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소매점서 소주·맥주값 할인 판매 허용키로

정작 식당들은 “여러 상황 감안하면 할인 어려워”

라면값과 통신 데이터 이어 ‘소액 인하 3종 세트’

복지 혜택·재정 축소 정부가 국민 우롱 ‘얕은 수’

국세청이 최근 소매점에서 소주와 맥주 등을 할인해 팔 수 있다는 유권 해석을 내렸다. 하지만 실제 1000원 소주가 나오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6월 28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주류가 진열돼 있다. 2023.6.28. 연합뉴스
국세청이 최근 소매점에서 소주와 맥주 등을 할인해 팔 수 있다는 유권 해석을 내렸다. 하지만 실제 1000원 소주가 나오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6월 28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주류가 진열돼 있다. 2023.6.28. 연합뉴스

정부가 소주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안을 들고나왔다. 물가를 잡겠다는 의도라지만, 서민 생활에 영향이 큰 재정지출과 복지혜택은 축소하면서 작은 혜택으로 국민을 현혹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세청은 최근 주류산업협회, 주류수입협회 등 주류 관련 11개 단체에 ‘소매점에서 소주 등 술을 공급가보다 낮게 할인해 팔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은 공문을 보냈다. 그동안 국세청은 불공정거래 방지를 위해 고시를 통해 공급가보다 싸게 팔지 못하도록 막아왔는데, ‘경쟁자 배제를 위한 술 덤핑 판매나 거래처에 할인 비용 전가 등을 제외한 정상적인 소매점 주류 할인 판매가 가능하다’고 유권 해석을 해준 것이다. 이 때문에 ‘1000원 소주, 2000원 맥주’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사들이 앞다투어 나왔다.

‘미니 3종 선물’로 국민 우롱

이번 조치는 서민의 물가 폭등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기획재정부는 3월 ‘내수 활성화 대책’에서 “주류 시장 유통 및 가격 경쟁을 활성화해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할인 확대를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1000원 소주’의 등장은 어려울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예상이다. 음식점들은 주류 가격 인하가 어렵다고 말한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식당 주인은 “식당에서 소주 한 병에 1500원, 맥주는 1550원에 들여오는데 어떻게 1000원에 팔 수 있느냐”며 “음식보다 술을 팔아서 이익을 남기는데 할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식당 주인도 “할인 이벤트를 하라는 것인데, 당장 나오는 손해는 누가 메꾸어주냐”고 했다. 당국이 내놓은 조치가 생색만 낼뿐 실효성이 없다는 얘기다.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들의 연간 평균 소득은 2017년 2170만 원에서 2018년 2136만 원, 2019년 2115만 원, 2020년 2049만원으로 매년 감소했다. 코로나19의 영향이 컸던 2021년에는 전년보다 100만 원 가까이 줄어 1952만 원이었다.

정부는 실효성 없는 물가 안정 조치를 이전에도 여럿 내놓았다. 3월에는 SKT, KT, LG유플러스가 한 달 동안 무료 데이터를 제공했다. SKT, KT는 30기가바이트(GB)를 제공했다. 3월 대통령이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통신·금융은 공공재 성격이 강한 만큼 물가 안정을 위한 고통 분담에 업계가 자발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통신사를 압박한 결과였다. 하지만 가입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필요한 만큼 데이터를 쓰는 요금제에 가입해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차라리 기본요금을 깎아주는 게 맞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달에는 라면값이 내렸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제 밀 가격이 하락했으니 라면 가격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한 뒤 나온 조치다. 하지만 실제로는 인기 라면 제품의 가격을 안 내려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리얼리서치코리아의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1%가 ‘라면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답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오뚜기 진라면, 삼양라면 불닭볶음면 등 인기 제품이 안 내렸기 때문에 가격 인하를 체감하지 못한 것으로 해석된다.

낮은 임금 인상, 재정은 꽁꽁 묶어

가계부채가 역대 최고 수준인 상황에서 소득과 이를 보전해줄 정부의 재정지출은 줄고 있다. 내년 최저임금은 역대 2번째로 낮은 인상률을 기록했다. 올해 9620원에서 240원 올려 시급 9860원, 월급(209시간 기준)으로 206만 740원이다.

역대 최저였던 2021년 1.5%는 문재인 정부 초반인 2018년, 2019년 2년 연속 10% 이상 인상 뒤 나온 속도 조절임을 감안하면 이번이 가장 박하다. 최근 몇 년 새 물가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어 내년 최저임금은 줄어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연간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5.1%나 올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올해도 3.4%로 상승할 전망이다. 서민 주머니는 더 얇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은 재정을 더 긴축적으로 가져갈 것을 밝혔다. 대통령은 6월 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 모두 발언에서 “정치적 야욕이 아니라 진정 국가와 국민을 생각한다면 긴축·건전 재정이 지금 불가피하다”며 “경제 보조금은 살리고, 사회 보조금은 효율화·합리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정은 줄이고 사회복지는 축소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경제불평등 심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윤 정부가 건전 재정을 앞세우고 있으나 감세로 인해 달성이 어렵고, 사회복지·고용분야의 지출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복지, 보건의료 분야의 공공성 축소 움직임이 감지된다. 보건복지부는 3월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을 통해 낭비를 줄이는 계획을 발표했다. MRI·초음파 등 항목 급여 기준 재검토, 중증질환 진료비 지원을 위한 산정 특례 적용 범위 명확화, 복부 초음파 촬영의 건강보험 적용 축소 등이 추진된다. 5월 기획재정부는 공공의료원인 울산의료원 건립을 예비타당성(예타) 조사에서 탈락시켰다.

40대 직장인 김종수 씨는 “월급은 줄고 의료비 등의 부담은 느는데, 소주값 깎아주며 생색을 내느냐”며 “국민을 개돼지로 아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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