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춘 칼럼]'결혼과 출산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황' 똑바로 보라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거의 매일 한국의 사상 최저, 세계 최저 출생률을 우려하는 언론 보도가 쏟아져 나온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김영미 부위원장은 지난 15년간 전 계층 무상보육(2013년), 아동수당(2018년), 첫만남 이용권과 영아수당(2022년), 부모급여(2023년) 도입을 비롯해 육아휴직제 확대 등 법·제도적 틀과 재정 지원 등을 통해 약 280조 원이 투입됐으나 “결과적으로 초저출산 추세 반전에는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저출산위원회가 활동한 지 15년 동안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기만 해서 이제는 백약이 무효인 상태까지 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직접 주재하고 일과 자녀 돌봄을 병행하도록 육아기 단축근로를 실시하고, 신혼부부 주거비 부담을 낮추고, ‘부모 급여’로 이름을 바꾸어 양육비용 지원액도 높이겠다고 했다. 상반기에 장기 대책도 내놓겠다 한다.

백약이 무효인 초저출산, 제대로 된 정책이 안 나오는 이유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OECD 최하위인 0.78명의 출생률, 한국 바로 위의 이탈리아와도 현저한 차이가 있는 초초저출생률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까? 만약 정부가 이런 식으로 기존 여러 가지 정책을 나열하는 식의 기조를 유지하고, 올해처럼 50조 원 저출산 예산을 편성하고도 직접적인 출산지원 예산은 2.8조원에 그친다면, 아마 지금까지 지출한 280조 원의 두 배인 560조 원을 향후 10년 동안 쏟아부어도 저출생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고, 늙어가고 수축되는 한국은 국가 존립 자체가 흔들릴 것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윤석열 대통령이 제시한 여러 정책에서도 드러났지만 지난 정부를 포함한 모든 정부의 정책은 자기모순적이거나, 면피용 헛발질이 많았고, 혹은 다양한 구조적 원인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그것을 회피한 혐의가 있다. 예를 들어 윤석열 정부는 "학교 교육의 다양성 및 교육선택권 보장을 위해 자사고 존치 등 고교체제개편 세부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이것은 교육경쟁을 유발하여 저출생을 심화하는 정책이고, 주거 부담이 저출생의 원인이라고 지적하면서도 공공임대주택 예산 5조 원을 삭감한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급기야 집권 국힘당은 “아이 셋 낳으면 병역을 면제해 주자”는 제안이나 육아부담을 줄이기 위해 “저임 외국인 도우미 도입하자"는 어처구니없는 정책까지 제안했다.

아마 정부는 비혼 추세, 혹은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기혼 청년들의 선택을 불가항력적인 자연법칙이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초초저출생률이 불가항력적인 자연법칙이라면 과거 심각한 ‘저출산’을 겪고서 다시 출생률이 높아진 유럽의 복지국가들, 그리고 한국과 거의 유사한 역사 문화적 배경과 발전 경로를 겪은 일본의 1.4명의 출생률 유지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중국, 일본, 싱가포르, 이탈리아 등 여성의 지위가 낮은 나라들, 그리고 혼외출산을 금기시하는 가족주의 전통이 강한 아시아 국가들이 일정한 성장을 거친 후 모두 저출생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한국처럼 심각한 나라는 지금 이 지구상에서 찾아볼 수 없다. 즉 한국의 초저출생은 무엇보다도 민주화 이후 한국의 사회경제, 그러한 조건을 만들어낸 한국의 여야 정치권과 역대 정부, 그리고 관련 부처 고위 관료들의 의도적 문제 회피의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3.28.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3.28. 연합뉴스

결혼과 출산 자체를 할 수 없는 나라임을 직시해야

지금까지 정부의 정책은 기혼자 대상의 출산장려에 주로 치중했다. 보육 돌봄 지원, 아동 수당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청년들이 결혼을 못하거나 안하는 데 어떻게 출산장려 처방이 먹힐까? 2018년 조사에 의하면 소득 1분위 30대 남성은 20%만 결혼하지만 최고 소득자인 10분위는 86%가 결혼한다. 젊은이들의 결혼 기피는 비혼주의 사상이 원인이라는 지적은 부분적으로만 타당하다. 즉 고용불안 상태의 가난한 남성 청년들이 결혼하지 못하는 것, 즉 가정을 꾸릴 수 없는 노동 현실이 보다 근원적인 요인이다. 즉 한국은 결혼의 문턱이 매우 높다. 결혼 문턱이란 결국 안정된 일자리와 주거, 그리고 자녀교육이다. 결국 하위 50%의 남성 청년들이 일자리, 주거, 교육 현실을 생각하면 도저히 결혼을 할 수 없다. 결혼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초초저출생의 근본적인 이유다.

여성들의 경우 남성과 달리 소득 하위 20%도 결혼률이 70%를 넘어선다. 그런데 여성 통계에서는 분모가 경제활동인구이므로 이런 결과는 저소득 여성들이 결혼을 많이 한 것이 아니라, 결혼한 저소득층 여성들이 모두 노동시장에 뛰어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노동시장에 진출한 저소득층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는 노동시장 내 성차별, 장시간 노동,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5년간 직장 여성의 유산은 26만 8646건이고 노동시간이 길수록 유산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즉 장시간 노동, 일터에서의 노동권 무시, 일과 가정 양립이 불가능한 현실이 출산을 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남성의 경우 결혼을 못하고, 직장 여성은 직장 내 성차별과 경력단절의 위험, 장시간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출산을 하지 못한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그냥 쉬었다”고 답한 청년들, 즉 구직도 취업도 하지 않는 청년이 50만 명에 달한다. 그런데 산업현장에서도 인력 부족은 매우 심각하다. 청년들에게 단순 노무직이나 제조업에 왜 취직하지 않느냐고 야단칠 일이 아니다. 세계에서 남미 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노동시간이 가장 긴 한국에서 그것도 모자라 69시간까지 노동시간을 늘리자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오지 않나? 노동자들이 초과 근무를 선택하는 이유는 낮은 복지수준과 생계비 보충을 위한 것인데, 아이 양육기간에 단축근로를 허용하면 모자라는 생계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 윤석열 정부의 대책이 공허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먹고살 만해야 애를 낳는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 일본에서 인정했던 원칙이다. 그런데 20-30대 청년층 중 비정규직이 240만 명이고, 청년층 3명 중 1명은 첫 직장이 비정규직이다. 제조업에는 인력 부족이 심각하지만 청년 노동자들은 그리로 가지 않는다. 노동을 천시하고, 노동자들이 위험한 작업장에 그대로 노출되는 한국에서 청년들의 노동 기피는 당연한 일이다. 기성세대 누구도 청년들을 야단칠 자격이 없다. “그냥 쉬었다”는 50만 명의 청년 중 20만 명이라도 먹고살 만한 급료를 받아서 결혼을 할 수 있다면 저출생의 하향곡선은 반전될 것이다. 역대 정부의 저출생 대책은 미혼 비혼의 실제 구조적 원인인 비정규직 차별, 임금 불평등의 현실을 건드리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 김영미 부위원장과 입장하고 있다. 2023,3.28.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 김영미 부위원장과 입장하고 있다. 2023,3.28. 연합뉴스

기혼자들의 출산 기피 문제도 직시해야

결혼을 하고서도 아이를 1명 밖에 낳지 않거나 아예 아이를 갖지 않으려는 커플도 많다. 이들에게 자녀 출산은 거의 ‘수지타산’이 안 맞는 일이다. 가난한 부부는 당연히 출산을 기피한다. 실제로 하위층의 출산율은 상위층의 40%에 불과하다. 그것은 바로 심각한 주거비 부담, 과중한 사교육비와 교육경쟁 때문이다. 주거가 시장화된 한국에서 청년들이 자녀를 기를 안정적 주거 공간을 얻을 수 없다면 당연히 자녀를 낳지 않으려 할 것이다. 서울의 공공임대 주택 비율이 전체의 5% 정도에 불과한데, 신혼부부 공급 몫을 약간 늘리고, 주택자금 대출 시 금리를 낮추어 준다고 기혼자들이 자녀를 가지려 할까? 이웃 일본은 저출생 문제 해결에서 주택 문제를 가장 중시하고 한국보다 훨씬 촘촘한 대책을 세웠다. 양육비와 사교육비 부담은 주거비 다음으로 기혼자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이고 이 점도 이미 서가를 가득 채울 정도의 수많은 보고서가 나왔다. 한편 수도권 집중과 높은 인구밀도, 도시에서의 전쟁과 같은 지독한 생존경쟁을 겪으면서 살고 있는 도시 청년들은 당연히 결혼과 자녀 출산을 기피할 것이다. 전국에서 서울의 출생률이 0.66명으로 가장 낮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출생률이 소폭 상승한 도시로 대전을 들고 있는데 청년 주거, 청년 취업지원 정책으로 청년 인구가 유입하는 등 약간의 효과가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 일본 오카야마현 북부의 나기초 마을에서는 주거, 의료, 교육 등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한 결과 1.4명이던 합계 출산률이 2.8명까지 치솟았다.

“저출산으로 망하는 게 아니라, 망할 세상이라 저출산이다”. 시민들은 이렇게 냉소한다. 결국 한국의 초저출생은 청년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 등 노동권 강화, 젠더 불평등 극복, 수도권 집중 완화없이는 해결되기 어렵다. 노동, 교육, 주거, 복지 관련 사회지출이 OECD 최하위에 묶여 있는데 각종 감세조치를 쏟아 내놓고, 노동시간을 69시간 연장 운운하면서 출생률을 높이겠다는 것 자체가 자기모순이다. 물론 저출생의 큰 원인인 가족주의, 낮은 여성 지위나 젠더 갈등은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없는 역사구조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구조적 조건을 인정하더라도, 저출생의 다층적 원인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것에 맞는 장단기 정책 수립, 적절한 예산 투여, 당장의 노동 교육 주거 정책 전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사실 정치권과 정부는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고 있다. 한국처럼 모든 사회 영역을 시장에 내맡겨 놓고서 초저출생률 추세를 막는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결국 초저출생 문제는 시장과 가족이 공공복지를 대신하는 한국의 정치경제와 사회체제의 개혁, 그리고 자산이나 소득에서 상위 10%만 대변하는 한국 제도정치권의 물갈이 없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초저출생 문제가 정치 문제이자 불평등 문제, 계급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모든 정부 대책은 헛발질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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