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들마저 왜 삼성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가"

검사 출신 박기택 변호사, 한 맺힌 보충이유서

메디슨이 잔금 안 냈는데 거꾸로 채무자 신세돼

대법원까지 상고이유 제멋대로 변경, 패소 판결

국내 최초 '인간차별 범죄'로 대법관 8명 고발

"판‧검사 독점 사법제도, 시민 참여로 개혁해야"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시민언론 더탐사와 인터뷰 중인 박기택 변호사
시민언론 더탐사와 인터뷰 중인 박기택 변호사

국내 최초로 대법관 8명을 인간차별범죄로 고발한 박기택 변호사는 지난 4일 3번째 보충이유서를 들고 대법원을 방문했다. 그는 한때 촉망받는 검사 출신 사업가였지만 15년 전 삼성메디슨과 악연으로 지금은 '사법피해자'가 됐다. 삼성과 대법원을 상대로 한 그의 법정 싸움은 무모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는 나름대로 자신감에 차 있었다. ☞ 박기택 변호사의 재항고이유 보충서

"내가 쓴 보충이유서를 보면 누구도 그들 편을 들지 못할 겁니다. 삼성이 나로부터 920억짜리 대치동 건물을 사면서 잔금 880억 원을 내지 않았는데 거꾸로 내가 채무자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대법원까지 가서 천신만고 끝에 승소했는데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판사들이 대법 판결을 뒤집고 삼성 손을 들어줬습니다. 당연히 재상고했는데 이번에는 대법관들이 제 의사와 무관하게 상고이유를 변경한 뒤 또다시 삼성 편을 들어 판결했습니다. 재심 청구 역시 마찬가지로 기각됐습니다. 재상고심과 재심을 맡은 8명의 대법관이 상고이유를 제멋대로 변경한 것입니다. 대법관들의 이 같은 행위는 과거 수사기관에서 고문이나 가혹행위를 통해 허위자백을 받아낸 것과 마찬가지로 판결문 작성 권한을 남용해 재판청구인의 자기 결정권을 짓밟은 반문명적 인간차별 부패 집단범죄입니다"

그가 촉망받는 검사에서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다 험난한 사법피해자의 길로 접어든 것은 2008년 메디슨과 부동산계약을 체결하면서부터다. 그는 군인공제회로부터 550억 원을 빌려 서울 강남구 대치동 1523평 땅에 연건평 8000여 평의 빌딩을 지은 후 메디슨에 50%를 매각해 군인공제회로부터 빌린 돈을 갚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2008년 4월에 체결된 메디슨과 매매계약은 매도가 920억 원에 계약금은 40억 원으로 정해졌다. 당시 시가 1500억 원 정도의 빌딩을 920억 원에 매각하기로 한 것은 매도 후 3년 이내 박 변호사가 건물의 50%를 재매수하고 1층을 장기임차할 수 있는 특약이 맺어졌기 때문이다. 메디슨이 잔금 880억 중 임대보증금 등을 제외하고 현금 672억 원을 매매계약 완결일인 2008년 7월 1일까지 지급하면 모든 게 무리 없이 끝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매매계약 체결 당시 이미 메디슨의 자금 사정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잔금을 치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메디슨 임원들이 직전년도 대규모 환투기(전량 매도선물)를 진행한 결과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진 2008년 회사에 엄청난 환차손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메디슨의 재무제표를 보면 매출액은 2007년 1843억 원에서 2008년 2299억으로 증가했지만, 경상이익은 93억 흑자에서 36억 적자로 돌아섰다. 매출 증가에도 경상이익이 적자로 반전된 것은 환차손으로 인한 파생상품평가손실(226억 원)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박기택 변호사가 2008년 메디슨과 920억 원에 매매계약을 체결한 대치동 삼성메디슨 사옥
박기택 변호사가 2008년 메디슨과 920억 원에 매매계약을 체결한 대치동 삼성메디슨 사옥

메디슨은 결국 이 같은 자금난 때문에 2008년 5월 14일, 6월 9일 이사회를 개최해 대치동 건물에 대한 매매계약 승인을 철회했다. 매매계약서상 메디슨 대표이사는 매매완결일(7월 1일) 전까지 이사회 승인을 얻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메디슨은 5월 14일 이사회에서 매매계약 승인을 철회한 다음날 40억 원의 잔금을 치렀다. 동시에 잔금 40억 원과 위약금 40억을 담보한다는 명목으로 메디슨을 3순위 우선 수익권자로 100억 원의 신탁등기를 설정했다.

박 변호사는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들은 계약금 40억 원을 지급할 때부터 정상적으로 잔금을 치르기보다는 계약 파기 책임을 나한테 뒤집어씌운 뒤 계약금과 위약금 반환을 명분으로 공매절차를 밟기로 치밀하게 조직적으로 계획을 세운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메디슨은 매매완결일(2008년 7월 1일)이 코앞에 다가오자 현금 대신 신한은행과 외환은행으로부터 받은 각 230억(총 460억)의 대출승인서를 제시하면서 언제든 잔금을 치를 준비가 돼 있다고 통보했다.

하지만 당시 2개 은행의 대출 승인은 박 변호사가 매매계약서에 특약으로 명시한 재매수선택권과 1층 장기임차권을 해제하는 조건이었다. 박 변호사가 이 특약을 포기하면서 시가 1600억 빌딩을 920억 원에 매각하는데 동의할 리는 만무했다. 결국 대출승인 통보서는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하지만 메디슨은 잔금지급일까지 대출승인서를 들이밀며 박 변호사에게 "우리는 잔금 치를 준비가 돼 있으니 당신은 빌딩에 설정된 압류등기 등을 말소하라"고 요구했다. 박 변호사가 압류를 풀지 못하면 계약을 해제하고 계약파기의 책임은 박 변호사에 있다는 뜻을 담은 최고장을 보내오기도 했다.

박 변호사 입장에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우려했던 사태는 현실이 됐다. 메디슨은 2008년 9월 18일 박기택 변호사가 선이행의무(압류등 말소)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을 해제하고 계약금과 위약금을 확보하기 위해 박 변호사가 소유하고 있는 대치동 빌딩을 공매절차에 넘기겠다고 통보했다.

박 변호사가 미처 손을 쓸 사이도 없이 공매절차는 빠르게 진행됐다. 대치동 건물 신탁등기상 1순위 수익권자인 군인공제회가 2008년 10월 2일 공매에 동의하고 11월 21일 메디슨은 공매에 단독응찰, 902억 원에 대치동 건물을 낙찰받았다.

박 변호사는 잔금 880억 원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공매로 인해 재매수선택권과 1층 장기임차권도 빼앗긴 것이다. 반면 메디슨은 박 변호사의 옵션권이 상실되면서 시중은행의 대출 승인조건을 충족하게 됐고 당초 920억 원에 매수하기로 한 대치동 빌딩을 902억원에 확보하는 덤까지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메디슨의 박 변호사를 상대로 한 압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메디슨은 곧바로 박 변호사를 상대로 계약금 및 위약금 반환 등을 이유로 100억 원대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1심 소송은 메디슨의 승소로 끝이 났지만 박 변호사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대출승인서가 정상적인 잔금 지급 수단으로 인정되지 않는 한 메디슨의 주장은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박 변호사가 1심 패소 후 나름대로 항소심을 치밀하게 준비하는 사이 메디슨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2010년 12월 삼성전자가 의료기기 제조업체인 메디슨을 전격적으로 인수한 것이다. 삼성의 메디슨 인수는 이재용 부회장이 의료분야를 차세대육성산업으로 선언하고 나서 이뤄진 것이었다. 차세대 그룹 총수의 관심 사업이었기 때문에 삼성의 메디슨 인수는 그만큼 사활이 걸린 일이었고 최대 장애물은 박 변호사였다. 박 변호사는 메디슨의 주식에 대해서도 경영권 변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옵션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 변호사의 동의 없이는 삼성의 메디슨 인수는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이 관심을 두고 있는 메디슨 인수를 이 정도 법률리스크로 포기할 삼성이 아니었다. 당시 언론 보도(매일경제 2010년 12월 15일 자)를 보면 삼성은 메디슨 인수를 위해 M&A팀을 뒤로 물리고 대신 법무팀을 전면에 내세웠다. 부동산 문제와 주식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법률리스크를 비즈니스 협상보다는 삼성 법무팀 특유의 노하우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계산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법무팀을 앞세운 삼성이 메디슨을 인수한 후 대치동 건물을 둘러싼 항소심 소송은 박 변호사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시중은행의 대출승인서가 정상적인 잔금 지급 수단으로 보기 어려운 점을 충분히 입증했다고 판단했지만, 항소심 역시 1심과 마찬가지로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시민언론 더탐사 방송에 출연한 박기택 변호사
시민언론 더탐사 방송에 출연한 박기택 변호사

하지만 박 변호사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2013년 8월 대법원 민사2부(주심 김용덕)는 1, 2심을 뒤집고 박 변호사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삼성메디슨이 잔금 지급을 위해 제시한 대출승인서를 유효한 지급 수단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메디슨이 잔급지급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니 박 변호사에게 계약해제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승소의 기쁨도 잠시, 파기 환송된 사건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이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판결문 전단에는 잔대금 지급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하다가 판결문 후단에는 메디슨이 적법하게 잔금 지급의무를 이행했다고 이유 구성을 모순되게 하여 다시 삼성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서울고법의 판결은 '사건을 환송받은 법원은 상고법원이 파기의 사유로 삼은 사실상 및 법률상 판단에 기속된다'는 민사소송법 436조 2항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박 변호사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서울고법 판결에 불복, 재차 대법원에 상고했다. 당연히 상고이유는 원심법원인 서울고법이 민사소송법 436조 2항을 위반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박 변호사는 이행의 제공 여부, 매매완결의무, 매매목적물에 대한 수익권 말소의무 등 쟁점별로 서울고법이 상고법원에서 파기의 사유로 삼은 법률상 판단과 양립 불가능한 판단을 했다는 점을 도표까지 만들어 제시했다.

하지만 재상고심을 맡은 대법원(주심 김신)은 박 변호사 입장에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을 내놨다. 대법원 판결문 어디에도 핵심 상고 사유인 민사소송법 436조 2항 위반 부분에 관한 판단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대법원 판결문(2014다 14078)은 상고사유를 첫째, 채권자 지체 중에 발생한 이행불능에 관하여 채무자는 책임이 없다는 주장, 둘째, 이행불능이 된다고 해도 채무자에 책임이 없다는 주장으로 요약한 후 나머지 상고 사유는 '사실심의 전권에 속하는 증거의 취사선택과 사실의 인정을 탓하는 취지'로 정리가 됐다.

민사소송법 436조 2항의 위반을 지적하는 상고 사유를 대법관들이 '사실심 전권에 속하는 증거 취사 사항에 불과한 상고이유'라고 완전히 다르게 전면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처럼 박 변호사가 가장 중요시한 핵심 상고사유가 엉뚱하게 사실심 판단에 대한 불만으로 정리가 되면서 재상고심은 또다시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박 변호사는 재상고심이 기각되자 다시 대법원에 재심을 신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대법관들이 재상고심과 똑같은 방법으로 핵심 상고사유를 임의로 재구성하면서 재심을 기각한 것이다.

박 변호사는 "재상고심과 재심 모두 상고이유서를 제출하면서 파기환송 후 원심이 어떤 식으로 민사소송법 436조 2항을 위반했는지 주요 쟁점별로 30페이지 넘게 설명했는데 대법원이 이를 딱 한 줄 '사실심의 정권에 속하는 사항에 대한 불만'으로 재구성해 판단의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라며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작성한 상고이유를 대법관들이 임의로 재구성한 것에 대해 "대법관 8명이 한국 최고의 사법통치권이라는 지배적 힘과 판결문 작성 권한을 이용해 삼성의 이익을 위하여 개인의 자기결정권에 광범위한 제한을 가한 것"이라며"사법권을 이용해 자기결정권을 박탈하는 행위는 국제법에 반하는 심각한 인간박해"라고 지적했다.

박기택 변호사가 4일 대법원에 3차 보충이유서를 접수시킨 후 접수증을 바라보고 있다. 더탐사 정선호 기자
박기택 변호사가 4일 대법원에 3차 보충이유서를 접수시킨 후 접수증을 바라보고 있다. 더탐사 정선호 기자

박 변호사는 검사 출신의 사업가와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삼성으로부터 소송을 당한 후 근 15년간을 채무자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한가지 꿈을 갖게 됐다. 판사와 검사들이 독점해온 수사와 재판에 일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사법제도의 근본을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법 앞의 평등이라고 말을 하지만 삼성 앞에서는 실제로 이 같은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삼성과의 법정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암묵적으로 유지해온 신분제를 타파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시시포스의 바위처럼 그의 앞에는 늘 새로운 소송서류가 쌓이고 있지만,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운명을 피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2월 대법관 8명을 서울중앙지검에 직권남용혐의 등으로 고소했으나 검찰은 각하 결정을 내렸다. 친정인 검찰에서마저 그의 인권침해 호소 주장을 외면한 것이다. 그는 할 수 없이 서울고법에 재정신청을 제기했고 재정신청마저 기각당하자 지난해 5월 4명의 대법관을 상대로 대법원에 재항고를 제기했다.박 변호사는 이번에 3번째로 보충이유서를 제출하게 된 배경에 대해 "대법원에 재항고한 지 1년 반이 지나도록 결론이 나지 않은 것은 그만큼 이번 사건을 신중하게 들여다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라며 "법조계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이 사건에 관심을 기울여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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