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 죽음과 파괴의 시련에 '역지사지' 호소

구테흐스, 테러 구실 무차별 가자 파괴 반대

미국도 이스라엘의 과격한 결정 견제 시작

이스라엘 안보와 '팔' 국가 건설 동전의 양면

 

14일 가자지구 북부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 군의 공격이 이어지는 가운데 건물들 위로 연기가 치솟고 있다. 2023. 10.14 [AFP=연합뉴스]
14일 가자지구 북부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 군의 공격이 이어지는 가운데 건물들 위로 연기가 치솟고 있다. 2023. 10.14 [AFP=연합뉴스]

"팔레스타인 인민이 느끼는 불만들이 이스라엘 민간인을 상대로 저지른 테러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또한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끔찍한 행위를 구실로 팔레스타인 인민에 대한 집단적 처벌로 대응하는 것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13일 '이스라엘은 왜 가자 대피 명령을 재고해야 하나'란 제목의 뉴욕타임스 특별 기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수십 년에 걸친, 이 비극적 죽음과 파괴의 시련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으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 모두의 상황, 양쪽 모두의 현실, 그리고 양쪽 모두의 관점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필요로 한다"고 덧붙였다.

기고에서 구테흐스 총장은 "우리는 재앙적 상승 작용을 촉발할 순간에 도달했고, 중대한 분수령에 이르렀다"면서 유엔을 포함해 양측에 영향력을 지닌 모든 당사자가 추가 폭력이나 서안지구와 그 너머로의 분쟁 확산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만 한다고 호소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정 가운데) 이 10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진행된 유엔총회 제5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 10.10 [신화=연합뉴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정 가운데) 이 10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진행된 유엔총회 제5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 10.10 [신화=연합뉴스]

구테흐스, 테러 구실 무차별 가자 파괴 반대

하마스 근거지인 가자 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이 임박한 가운데 그는 '24시간 내 대피' 명령 재고를 촉구했다.

그리고 "재앙적인 막다른 골목에서 탈출"하기 위해 당장 △ 유엔 등이 연료, 식량, 식수 등 인도 지원 물품을 전달하기 위해 가자에 대한 신속하고 방해 없는 접근 △ 민간인의 인간 방패 활용 금지와 가자 지구 내 모든 인질의 석방 등을 양측에 요구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병원과 학교, 의원, 유엔 구역 등에 대한 공격 중지를 촉구하며 "양측의 민간인 모두 언제나 보호돼야 한다. 제네바협약을 포함해 국제인도주의법은 존중되고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도 "가자 지구의 무제한적 파괴가 끔찍한 테러로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말했으며, 이스라엘의 최대 우군인 미국은 커지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의식해 과격한 결정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 여성들과 어린이들이 13일 가자지구 중심 도시 가자시티에서 짐을 챙겨 더 안전한 지역으로 피신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의 무력 충돌 이레째인 이날 가자시티 주민 전원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2023.10.13 [AFP=연합뉴스]
팔레스타인 여성들과 어린이들이 13일 가자지구 중심 도시 가자시티에서 짐을 챙겨 더 안전한 지역으로 피신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의 무력 충돌 이레째인 이날 가자시티 주민 전원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2023.10.13 [AFP=연합뉴스]

미국도 이스라엘의 과격한 결정 견제 시작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가자지구 내 인도주의적 위기 대처가 우선순위라고 말했고, 이스라엘을 찾은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도 하마스 공격 때 전쟁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가세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가자 민간인 보호를 위한 안전지대 설치 방안을 이스라엘, 이집트와 논의한다고 밝혔다. 가자지구 남부와 맞닿은 이집트의 라파 국경을 개방해 민간인 대피를 돕겠다는 얘기다. 가자 보건청에 따르면 14일 까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팔레스타인인 1900명이 숨지고 7696명이 다쳤다.

이와 관련해 구테흐스는 이-팔 전쟁이 전 세계에 걸쳐 공동체를 양분하고 분열을 확대하며 증오를 확산·증폭시키고 있다면서 "공식 대담에서 집단학살이란 말을 듣고 몸서리를 쳤다. 상대방의 인간성을 잊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기고에서 구테흐스 총장은 "내가 이스라엘 유대인이라면" "내가 팔레스타인인이라면"이란 가정을 통해 양측에 '역지사지'할 것을 호소했다. 특별 기고의 일부를 번역해 싣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한 호텔에서 회담하는 사이 친민주주의 성향의 이스라엘인들과 이스라엘계 미국인들이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한 참가자는 네타냐후 총리를 "이스라엘의 파괴자"라고 비난하는 팻말을 들었다. 2023.09.21. 로이터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한 호텔에서 회담하는 사이 친민주주의 성향의 이스라엘인들과 이스라엘계 미국인들이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한 참가자는 네타냐후 총리를 "이스라엘의 파괴자"라고 비난하는 팻말을 들었다. 2023.09.21. 로이터 연합뉴스

 "내가 만일 유대인, 팔레스타인인이라면"

내가 이스라엘 유대인의 입장에 선다면, 최근의 공포들을 마침내 홀로코스트에 이르는 2000년 간의 차별과 추방, 망명과 말살의 맥락에서 느낄 것이다. 15세기에 내 조국 포르투갈은 유대 공동체를 쫓아내거나 개종을 강요했으며, 상당 기간 차별받은 끝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다. 이스라엘 유대인으로서 나는 우리의 이웃 중 일부가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통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다.

오늘 내가 한 사람의 이스라엘 유대인으로서 콘서트장에서 학살된 젊은이들, 총을 맞고 집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 할머니들, 야만적으로 납치돼 살해 위협을 받는 어린이를 포함한 많은 민간인(희생자)을 본다면, 거대한 고통과 불안감, 그리고 맹목적 분노를 느끼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이제 나는 분단의 다른 편 상황을 보려 한다. 내가 가자 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인이라면. 내 공동체는 수 세대를 거치면서 한계 상황에 내몰렸고 잊혀졌다. 내 조부모는 강제로 당신의 마을과 집에서 떠나야 했다. 내가 운이 좋았다면 내 아이들은 이웃들을 파괴하고 친구들을 죽인 전쟁들을 겪고도 살아 남았다.

팔레스타인인으로서 나는 어디 갈 곳도 없고 정치적 해결책도 기대할 수 없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이스라엘의) 정착과 추방, 끝없는 점령이 진행되는 가운데 국제사회가 근본적으로 평화 프로세스를 무시하는 것을 보고 있다. 내가 거대한 고통과 불안감, 그리고 맹목적 분노를 느끼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명백히 팔레스타인 인민이 느끼는 불만들이 이스라엘 민간인을 상대로 저지른 테러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나는 다시 한번 이스라엘을 공포에 떨게 했던 하마스와 다른 자들의 혐오스러운 행위를 강하게 비난한다.

또한 명백히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끔찍한 행위를 구실로 팔레스타인 인민에 대한 집단적 처벌로 대응하는 것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친, 이 비극적 죽음과 파괴의 시련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으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 모두의 상황, 양쪽 모두의 현실, 그리고 양쪽 모두의 관점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과 본질을 형성하고 규정하는 상황들, 즉 집단적 기억의 힘과 견인력을 무시할 수 없다.

 

이스라엘 군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사이의 전투가 진행중인 가운데 14일 영국 런던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2023.10.14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 군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사이의 전투가 진행중인 가운데 14일 영국 런던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2023.10.14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 안보와 팔' 국가 건설 동전의 양면

이스라엘은 합법적인 안보 요구가 실현되는 것을 봐야 하고, 팔레스타인은 그들 자신의 국가 건설에 대한 분명한 전망이 유엔 결의안과, 국제법, 이전의 협정들(예를 들면 오슬로협정)에 의거해 실현되는 것을 봐야만 한다.

국제사회가 이 두 목표를 진정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함께 협력해 현실적이고 지속적인 해결책들을 찾을 길을 발견해야 한다. 역사와 상황이 그들을 찢어 놓는다고 해도 공통의 인간성에 바탕을 두고 인간이 함께 살 필요성을 인정하는 그런 해결책들 말이다.

스페인의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대중의 반역' 저자, 1883~1955)는 "내가 내 상황을 구하지 못하면, 나는 내 자신을 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점점 더 상승하는, 이 소름 돋는 폭력과 유혈의 사이클은 끝나야만 한다. 이 분쟁의 양측은 우리의, 국제사회의 단합된 행동과 강력한 지원 없이는 해결을 성취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 모두 안보와 기회의 가능성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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