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용효과 적다며 '육성'보다 '자생' 전환

또 극단적인 부정수급 사례 들며 억지 주장

노동 취약계층 일자리 지원은 세계적 추세

“공들여 쌓은 사회 안전망 무너뜨리지 말아야”

장애인과 저소득층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에 대한 지원이 대폭 줄어들 위기에 처했다. 정부가 고용 창출 효과가 떨어지고 지원금의 부정수급 사례가 많다며 지원 체계의 전면 개편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기업 지원정책을 ‘육성’에서 ‘자생’으로 전환하고 직접지원보다 공공 구매와 세제 혜택 등과 연계한 간접 지원에 중점을 두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고용노동부는 1일 이런 내용을 담은 ‘제4차 사회적기업 기본계획(2023~2027년)’을 발표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8일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열린 '노동개혁 추진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3.8.28 [고용노동부 제공]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8일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열린 '노동개혁 추진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3.8.28 [고용노동부 제공] 연합뉴스

고용부는 사회적기업의 창의성과 혁신성을 회복하고 재정지원의 투명성과 적정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속셈은 지원 예산의 대폭 삭감에 있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정부 예산은 대부분 직접지원 방식인데 이를 줄이고 간접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게 기본계획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고용부는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 구체적인 삭감액은 밝히지 않았다.

정부는 사회적기업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떨어진다는 근거로 고용유지율을 꼽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일자리 창출 사업 참여가 끝난 사회적기업 근로자의 1년 이상 고용유지율은 29.2%로 고용장려금을 받는 23개 사업장 중 꼴찌다. 이들 사업장의 평균 고용유지율은 68.2%이었다. 그러나 이는 사회적기업의 현실을 가리고 실체를 왜곡한 통계다. 일반 중소기업과 달리 사회적기업의 작업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장기간 고용유지가 어려운 곳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일반 중소기업과 비교해 고용 창출 효과가 낮다는 것은 탁상공론일 뿐이다.

고용부는 또 거짓으로 근로관계 계약서를 작성해 지원금을 부정으로 수급한 사례가 많다는 점을 개편 이유로 제시했다. 이것 역시 사실을 호도하는 내용이다.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연대회의)에 따르면 사회적기업 예산 중에 부정수급은 0.4%에 불과하다. 연대회의는 “사회적경제의 성과와 파급력을 무시하고 일부의 잘못을 침소봉대해 사회적기업에 부정적 프레임을 씌워 예산을 삭감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자료 :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 지원기관 수
 자료 :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 지원기관 수

고용부는 사회적기업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지원이 일반 중소기업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2007년 제정된 ‘사업적기업 육성법’의 기본 개념과 취지를 망각한 억지다. 사회적기업은 취약계층에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지역사회에 공헌함으로써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한다고 법에 명시돼 있다. 여기서 취약계층은 자신에게 필요한 사회서비스를 시장가격으로 구매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거나 노동시장의 통상적 조건에서 취업이 곤란한 계층을 말한다. 실제로 사회적기업 근로자의 60% 이상은 장애인과 고령자, 경력 단절 여성 등 노동 취약계층에 속한다. 이렇듯 사회적기업과 일반 중소기업은 설립 목적이 전혀 다른 데도 단순 비교해 역차별 운운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사회적기업이 혁신적인 비즈니스모델로 자생력을 키우고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사회적기업이 이런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사회적기업 육성법까지 만들어 정부가 지원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회적기업의 목적은 노동 취약계층의 안전망을 구축하고 소외된 지역의 경제를 살리는 것이다.사회적기업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사회적기업 수는 3534개에 달했다. 2017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고용 인력도 4만1917명에서 6만6191명으로 증가했다. 이중 노동 취약계층 근로자가 4만 명에 육박한다. 사회적기업이 증가하고 순기능이 있는데도 정부는 각종 지원제도를 통합하는 방식으로 예산을 대폭 삭감하려고 한다. 사회적기업 지원을 특혜로 몰아 예산을 줄이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자료 :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 취약계층 고용현황.
 자료 :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 취약계층 고용현황.

사회적기업에 지원된 총예산은 올해 2022억 원 정도다. 윤석열 정부는 부자 감세로 수십조 원의 세수가 펑크 나자 각종 보조금과 지원금을 삭감하고 있다. 부자들 세금은 깎아주고 생계 위협을 받는 취약계층 지원까지 줄이려 하고 있다.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등 56개 사회적경제 조직과 관련기관 회원단체로 구성된 연대회의는 “윤석열 정부의 예산 삭감은 취약계층의 일자리창출과 사회서비스 제공 등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 온 사회적경제의 공든 탑을 부수고 역주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지원 확대는 세계적인 추세다. 사회연대경제의 발전과 국제화를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을 포함해 유럽연합(EU)과 멕시코, 미국, 브라질, 인도를 대상으로 ‘2020-2022 사회연대경제 생태계 촉진 글로벌 액션을 출범했다. 유엔도 지난 4월 제66차 총회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사회연대경제 활성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해 6월 ‘괜찮은 일자리와 사회연대경제 결의안’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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