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지난해 15년 만에 최악의 실적
통합 노조 곧 출범…노사 갈등 커질 수도
삼성물산 합병 이재용 회장 1심 선고 앞둬
“메모리 반도체 의존도 줄이는 일도 중요”
삼성전자가 31일 지난해 실적을 발표했다. 영업이익은 6조5670억 원으로 전년(2022년)보다 무려 84.9% 감소했고 매출은 258조9355억 원으로 14.3% 줄었다. 순이익도 72.2% 줄어 15조4871억 원에 그쳤다.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이 10조 원 이하로 떨어진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6조 319억 원) 이후 15년 만이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부진했던 삼성전자의 실적을 회복해야 하는 과제 외에 주요 계열사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통합 노조에 대한 대응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사법 리스크 등 올해 위기 요인이 많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바이오 등 주력 사업에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혁신과 기업 구조 개편을 통해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일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은 세계 반도체 경기가 침체한 탓이 결정적이었다. 지난해 반도체(DS·디바이스 솔루션) 부문의 적자는 14조8800억 원에 달했다. 구글과 아마존 등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데이터센터와 네트워크 투자를 줄이면서 주력 제품인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크게 줄었다. 그 결과 가격이 하락하고 재고가 쌓이는 이중고를 겪었다.
삼성전자는 어쩔 수 없이 지난해 3분기부터 감산에 들어갔다. 이에 힘입어 재고가 줄고 메모리 반도체 가격도 회복하며 지난해 4분기 D램 사업에서 1조 원가량의 흑자를 기록했다. 인공지능(AI) 시장이 커지면서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DDR5 등 첨단공정 제품 판매가 점차 늘고 있어 올해 1분기부터 메모리 반도체 사업 전체로도 흑자 전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실장(부사장)은 “생성형 AI 관련 HBM과 서버 SSD 수요에 적극 대응하면서 수익성 개선에 집중할 계획”이라며 “올해 1분기 메모리 사업은 흑자 전환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스마트폰과 가전을 담당하는 DX(디바이스 경험)와 디스플레이 사업도 지지부진해 반도체 적자를 만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작년 4분기 DX 부문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국 39조5500억 원과 2조62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MX(모바일 경험)는 전 분기 대비 매출과 이익이 모두 줄었다. 세계적으로 스마트폰 판매가 저조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TV를 비롯한 가전과 디스플레이도 경쟁이 치열해 큰 이익을 보기 힘든 분야다.
올해는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 데다 지난해 기저 효과까지 고려하면 작년보다는 실적이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 매출도 늘고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낙관하기엔 변수가 많다. 재고가 감소하고 있어 작년처럼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다시 하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세계 경제의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느리면 실적 개선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AI 등에 탑재되는 고부가 제품 시장이 커지고 있으나 범용 제품 판매가 늘어야 매출과 영업이익 개선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삼성전자가 탄탄한 실적 기반을 갖추려면 메모리 반도체 경기에 따라 실적이 요동치는 지금의 사업 구조를 바꿔야 한다. 삼성전자 경영진도 이를 잘 알고 있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와 시스템 반도체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대만의 TSMC 등 파운드리와 비메모리 시장의 선발 업체들도 뛰고 있다. 추격이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주요 계열사의 노조가 새로 결성되거나 통합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변화도 도전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연합뉴스는 31일 삼성 4개 계열사 노조가 참여한 통합 노조(초기업 노조)가 정식 출범을 앞두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 노조는 이날 첫 조합원 총회를 열었다. 현재 초기업 노조에 참가하는 노조는 삼성전자 DX 노조, 삼성화재 리본노조, 삼성디스플레이 열린노조,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조 등이다. 조합원 수는 1만 3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각 계열사 노조는 지난해 말부터 조합원을 대상으로 통합 노조 설립 추진을 두고 찬반 투표를 하는 등 의견을 수렴했는데 찬성률이 90%가 넘었다. 삼성 초기업 노조는 2월 중 정식 출범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삼성 계열사 노조들이 연대한 적은 있었으나 통합 노조를 결정한 것은 처음이다.
이재용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서기 전 삼성그룹은 무노조 경영을 표방했다. 그런 만큼 원만한 노사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보수언론과 경제단체가 주장한 것처럼 삼성의 통합 노조 결정이 회사에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노사 관계를 정립할 수만 있다면 생산성을 높이고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힘이 될 수 있다.
실적 회복과 통합 노조의 출범에 앞서 삼성의 가장 큰 도전 과제는 오너 리스크 극복이다. 이재용 회장의 삼성물산 부당 합병과 회계 부정 혐의 사건의 선고가 2월 5일 예정돼 있다. 이 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자본시장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됐다. 두 계열사는 2015년 5월 이사회에서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약 3주를 바꾸는 조건으로 합병을 결의했다. 당시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했던 이 회장은 합병 이후 지주회사 격인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검찰은 합병 과정에서 제일모직 주가를 띄우고 삼성물산 주가는 낮추려고 삼성 미래전략실 주도로 거짓 정보 유포와 허위 호재 공표, 국민연금 의결권 확보를 위한 불법 로비와 시세조종 등 각종 부정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 결심 공판에서 이 회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5억 원을 구형했다. 재판 결과를 예단할 수 없지만 만약 이 회장이 중형을 받는다면 또다시 장기간 경영 공백이 생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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