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충돌중단 촉구 안보리 결의채택 반대
설득력 없는 미국의 반대 이유
러시아, 미국 반대 “위선과 이중기준” 비판
이-팔 분쟁은 '식민과 피식민의 단순구조'
확전이냐 평화냐, 미국의 판단에 달렸다
17일의 가자 시 병원폭격 참사 이후 사태전개를 두고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앤서니 코데스먼 연구원은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이스라엘의 정치적 패배”라고 말했다. 그가 제안한 것은 사건 당사국들이 아닌 중립적인 국가들이 주도하는 국제적인 조사다. 그는 그것만이 세계가 납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미국, 충돌중단 촉구 유엔 안보리 결의채택 반대
그러나 이스라엘이나 이스라엘의 보복적 자위권을 인정하고 있는 미국은 그럴 생각도 여유도 없어 보인다. 미국은 1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군사적 충돌 충단을 촉구하는 결의안 채택을 거부해 부결시켰다.
의장국인 브라질이 제안한 결의안은 안보리 표결에서 채택에 필요한 9표 이상을 얻었으나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반대하는 바람에 폐기됐다. 브라질 등은 찬반 양쪽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여러 차례 절충안을 만들었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은 무력충돌 중지 결의안에 하마스 비난 문구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전’이란 표현은 안 된다고 주장해 ‘인도적인 중단’이란 표현을 썼다. 그 결과 미국 동맹국인 일본, 그리고 미국과 분쟁 중인 중국까지 포함한 12개국이 결의안 채택에 찬성했다. 거부권을 가진 안보리 상임이사국 영국과 러시아도 반대는 하지 않고 기권했다. 그런데 유독 미국만 양보없이 반대했다.
반대 이유, 이스라엘의 보복적 자위권 명기 않은 것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제시한 반대 이유는, 유엔 헌장 제51조가 보장하는 개별적 자위권이 이스라엘에게 있는데, “결의안에는 이스라엘의 자위권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 표현(구절)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기습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가자지구를 공격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결의안에 명기하라는 얘기다.
러시아의 바실리 네벤자 유엔주재 대사는 그런 미국의 “위선과 이중기준”을 비판했다.(<아사히신문> 10월 19일)
미국의 위선과 이중기준에 대한 비판이란, 멀리 갈 것도 없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자행한 폭력과 공격적인 정착촌 확대 과정에서 수많은 목숨과 집, 땅을 빼앗긴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보복적 반격권을 미국이 인정해 준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느냐는 항변에 가까울 것이다.
“위선과 이중기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비난이나 제재 결의 때 러시아와 중국 등 거부권을 지닌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반대를 비난해 온 미국과 서방의 논리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돼야 공평하지 않은가. 미국 자신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상황에 따라 거부권 행사 기준을 달리한다면 “위선과 이중기준”이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설득력 없는 미국의 반대이유
그리고 무엇보다 병원폭격 만행을 자행한 주체가 누구로 밝혀지든 무고한 민간인들이 500명 안팎 목숨을 잃었고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가자지구 공습으로 3000명에 이르는 가자 주민들이 죽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사태를 일단 막아보자는, 충돌 중단을 촉구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유독 미국이 거부했다는 건, 무슨 이유를 대든지 설득력이 없다. 위선과 이중기준에 비인도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는 미국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다. 또한 하마스와 헤즈볼라 또는 이란, 나아가 중국과 러시아 등 미국의 중동정책에 반대해 온 쪽에 오히려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병원 폭격, 누구의 소행이냐?
미국이 이런 납득하기 어려운 처신을 하는 데에는 병원폭격이 이스라엘의 소행이 아니라 ‘이슬람 성전’등 팔레스타인 쪽 무장조직의 오발이나 실수에 의한 것이라는 판단이 그 배경에 깔려 있다.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에이드리언 왓슨 대변인은 미사일의 움직임이나 공중촬영 영상 등의 분석을 토대로 판단할 때 그렇다는 것이고, 바이든 대통령도 18일 “가자의 테러집단의 로켓 오발 결과”라는 생각을 토로했다.
이스라엘군의 주장이 미국의 이런 판단에 영향을 끼쳤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전투원들이 전화로 주고 받은 얘기들을 감청한 것을 공개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물처럼 제시했다. 예컨대 그들의 대화에서 “(폭발물의) 파편은 여기 것이지 이스라엘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고 했다거나, 하마스가 기습공격을 개시한 7일 이후 가자지구에서 발사된 로켓탄 중에서 약 450발이 잘못돼 가자지구 내에 떨어졌다는 것을 들고 있다. 이런 것들을 근거로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 방문 뒤 귀국길 대통령 전용기에서 기자들에게 “미국 국방부는 이스라엘이 한 것으로 보긴 어렵다는 말을 하고 있다”며 자신의 판단에 자신감을 보였다.
이스라엘의 무차별 가자 공격 중에 일어난 일
하지만 여전히 누구의 소행인지를 밝혀 줄 결정적인 증거는 아직 없다. 이스라엘이나 미국이 팔레스타인 쪽의 소행인 것을 보여 주는 증거인 것처럼 공개한 자료들은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누가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한 것인지 등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일 뿐이다. 게다가 병원 폭격 참극이 인구 200만 명이 넘는 좁은 난민촌 같은 가자지구를 상대로, 이스라엘이 물 전기 식품 에너지 등 생존에 필수적인 물자 반입을 완전히 차단하고 수많은 살상자를 낸 공습 등 10여일 간 계속 퍼부어댄 포탄 공격 와중애 일어났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마스의 기습공격이 전쟁범죄요 국제법 위반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비인도적인 전쟁범죄와 국제법 위반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토머스-그린필드 미국 대사는 유엔 헌장 제51조가 보장하는 자위권을 이스라엘에게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스라엘의 보복적 자위권 행사 대상인 가자지구는 하마스만의 전투지역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민간인들 수백만 명이 모여사는 인구밀집지역이다.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침공을 강행한다면 인명피해는 지금보다 10배는 더 늘어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침공을 강행한다면 이스라엘에 동정적인 여론조차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을 지지한 미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피식민 팔레스타인과 식민지 개척자 이스라엘’라는 단순구조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뿐만 아니라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의 대다수 국가들도 매우 복잡한 것처럼 보이는 지금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아주 단순한 구조로 이해하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19일 기사에서 지적했다. 그것은 “억압받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라는 식민지 개척자들 간의 충돌”이라는 단순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 캐리커처를 이용하여 미국이 가자지구의 갈색 피부 사람들에 대한 지독한 경멸과 인권 및 전쟁범죄에 대한 위선을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이란과 헤즈볼라, 나아가 중도지역 아랍세계를 결속시켜 이스라엘 북부에 제2전선을 만들게 해 확전으로 치닫게 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스라엘 인근 동지중해로 이동한 미국의 항모전단은 바로 그런 사태전개를 막기 위해 급파됐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대규모 침공을 강행하고 미국이 그런 이스라엘을 지지한다면 제2전선과 확전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세계의 다수 인구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물자반입 차단과 계속되는 공습을 이미 자위권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 비판하고 있다. 대규모 무력침공까지 강행할 경우 이스라엘과 미국은 고립될 수 있다. ‘아브라함 협정’ 등 지난 20년 간 공들인 이스라엘-아랍 화해와 화평 노력도 물거품이 될 것이다.
미국의 판단에 달렸다
이스라엘 극우 네타냐후 정권은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사전에 알아차리지도 못할 정도로 초기대응에 실패했고, 정권안보를 위한 사법개혁 강행과 대규모 반대시위 등으로 정치적으로도 위기에 몰려 있었다. 네타냐후가 바이든의 이스라엘 방문을 강력하게 요구한 것은 이런 곤경을 헤쳐나가기 위한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다. 미국이 동의하고 군사적 지원까지 해 준다면 모든 곤경에서 자신을 구해 줄 가자지구 침공이라는 도박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판단했을까.
어쨌거나 이번 사태에 이미 깊숙이 개입한 바이든 정부가 판단을 잘못할 경우 평화로 가는 듯 보였던 중동지역은 다시 확전의 안보위기 시대로 진입할 수 있다. 그것은 미국에게도 재앙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미국이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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