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을 수도 없고, 막으려고 해서도 안된다”
싱가포르 국립대 아시아연구소 프로그램
키쇼이 마부바니 석좌교수 등 공동 집필
중국의 기술성장 막기에는 너무 늦었고
원자재 조달, 소비도 중국 없이는 불가능
도널드 트럼프 정권에 이어 한술 더 뜬다는 조 바이든 정권의 중국 경제성장, 특히 기술개발 분야의 성장 억제 정책은 성공할 수 있을까?
<포린 폴리시>는 지난 19일 이 문제와 관련해 싱가포르 국립대 아시아연구소의 아시아평화프로그램과 협력해서 작성한 글에서 “막을 수 없다”, 그리고 “막으려 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글 작성에는 킹 압둘라 과학기술대학의 토니 챈 총장, 글로벌 투자회사 MSA 캐피털의 관리 파트너이자 미중관계를 다루는 국가위원회 이사회 멤버인 벤 하버그, 그리고 <중국이 승리했나?>라는 저서로도 알려진 싱가포르국립대 아시아연구소 석좌교수 키쇼이 마부바니가 참여했다.
막기에는 이미 늦었다
이들은 미국 정부가 중국의 성장, 기술발전을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이유로 무엇보다 막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점을 들었다. “말이 나간 뒤에 헛간 문 닫는 격”이라는 것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이후 핵무기, 우주, 위성통신, GPS(위성항법시스템), 반도체, 슈퍼 컴퓨터, 인공지능 등 다양한 핵심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제한하거나 개발을 중단시키기 위한 여러 노력들이 이뤄졌다. 미국은 또 5G, 상업용 드론, 전기 자동차(EV) 분야에서 중국의 시장 지배력을 억제하려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실패했으며, 미국의 오랜 지정학적 파트너십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히고 있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스타링크, GPS, 핵무기 등 중국이 독자 개발
예컨대 1993년에 빌 클린턴 정부는 위성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제한하려 했으나, 중국은 지금 우주에 약 540개의 위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스타링크의 경쟁자를 쏘아올리고 있다.
GPS도 마찬가지다. 1999년에 미국이 중국의 지리공간 데이터 시스템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자 중국은 자체 글로벌 위성항법시스템(GNSS) 베이더우(BeiDou)를 구축했다. 필자들은 중국 베이더우가 미국 GPS보다 더 뛰어난 면이 있다고 본다. 31개의 위성을 지닌 GPS보다 45개 위성을 지닌 세계 최대의 GNSS인 베이더우는 전 세계 대부분의 수도에 더 많은 신호를 제공할 수 있으며, 120개 지상국의 지원으로 정확도가 향상되고 양방향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고급 신호기능이 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소련이 중국에 핵무기 기술 제공을 거부하자 중국은 1960년대 초에 독자적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시작해 1964년에 처음으로 핵무기 실험에 성공했다. 중국에 대한 러시아의 핵 관련 영향력은 그것으로 끝났다.
중국의 보복 능력 고려하지 않은 제재
바이든 정부가 중국에 취한 조치들 중 상당수도 중국의 보복(반격)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실행됐다. 특히 희토류 등 원자재 투입과 수요(수익 창출) 면에서 중국은 미국을 압박할 수 있다.
지난 7월 중국은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 금지조치를 취했다. 이는 미국(그리고 한국 등 동맹국들)에게 희토류 및 주요 금속 분야에서의 중국의 지배력을 상기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중국은 마그네슘, 비스무트, 텅스텐, 흑연, 실리콘, 바나듐, 형석, 텔루르, 인듐, 안티몬, 중정석, 아연, 주석 가공에서 거의 독점권을 갖고 있다. 또 전기자동차 산업에 중요한 리튬, 코발트, 니켈 구리 등 미국의 현재 및 미래 기술 개발에 필수적인 재료들의 개발 가공을 주도하고 있다.
원자재 조달 문제
미국과 다른 여러 나라들도 이런 물질들의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채굴과 생산 과정이 간단하지 않다. 광물 추출과 처리 인프라 구축에만 적어도 3~5년이 걸린다. 숙련된 인력 채용, 훈련, 그리고 그 운영 및 환경 허가도 쉽지 않다. 희토류 처리 과정에서는 독성이 매우 강한 물질들이 배출돼 환경을 파괴한다.
이 때문에 미국이 중국과 유사한 재료 가공능력을 개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필자들은 주장한다. 중국이 독점권을 행사하면서 미국의 기술 및 방산 대기업들에 대한 공급을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중국을 대할 때 이런 면에 대한 신중하고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소비(수익 창출)시장 문제
중국이 최첨단 반도체 칩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미국의 조치는 중국에 해를 끼치겠지만, 미국의 칩 제조 대기업들이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반도체 소비국이다. 지난 10년 동안 중국은 미국 기업들로부터 막대한 양의 칩을 수입해 왔다. 미국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중국 기반의 기업들은 2019년에 미국 기업으로부터 705억 달러 상당의 반도체를 수입했다. 이는 이들 기업 글로벌 매출의 약 37%를 차지했다. 코보(Qorvo),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브로드컴 같은 미국 기업들은 매출의 절반 정도를 중국에 의존한다.
퀄컴 매출의 60%, 인텔 25% 등 미국기업 매출 37% 중국 의존
퀄컴 매출의 60%, 인텔 매출의 4분의 1(25%), 엔비디아 매출의 5분의 1(20%)이 중국시장에서 나온다. 이들 세 기업들 CEO가 최근 미국의 수출통제로 미국 관련업계 리더십이 손상당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지난 5월 중국은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칩 구매를 금지하는 보복 조치를 취했다. 마이크론 매출의 25% 이상이 중국에서 이뤄진다.
칩 전면금수 땐 830억 달러 손실 미국기업 경쟁력 상실
이런 중국시장에서 얻은 막대한 수익 덕에 미국 칩 제조회사들이 R&D(연구개발)에 투자해서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중국에 대한 반도체 판매를 전면 금지할 경우 미국 기업들은 연간 830억 달러의 매출 손실을 보게 되고, 12만 4천 명을 해고해야 할 것으로 추산한다. 연간 R&D 예산은 최소 120억 달러 정도를 줄여야 하고, 자본 지출도 130억 달러를 삭감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미국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이 중국에 대해 취한 규제조치들은 중국의 이익보다 미국의 이익을 더 크게 갉아먹게 된다.
미국이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을 주장하다 디리스킹으로 제재 강도를 낮춘 이유다. 그리고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에서 생산된 5G 칩과 운영체제로 구동되는 새로운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를 출시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중국의 기술 성장과 발전을 막으려는 미국의 정책이 왜 현명하지 못한 것인지를 보여 준다.
미국도 정치가 문제
그럼에도 정책전환이 어려운 것은 미국 국내정치가 정책 입안자들이 실용적인 입장 대신 감정적인 강경 입장을 취하도록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들은 미국이 외교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대대적인 재평가를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제시하는 것은 미중 기술경쟁의 제로섬 게임 대신 지속 가능한 협력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솝 우화에 나오듯 북풍보다는 햇볕이 상대를 바꾸는데 더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말하자면 ‘햇볕정책’으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그게 두 나라에도 좋고 인류 전체에도 좋다. 서구가 제시하고 있는 기후변화 관련 온실가스 배출 삭감목표는 태양열, 풍력, 전기 배터리 전력에 대한 많은 특허와 핵심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의 참여 없이는 달성할 수 없다고 필자들은 지적한다. 공동연구 프로그램, 임상시험 및 데이터 세트는 암과 같은 만성적인 글로벌 건강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리고 중국의 과학 인재를 미국이 계속 받아들여 공부하고 일하고 정착도 하게 하는 것이 두 나라 과학발전, 장기적인 국익에도 유리하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은 이를 위한 고위급 대화를 재개하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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