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회사 출범 8년째 투자손실 회복 못해
엘리엇에 물어줘야 할 배상금도 1300억
삼성 총수 경영권 승계 위한 합병으로
국민 노후 자금과 세금 수천 억 날릴 판
국민연금이 제일모직과 합병한 삼성물산 투자로 수천억 원대 누적 손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실이 국민연금공단에서 받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후 국민연금 손익현황’ 자료를 보면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해 2015년 9월 통합 삼성물산으로 출범한 뒤 국민연금은 올해 1월 말까지 8년간 누적으로 2451억 원의 투자 손실을 기록했다.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추진되던 2015년 당시 국민연금은 옛 삼성물산 지분을 11.2%가량 보유하고 있었다.
국민연금 손익현황 자료에 따르면 합병 첫해인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 연속 투자 손실을 봤다. 이때 누적 손실액은 6462억 원에 달했다. 2019년과 2020년 각각 676억 원과 5338억 원 이익을 내며 손실을 만회했으나 2021년과 2022년 다시 2398억 원과 277억 원 손실을 기록했다. 국민연금은 “종목별 손익은 공시사항이 아니라 오차가 있을 수 있다”며 “주식 손익의 원인은 시장 환경, 산업 특성, 기업실적 등 다양하고 이들 여러 요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빚은 결과이기 때문에 합병이라는 요인 한 가지만으로 국민연금 손익현황을 산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누적 손실이 여전히 수천억 원대에 달하는 명확한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총수 일가의 승계에 유리하게 두 회사 주식 가치를 책정하며 처음부터 논란이 많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2015년 5월 결의한 합병비율은 제일모직 1주에 삼성물산 0.35였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제일모직 지분을 23.23% 보유했고 삼성물산 주식은 없었다. 제일모직이 삼성생명을, 삼성생명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구조라 제일모직 주식 가치를 높게 책정해야 이 회장의 지배력을 높일 수 있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목적이 삼성의 경영권 승계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외국인 투자자를 포함해 대다수 삼성물산 주주는 합병에 반대했다. 그러나 정권의 외압으로 국민연금은 손해 볼 게 뻔한데도 합병에 찬성했다. 결국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특검 수사로 이 사건에 연루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경제개혁연구소는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는 바람에 최소 1138억 원에서 최대 1658억 원의 손해를 입었다는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합병 이슈로 옛 삼성물산 주가가 크게 하락하기 이전의 가치를 상황별로 분석한 결과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최근 국제 중재재판소 판정에서 다시 산정한 옛 삼성물산 주주가치를 기초로 약 687억 원의 손해를 인정받았는데도 단일주주로는 최대 주주였던 국민연금은 손해보전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절차(ISDS)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합병 당시 옛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했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ISDS를 제기해 일부 승소 판정을 받았다. 국민연금에 압력을 행사한 정부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중재재판소는 한국 정부가 법률비용과 지연이자 등을 합쳐 1300억 원을 엘리엇에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정부는 중재재판소의 판정에 취소 소송을 제기하는 불복 절차를 밟고 있으나 승소를 장담하기 어렵다.
이 건과 관련한 법정 다툼도 현재진행형이다. 검찰은 2020년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으로 이재용 회장을 기소했다. 이 회장이 그룹 지배력 강화와 경영권의 안정적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서 불법 행위를 한 혐의다. 검찰은 합병 때 삼성그룹이 의도적으로 제일모직 주가를 높이고 삼성물산 주가는 낮췄을 뿐 아니라 국민연금 의결권을 얻기 위해 불법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장 측은 두 회사의 합병이 합리적 경영 판단이었고 합병 후 경영 실적이 개선됐다는 사실을 근거로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검찰이 이 회장을 기소한 지 4년째지만 아직 1심 재판이 끝나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은 “삼성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무리한 합병이 결국 국민 노후 자금과 세금을 축낼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국제 중재재판소 판정이 나왔을 때 이재용 회장 등 원인 제공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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