단이 이스라엘의 “가증스러운 전쟁범죄”를 비난하고 바이든과 팔레스타인 및 이집트 지도자들과 함께 암만에서 열 예정이든 정상회담을 취소하고,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회동약속을 취소한 것은 이런 아랍세계의 들끓는 여론을 반영한다. 바이든을 만났다가는 빗발치는 자국내 비난 여론 때문에 정권이 흔들릴 정도로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한 여론이 악화돼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 주민들이 17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생존자를 수색하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스라엘 공습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2천7백여명에 달한다고 전날 전했다. 2023.10.17. AFP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 주민들이 17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생존자를 수색하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스라엘 공습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2천7백여명에 달한다고 전날 전했다. 2023.10.17. AFP 연합뉴스

묘수 없이 어정쩡한 바이든

바이든 정부는 당초 이스라엘 편을 들면서 군사지원을 계속하는 한편 민간인들의 대규모 피해를 피할 수 없는 가자지구 지상침공(육상 진격)에도 반대하지 않았다. 이미 엄청난 피해를 내고 있는 이스라엘군의 공습이 계속됐음에도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은 하지 않고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라는 주문만 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담당 조정관이 17일 “죄없는 민간인이 희생당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 이번 분쟁에서 민간인 희생자수는 제로가 돼야 한다”고 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날 수밖에 없고, 실제로 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 하나마나 한 소리다.

대신에 바이든 정부는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지원을 확보하기로 하고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등을 분쟁 현지로 보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을 사실상 지연시켰다. 바이든은 지난 15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 밀고 들어가 다시 지배하는 것은 “큰 과오”라며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로 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한 구체적인 방도는 제시하지 않았다. 그의 이런 막연한 발언은 미국 내 여론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유대계와 이스라엘의 지지를 확보하면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아랍세계와 ‘글로벌 사우스’, 나아가 중국, 러시아의 반발도 피해가려는 어정쩡한 자세에서 나왔다. 내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그로서는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열린 반(反)이스라엘 시위에 참석해 군중에 대한 존경을 표하며 양손을 가슴에 얹고 있다. 앞에는 이스라엘 공습으로 희생당한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상징하는 더미가 놓여있다. 2023.10.19. AP 연합뉴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열린 반(反)이스라엘 시위에 참석해 군중에 대한 존경을 표하며 양손을 가슴에 얹고 있다. 앞에는 이스라엘 공습으로 희생당한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상징하는 더미가 놓여있다. 2023.10.19. AP 연합뉴스

병원폭격 직후 이스라엘로 간 바이든 대통령의 처지는 더욱 어려워졌다. 그가 헤쳐가야 할 길이 얼마나 암울한 것인지 <이코노미스트>는 17일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이스라엘에 대한 그의 사랑을 보여주는 동시에 가자지구의 민간인들을 보호하고, 이스라엘의 과잉행위를 억제하면서 이스라엘의 보복을 지지한다. 팔레스타인 국가로 가는 대안적 길을 제시하면서 하마스를 배척한다. 이란과 그 대리자들을 억제하면서 아랍 동맹국들에게 도와 달라고 설득한다.”

상호모순되는 이들 대립항들을 동시에 모두 충족시킬 방도가 있을까. 없다. 마치 요행을 바라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이런 목표설정은 비현실적인 바이든 정부의 중동정책의 실체를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중분쟁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거기에 이스라엘-가자 분쟁까지, 국내정치적 기반마저 취약한 바이든 정부가 이들 문제에 제대로 대처할 여력이 없을 것이라는 것어 중론이다.

민주당 중도파는 이스라엘을 지지하지만 좌파는 팔레스타인의 대의에 동조한다. 공화당원들은 하마스의 후원자인 이란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민주당과 바이든의 다양한 시도들을 비난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원을 주장한다. 의장자리에서 밀려난 케빈 매카시의 후임자 선출에 합의하지 못한 공화당원들 간의 내분으로 하원은 마비상태고, 11월 중에 다시 예산집행이 불가능한 ‘셧다운’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학생들이 12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기를 흔들며 행진하고 있다. 미국 조 바이든 정부는 전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지만, 미국 내 주요 대학 일부 학생 단체들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있다. 2023.10.13. AP 연합뉴스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학생들이 12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기를 흔들며 행진하고 있다. 미국 조 바이든 정부는 전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지만, 미국 내 주요 대학 일부 학생 단체들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있다. 2023.10.13. AP 연합뉴스

‘글로벌 사우스’의 대두 의식하는 미국

악시오스에 따르면, 미국과 이스라엘 관리들 사이에 미국의 군사개입 시나리오가 논의됐으며, 그것의 법적 정당성으로 이스라엘 내의 미국 시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내세울 수 있다.

하지만 가자 시 병원폭격 참상 이후 미국의 개입 가능성은 멀어졌다. 바이든 정부는 이제까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나 중국의 대만 침공 위협에 대해 국가주권, 인권, 자유, 민주주의 옹호자를 자처하면서 현상변경 불가와 규칙기반 세계질서 원칙을 옹호해 왔다. 그런데 가자지구 “지상침공을 주저하지 않는 이스라엘 편을 들 경우 주장의 (논리적) 일관성이나 정당성을 의심받게 될지도 모를 상황”이라고 <아사히신문>은 18일 기사에서 지적했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실제로 침공할 경우 그런 의심은 더욱 짙어질 것이고 국제여론도 더 악화될 것이다. 미국이 그것을 감당하면서까지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선택은 피할 것이다.

그 기사 말미에 따로 붙인 전문가 논평에서 아사히의 ‘중국 등 국제관계’ 전문 요시오카 게이코 기자가 이런 지적을 했다.

“‘지상침공을 주저하지 않는 이스라엘 편을 들 경우 주장의 일관성이나 정당성을 의심받게 될지 모를 상황’이라고 기사에 나와 있는데, 의심받을지도 모르는 게 아니라 ‘글로벌 사우스’로 불리는 신흥 개도국들이 품고 있는 뿌리깊은 ‘의심’을 ‘역시 그렇군’하고 재확인하게 만들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흥 개도국들은 원래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말하는 ‘가치’를 ‘수상쩍게’ 여기고 있었다. 가치나 질서를 얘기하지만 결국 자신들의 파워나 기득권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고. 그것은 동서냉전 시절부터 때로 자신의 지역이 전쟁터가 되는 등 그들 처지에서 보면 대국의 편의주의(폐해)를 목도해 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니까 ‘글로벌 사우스’는 중국 러시아를 택할 것이라는 단순한 얘기는 아니며, 어느 쪽이 옳은가의 논쟁도 아니다. ‘글로벌 사우스’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선진국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의 문제다.

‘글로벌 사우스’는 냉전시대의 사우스가 아니다. 그들이 경제력을 포함해서 상대적으로 힘을 갖게 된 상황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처신을 통해 그들의 ‘의심’에 확신을 심어 주게 될 경우 장차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 정치적 목적 달성

미국이 중동정세를 좌우하던 시대는 오래 전에 끝났다. 증대하는 글로벌 사우스의 존재감 속에 서방(‘선진국’)이 오히려 자신들의 고립 가능성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죽이기’를 미국과 유럽도 묵인하거나 일방적으로 지지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이번 사태는 분명히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지난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은 그 옳고 그름을 떠나, 그들이 노린 정치적 노림수는 충분히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죽이기’가 더는 불가능하며,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통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공존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미국과 유럽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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