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잇단 금융사고에 이달말 예정발표 연기

은행권 ‘혁신’ 포장해 알뜰폰·배달앱 진출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 위험 관리도 엉망

금산분리 원칙 훼손하며 허용할 명분 약해

산업·금융 결합하면 경제 전체 리스크 커져

금융당국이 은행에 비금융업 진출을 허용하는 내용의 금산분리 완화 정책 발표를 돌연 연기했다. 은행들의 알뜰폰과 배달앱 사업 등이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있는 데다 최근 대형 금융 사고가 잇따라 터지면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2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이달 말 예정했던 금융회사의 비금융 진출을 허용하는 방향의 정책 발표를 연기하기로 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등에 미치는 영향을 더 따져봐야 하고 추가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 뒤에 발표하겠다는 것이다.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새마을금고 본점에 방문해 예금하고 있다. 2023. 7. 7. [금융위원회 제공] 연합뉴스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새마을금고 본점에 방문해 예금하고 있다. 2023. 7. 7. [금융위원회 제공]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인 지난해 7월부터 제1차 금융규제혁신 회의 개최를 시작으로 금산분리 완화를 포함한 금융규제 완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은행에 비금융업을 허용하는 금산분리 완화 정책을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금융과 비금융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한국 은행들도 이자수익에만 의존하지 말고 혁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금융회사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 40년간 지속된 금산분리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금융위는 진출 불가 업종만 빼고 비금융 업무를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하지만 업계와 관련 부처 등과 논의 과정에서 은행에 비금융업을 허용하면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골목상권을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렇지 않아도 고물가와 경기침체로 중소기업과 영세 사업자들이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거대 자본과 정보를 가진 은행이 진출하면 더 힘들어질 수 있다.

금융당국이 1호 ‘혁신금융서비스’라며 규제 특례를 적용한 KB국민은행의 알뜰폰 사업 ‘리브엠’만 해도 그렇다. 알뜰폰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로 혁신 서비스라고 보기 어렵다. 은행 측은 기존 고객과 알뜰폰 가입자를 연계하면 소비자 편익과 금융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 정도 사업을 허용하기 위해 금산분리 원칙을 훼손해야 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신한은행의 배달앱 ‘땡겨요’도 마찬가지다. 배달의민족 등 수많은 배달앱이 출혈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시장에 은행까지 뛰어들 명분이 별로 없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이 사안으로 금융위가 비판을 받았다. 야당뿐 아니라 여당 의원들도 “은행권의 알뜰폰과 배달앱 시장 진출은 혁신으로 포장해 골목상권에 진출하며 자신들의 이익 추구에만 전념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는 금융위가 혁신금융서비스 허용을 남발한 탓”이라고 질타했다.

 

5대 시중은행 로고. 연합뉴스
5대 시중은행 로고. 연합뉴스

최근 국민은행과 경남은행, DGB대구은행 등 은행권에서 대형 금융 사고가 발생한 것은 은행에 비금융업을 허용하는 방안과는 직접적 관련성은 없다. 그러나 은행의 리스크 관리 능력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중소 사업자의 의견 청취와 은행 위험 관리 체계 검토를 거쳐 추후 발표 시기를 다시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금산분리 완화 방침을 고수하겠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발표를 연기할 게 아니라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권오인 경제정책국장은 “금산분리는 모험을 추구하는 일반기업과 안전이 중요한 금융자본이 결합할 때 경제 전체에 위험이 확산할 수 있어 이를 막는 원칙”이라며 “정부는 은행권 사고가 잇따르자 발표를 미룬 것 같은데 그럴 게 아니라 금산분리 완화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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