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중국경제 전문가 커룽 '세카이' 기고

민간기업 규제강화로 지속적 성장 가로막아

국제무역·하이테크 제동 건 '전랑외교'도 한몫

중부가가치 제조업 공동화로 실업률 급상승

17일 베이징의 한 쇼핑몰에서 쇼핑객들이 할인판매하는 옷들을 살펴보고 있다.  2023.09.17. AFP 연합뉴스
17일 베이징의 한 쇼핑몰에서 쇼핑객들이 할인판매하는 옷들을 살펴보고 있다.  2023.09.17. AFP 연합뉴스

중국경제의 감속(정체)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부터 시작됐다. 1978년에 개혁 개방이 시작된 뒤 중국경제는 몇 개의 단계를 거쳐 왔다.

1980년대는 중국사회에 적합한 시장경제가 어떤 것인지를 모색하는 준비기간이었다. 그 기간에 중국사회는 1989년 6월의 ‘천안문 사태’로 정치적 민주화의 길이 막히는 좌절을 겪었다.

1990년대는 시장경제로 매진한 10년이었다. 장쩌민 체제(1989~2002) 때 주룽지 총리가 경제관련 법체제 정비를 강력하게 추진했고, 그 덕에 2001년에 세계무역기구(WTO)에도 가입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중국경제는 그 여파로 높은 성장을 지속했으나 거의 모든 개혁이 중단됐다. 후진타오 체제 10년간(2003~2013)은 그런 면에서 ‘잃어버린 10년’이었다.

시진핑 체제가 정식으로 출범한 것은 2013년 3월인데, 이후 시장경제를 위한 제도개혁은 전진이 아니라 오히려 역진했다. 중국경제 감속은 그때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22일 중국 베이징 징선(京深) 수산시장에서 한 상인이 일하고 있다. 7월 경제지표가 줄줄이 부진하게 나오며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전날 정부의 재정 수입 증가세도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3.08.22. AFP 연합뉴스
22일 중국 베이징 징선(京深) 수산시장에서 한 상인이 일하고 있다. 7월 경제지표가 줄줄이 부진하게 나오며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전날 정부의 재정 수입 증가세도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3.08.22. AFP 연합뉴스

‘기로에 선 중국경제, 시진핑 정권의 고비’

재일 중국경제 전문가 커룽(柯隆)은 이런 관점에서 최근 중국경제 부진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한다. 커룽은 1963년 중국 장쑤성 난징에서 태어나 난징진링(金陵)과기대학 일본어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에 일본에 건너가 아이치대 법경학부를 거쳐 나고야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후지쓰총연경제연구소 주임연구원 등을 역임하고 지금 도쿄재단 정책연구소 주석연구원으로 있는 커룽(일본어명 가류)은 중국경제의 실속(失速) 원인을 시장경제 개혁의 좌절과 정부의 통제강화에서 찾는다. 그 결과 중국의 산업구조는 하이테크 산업과 저부가가치 제조업이 비대해지면서 그 중간 부분인 중(中)부가가치 제조업이 공동화하는 아령 모양의 취약한 구조가 됐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물론 커룽의 관점이다. 신자유주의적 색채가 강한 관점이다. 지금의 중국경제 상태를 어떻게 진단하고 부진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는지는 각양각색이어서 하나의 ‘정답’은 없다. 그것은 중국의 각종 통계자료의 정확성, 투명성의 신뢰도에 의문이 있고, 연구자들의 자유로운 정보 접근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런저런 측면에 착안한 다양한 관점들을 살펴보고 각자 나름대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커룽 연구원이 일본 월간지 <세카이(세계)> 2023년 10월호에 기고한 글(‘기로에 선 중국경제, 시진핑 정권의 고비’)을 중심으로 중국경제에 대한 그의 분석과 전망을 정리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3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제15차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날 시 주석은 "브릭스 확장을 가속해 더 많은 국가를 브릭스 가족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2023.08.24. 신화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3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제15차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날 시 주석은 "브릭스 확장을 가속해 더 많은 국가를 브릭스 가족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2023.08.24. 신화 연합뉴스

중국의 고속성장 비결은 경제 자유화

커룽은 중국경제가 고속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가 주어진 덕택이라고 본다. 알리바바나 텐센트, 바이두 등의 빅테크 기업들은 모두 민영기업이고, 그 대부분이 1990년대에 창업됐다. 1990년대에 진행된 경제자유화가 없었다면 이들 빅테크 기업은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2000년대의 후진타오 체제 10년간 중국경제의 연 평균성장률은 10%에 달했는데, 이는 그 전 10년간의 시장경제개혁에 따른 결실이었다. 게다가 그 기간에 열린 베이징 올림픽(2008), 상하이 세계박람회(엑스포, 2010) 등의 국제적 이벤트와 관련한 고속철도, 고속도로, 공항과 항만 등의 대대적인 인프라 정비도 성장률을 크게 끌어 올렸다.

2008년 리먼 쇼크(월스트리트발 세계금융위기)의 충격파를 피하기 위해 후진타오 정권은 4조 위안(지금 환율로 약 732조 원)이나 되는 재정을 투입했다. 커룽은 중국이 그때까지 축적해 온 것을 총동원한 그때의 대규모 재정투입의 ‘국진민퇴(國進民退. 국가가 앞서고 민간은 뒤처짐)’적 측면에 주목한다. 그가 얘기하는 국진민퇴란 재정 투입에 따른 공적 자금의 대부분이 국유기업으로 흘러들어가 국유기업이 그 자금으로 민영기업을 매수하는 국유기업의 ‘역습’이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28일 중국 베이징 상무부에서 왕원타오 상무부장과 회담하고 있다. 7년 만에 중국을 찾은 러몬도 장관은 이번 방중 기간 수출 규제 조치와 의사소통 채널 구축 방안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2023.08.28. 로이터 연합뉴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28일 중국 베이징 상무부에서 왕원타오 상무부장과 회담하고 있다. 7년 만에 중국을 찾은 러몬도 장관은 이번 방중 기간 수출 규제 조치와 의사소통 채널 구축 방안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2023.08.28. 로이터 연합뉴스

시진핑 체제가 더 밀어붙인 ‘국진민퇴’

그 뒤 시진핑 체제가 되자 시 주석은 국유기업을 더 크고 더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국정부는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를 국유기업 쪽에 걸면서 대형 민간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커룽이 보기에 이것이 중국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가로막았다.

리먼 쇼크 때 중국의 대규모 재정투입으로 중국은 세계금융위기의 직접적인 충격을 피해 갈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를 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커룽이 주목한 것은 국진민퇴의 부정적인 측면이고, 그것이 지금에 이르는 중국경제 장기 부진의 중요한 원인이 됐다고 그는 주장한다.

시진핑 정권이 범한 또 한 가지 실책은 주요7개국(G7)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들과의 대립자세를 선명하게 내세운 것이다. 예컨대 ‘전랑외교’ 같은 것이다. 그 결과 중국은 국제무역뿐만 아니라 하이테크 기술 발전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 전형적인 예가 반도체산업 분야다. 미국 등 서방의 반도체 제재로 중국경제는 병목현상에 시달리게 됐다.

아령 모양의 기형적인 중국 산업구조

커룽은 중국의 산업구조가 아령 모양의 기형적인 구조가 돼 있다고 본다. 한쪽은 하이테크 산업으로, 정부의 보조금 덕택에 상당한 규모를 달성했다. 또 한쪽은 저부가가치 중심의 노동집약형 산업인데, 이쪽도 규모가 커졌다. 그러나 중간급 부가가치 제조업은 의외로 규모가 작다.

경제발전의 일반적인 순서를 생각하면 중국도 이제 산업구조를 고도화시킬 필요가 있으나, 단번에 하이테크 산업 쪽으로 비약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우선 중(中)부가가치 산업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중부가가치 제조업 분야의 기업들 일부가 오히려 생산 라인을 해외로 이전하고 있다.

 

18일 베이징의 에버그란데 시티 플라자에서 행인들이 파산상태에 빠진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에버그란데(헝다)의 개발계획을 보여 주는 홍보지도 앞을 지나가고 있다. 2023.09.18, AP 연합뉴스
18일 베이징의 에버그란데 시티 플라자에서 행인들이 파산상태에 빠진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에버그란데(헝다)의 개발계획을 보여 주는 홍보지도 앞을 지나가고 있다. 2023.09.18, AP 연합뉴스

공동화하는 중(中)부가가치 제조업

커룽이 보기에 중국경제의 약점은 일목요연하다. ‘선진국’들의 제재를 받게 되면서 중국의 하이테크 산업은 발전하기 어려워졌다. 저부가가치 제조업은 인건비 등의 비용이 올라갔기 때문에 이미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중국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중부가가치 제조업은 외국기업들의 해외 이전으로 공동화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경제성장의 실속과 산업 공동화는 실업률 급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농민공 빠진 실업률 데이터 실태반영 못해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중국 도시부 실업률 추이 그래프를 보면, 도시부의 젊은 층(16~24세) 실업률은 급상승(2018년 10% 안팎에서 2023년 20% 이상으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부 전체의 실업률은 거의 변화없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이 문제는 이 그래프상의 도시부 실업률이 도시부의 호적(주민증)을 가진 사람들의 실업률일 뿐이라는 점과 관련돼 있다. 중국에는 약 3억 명에 달하는 농촌 출신 도시이주 노동자(농민공)들이 있다. 그들은 도시로 나가 노동으로 돈을 벌고 있으나 호적은 농촌에 있기 때문에 일자리를 잃더라도 도시부 전체실업률 데이터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중국 국가통계국 발표 실업률은 실제 실업 실태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고 봐야 한다.

베이징대학의 어느 교수는 중국의 실제 실업률이 46.5%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고 자신이 추계한 수치를 공표하기도 했다. 청년층 실업률이 너무 높게 나와서인지 국가통계국은 통계 발표를 중단했다.

 

파산상태의 중국 대형 부동산개발업체 헝다(에버그란데) 그룹이 하이난 성 단저우의 인공섬 오션플라워 아일랜드에 지은 36동의 고층건물. 2022.01.06. 로이터 연합뉴스 
파산상태의 중국 대형 부동산개발업체 헝다(에버그란데) 그룹이 하이난 성 단저우의 인공섬 오션플라워 아일랜드에 지은 36동의 고층건물. 2022.01.06. 로이터 연합뉴스 

청년 실업률 급등, 중소기업 무더기 도산 탓

청년층 실업률이 급상승한 배경에는 경기가 급속히 후퇴한 것 외에 3년간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수백만 개의 중소기업들이 도산한 것이 자리잡고 있다. 중국에는 아직도 중소기업 신용보증제도가 정비돼 있지 않아 팬데믹 기간에 이들 중소기업이 중국정부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해 자금흐름이 경색되면서 무더기로 도산했다.

커룽은 중국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로 볼 때 최근 뚜렷해진 중국경제 실속은 갑자기 진행된 것이 아니라며 노동, 자본 축적, 전체 요소생산성 3가지 요소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의 경우 생산연령인구가 특히 감소하고 있고 2022년부터는 총인구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본효율이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전체 요소생산성도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다.

그 배경에 제로 코로나 정책 강행

이런 움직임의 배경에는 3년간에 걸친 팬데믹 때 중국정부가 강행한 경직된 제로 코로나 정책이 중소기업의 도산을 불러 젊은이들의 실업률을 가속적으로 높인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또 시진핑 정권이 알리바바 등의 빅테크 기업들을 규제하는 바람에 민간기업을 중심으로 신규 투자와 이노베이션(혁신) 의욕을 잃어버린 것도 작용했다.

이는 결국 시진핑 정권이 시장경제에서 크게 일탈한 결과이며, 따라서 지금의 중국경제 실속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상당히 장기화할 것이라고 커룽은 예상한다.

엔데믹 뒤 재발진(리오프닝)한 중국경제가 V자형의 강력한 성장궤도를 회복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L자형 성장궤적을 그리고 있다. 커룽은 그 원인을 시진핑 정권이 경제통제를 강화하면서 시장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라며, 이로 인해 자원배분의 효율성이 한층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중국의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evergrande)그룹 회장 후이카얀이 지난 2017년 3월 연간실적 발표회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7.03.28. 로이터 연합뉴스
중국의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evergrande)그룹 회장 후이카얀이 지난 2017년 3월 연간실적 발표회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7.03.28. 로이터 연합뉴스

예스맨들만 포진한 시진핑 체제 경직성

올해 3월 정식 출범한 시진핑 3기체제는 최고권력 주변에 ‘예스맨’들만 포진시켜 경직적인 데다, 특히 상하이 시 당 서기 출신의 리창 총리가 중앙정부에서 일한 경험이 없고 정권 출범 반년이 지나도록 경제부진을 만회할 유효한 정책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미 중국경제가 디플레 국면에 진입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커룽은 진단한다.

2023년 7월 현재 소비자 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 0.3%로 떨어졌다. 생산자 물가지수(PPI)는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 4.4%로 내려갔다. 개인소비가 얼어붙고 있고, 기업은 설비투자를 미룰 공산이 크다. 게다가 부동산 경기도 급강하하고 있다.

경기가 급속히 후퇴하면 정부가 재정투입에 나서고 인민은행이 금융완화정책을 실시해야 하는데, 2022년에 중앙정부도 지방정부도 재정적자로 돌아서, 정부가 재정 투입을 하고 싶어도 재원이 없어 못하는 상태라고 커룽은 지적한다. 인민은행은 이미 금융완화 정책을 실시하고 있으나 유동성은 시중은행(국유은행)에서 기업 부문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커룽은 중국 특유의 유동성의 함정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이번 중국경제 부진이 예상 이상으로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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