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관광 허용, 경제공동위 이어 외교장관 통화
고위급 교류·외교안보 대화 등 협력키로
한미일 준군사동맹, 공산전체주의 비난과 모순
왕이 "제3자 영향 안돼"…한국 전략적 자주성 주문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이 관계 복원을 모색 중이다.
박 진 외교부 장관은 8월 31일 중국의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과 80분간 전화 통화를 하고 한‧중 관계, 한반도 문제, 지역‧국제 정세 등 상호 관심사를 협의했다.
이틀 전인 29일에 양국은 베이징에서 제27차 경제공동위원회가 열어 안정적 공급망 관리, 경제협력 심화 방안 등을 협의했다. 코로나 팬데믹 탓에 대면 회의는 3년 만에 이뤄졌다. 앞서 8월 10일 중국 정부는 자국민의 한국 단체관광 전면 허용 조치를 발표했다.
꽁꽁 얼어붙었던 한‧중 관계에 비춰보면 눈에 띄는 변화들이다.
한‧중 관계는 '가치 외교'를 표방한 윤석열 정부의 과도한 대미, 대일 편향과 반중 외교로 인해 작년 11월 윤-시진핑 프놈펜 정상회담 이후 단절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4일로 수교 31돌을 맞이했지만, 지금 두 나라 관계는 최악이다.
단체관광 허용, 경제공동위 이어 외교장관 통화
그 정점은 8‧18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였다. 여기서 3국 정상은 '군사동맹에 준하는' 한·미·일 안보 협력체 창설에 합의했다. 중국이 진짜 과녁임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윤 정부의 대중 관계 복원 움직임은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이후에 나타난 변화로 볼 수 있다. 3자 안보 협력체의 '제도화'에 성공한 만큼, 이제는 그동안 아예 외면하거나 소홀히 해왔던 대중 관계에 다소나마 신경을 쓰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하지만 속으로는 쪼그라드는 수출과 날로 불어나는 무역적자 등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고려할 때 중국과의 관계를 더는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고 윤 정부가 판단했음 직하다.
박진-왕이 전화 통화와 관련해 외교부는 "양측은 금년이 한‧중 관계가 새로운 미래 30년을 맞이하는 첫해로서 앞으로 더욱 건강하고 성숙한 관계 발전을 위해 다방면에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 다양한 수준에서 고위급 교류와 소통 △ 외교안보대화, 인문교류촉진위, 1.5트랙 대화 등 협의체 조기 개최 △ 한‧중‧일 3국 정부 간 협의체의 조속한 재가동 등을 위해 긴밀히 협의, 협력하기로 했다고 외교부는 덧붙였다.
왕이 "제3자 영향 안돼"…한국 전략적 자주성 주문
그러나 한‧중 관계 복원에 대한 중국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박진-왕이 통화에 대한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1일 정례 브리핑 내용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왕 부장은 통화에서 관계 복원을 위해 중국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핵심 포인트들을 짚었다.
먼저 그는 "중‧한 관계 발전은 내부 추동력을 지녀야 하며...제3자의 영향을 받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외부 요소들이 방해하지 못하도록 지켜야 한다"고도 했다. 여기서 '제3자'나 '외부 요소'는 미국과 일본을 겨냥한 표현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다음은 한국의 '전략적 자주성'을 주문한 점이다. 왕 부장은 "한국이 전략적 자주성(strategic independence)을 강화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탈세계화와 디커플링(공급망 분리), 공급망 교란 등의 행위에 저항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윤 정부를 상대로 첨단 반도체나 기술 수출 통제를 비롯한 미국 주도의 대중 디커플링이나 디리스킹(위험 회피)에 가담하지 말라는 뜻이어서 미국을 맹종하는 윤 정부의 수용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왕 부장은 "호혜적인 경제‧무역 협력이 중‧한 관계의 '기반암'(bedrock)이다. 중국 경제는 엄청난 발전 잠재력과 거대한 시장을 지니고 있다"면서 "한‧중 협력 확대는 한국이 지속가능한 번영과 발전을 달성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윤, 공산전체주의 비난하며 중국 관계 복원 시도
특히 왕 부장은 중국과 한국은 "이념의 금을 긋는 것을 삼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국이 서로 이념이 달라도 얼마든지 경제‧무역 협력을 통해 '윈-윈'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의 이런 발언은 '공산 전체주의'란 족보 없는 신조어를 남발하며 나라 안팎에서 '자유의 전사'로서 시대착오적 '이념 전쟁'에 여념이 없는 윤 대통령을 지목한 발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윤 대통령은 1일 국립외교원 60주년 기념식에서도 "아직도 공산 전체주의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그리고 반국가 세력은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캠프 데이비드에서 도출된 한‧미‧일 협력 체계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산 전체주의 세력'인 중국을 비난하면서 중국과 관계 복원을 하겠다는 이율배반의 태도다. 앞으로 윤 대통령의 '이념 편집적 기조'가 한‧중 관계 복원에 걸림돌이 될 공산이 크다. 외교부 등 장관급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대통령 차원에서 틀면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중국 측이 윤 정부가 바라는 것을 '들어준' 게 있다. 왕 부장은 "중국은 중‧일‧한 협력의 의장으로서 3자 협력을 증진하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올해 의장국으로서 한국이 주최할 한‧중‧일 정상회의에 대한 지지를 명확히 밝힌 것이다.
중국 "한국, 대만 등 핵심이익보다 우선 안 해"
이렇듯 중국 정부의 태도는 비교적 '우호적'이었지만, 관영 매체의 시각은 날이 서 있었다.
중국 당국을 대변하는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중국의 선의를 양보로 여기지 말라'란 제목의 1일 자 기사에서 관측통들의 말을 인용해 왕이-박진 통화는 "지난달 미‧일‧한 정상회의 이후 내리막길을 걷는 중‧한 관계에 대한 한국 정부의 불안과 불확실성을 반영한다"고 풀이했다.
상하이 대외경제무역대학의 잔더빈 한반도연구센터 주임은 이 기사에서 "박 장관은 중국과의 관계 안정화에 대한 한국의 기대를 전달했지만, 중‧한 관계의 현상 유지에 도발적인 방식으로 행동하고 도전한 것은 한국 정부"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 등 한국 정부 고위 인사들이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여기는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에 '개입'해온 걸 두고 한 말임은 물론이다.
잔 주임은 특히 "중국과의 상호 작용은 한국 정부가 미‧일에 기울어도 대중 관계를 희생하지 않는다는 증거로 과장할 수 있지만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며 "한국과의 관계 발전이 대만 문제와 남중국해 이슈와 같은 핵심 이익들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관변 학자의 말이지만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를 또 건드리면 한‧중 관계를 포기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 문제도 수면 아래로 내려갔지만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는 사안이다. "중국 패배에 베팅하면 후회할 것"(6월 8일)이란 싱 대사의 발언을 두고 윤 대통령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해 정부‧여당의 고위인사들이 "내정간섭"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교체를 요구했으나 중국은 거부하고 있다. 최근에는 싱 대사 접촉 금지 지시설도 나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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