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러 핵폐기물 동해 투기 땐 격렬 비난

‘범죄’ ‘경악’ 언급하며 정부에 적극 대처 요구

2021년 문 정부 때에도 ‘일 오염수 반대’ 논조

윤 정부 들어 돌변..국민 우려를 ‘괴담’‘선동’으로

국민 우롱하는 ‘말바꾸기’, 언론 신뢰하락 요인

‘말바꾸기’는 언론이 해서는 안될 일 중 하나다. 비슷한 사안을 놓고 이때는 이렇게 주장했다가 나중에 딴소리를 한다면 누가 언론을 신뢰할 것인가? 국내 언론 중에 말바꾸기 대표 선수가 조선일보다. 수도이전, 군 작전권 환수, 부동산정책 같은 중요한 사안에 대해 ‘그때는 옳고 지금은 틀리다’ 식의 말바꾸기 주장을 해 온 것은 언론계에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발행부수나 영향력 면에서 ‘1등 신문’이 그럴 리가 있겠냐 싶지만, 종이신문 조선일보는 지면에 말바꾸기 흑역사를 고스란히 기록해 놓았다.

조선일보의 이런 나쁜 버릇이 최근 또 시작됐다. 이 신문은 과거 러시아의 원전 방사능 물질의 해양 폐기에 대해 격렬한 반대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요즘 국민의 80% 이상이 우려하고 반대하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서도 2년전 조선일보는 부정적 논조였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언제 그랬나는 듯 입장을 바꾸고 딴소리다. 오염수를 방류해도 아무 문제 없고 국민의 우려는 ‘선동’ ‘괴담’ 이라고 몰고가는 기사, 칼럼, 사설을 쏟아내고 있으니, 이 신문의 말바꾸기가 황당하기만 하다.

30년 전인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러시아가 동해 바다에 핵폐기물을 투기하려 했던 적이 있다. 당시 러시아는 몰래 핵 폐기물을 동해에 쏟아버리다가 국제 환경감시단체인 그린피스에게 적발돼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 우리 정부는 물론 미국, 일본도 러시아에 강력히 항의했다. 조선일보는 그 해 10월20일자 1면 ‘한미일, 러에 강력항의/동해 핵투기 공동조사 등 요구’ 기사에서 “한국 정부가 주한러시아 대사를 불러 러시아의 동해 핵 폐기물 투기 재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하고,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미국과 일본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는 뉴스를 워싱턴과 도쿄발로 각각 기사화했다.

 

또, 같은 날 ‘러시아의 범죄적 핵투기’ 제목의 사설에서 동해 앞바다 핵폐기물 투기를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

“(동해 바다 핵폐기물 투기가) 인류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역사에 큰 죄악을 범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한국과 일본이 러시아에 대해 갖고 있는 외교적 수단을 함께 동원할 것은 물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유엔 등을 통해 국제 공조체제를 마련해야 한다.”(1993.10.20.)

조선일보의 핵 폐기물 동해 바다 투기 비판은 다음날인 10월21일에도 이어졌다. ‘국민의 핵불감증’ 제목의 사설에서 “러시아가 각국의 항의를 받고서도 다시 그런 행위를 한다는데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문제가 된 지역의 해수를 분석해 본 결과 동해에서 자연상태 방사능보다 70배나 높은 농도의 방사능이 검출됐다.…분명한 사실은 동해가 핵에 오염되면 거기에서 나는 수산물은 먹을 수 없다는 사실…우려가 실제로 정말 기우에 불과한 것인지는 모른다. 그리고 일부 전문가들을 포함해서 관계 부처가 국민의 불필요한 동요를 걱정해 피해가 대단한 것은 아니다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은 러시아는 이번만이 아니라 올초에도 핵폐기물을 버렸고…우리 안마당이나 다름없는 동해가 더 이상 핵에 오염되도록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적극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물론이다.” (1993.10.21.)

같은 날 ‘동해 핵투기, 주변국 무시 여론 분노 촉발’ 제목의 기사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은 양국(러시아와 일본) 정부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일 이외에는 분노한 국민감정을 치유할 만한 처방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다. 들끓는 여론을 무마할 대책이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의 핵 폐기물 동해 투기에 대해 ‘경악’하면서 ‘국민의 핵불감증’과 ‘분노한 국민 여론을 무마할 대책 없음’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조선일보의 이런 강력한 반대 논조는 최근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입장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러시아의 핵 폐기물 동해 투기에는 ‘경악’하고 ‘중단할 것을 촉구’하며 ‘방치할 수 없다’고 했다가,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해서는 ‘과도하고 근거없는 우려’ ‘괴담’이라며 찬성하는 이런 말바꾸기, 이중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러시아의 핵 폐기물과 일본의 원전수가 끼치는 피해는 다른 것일까? 러시아 핵 폐기물 투기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와 일본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려는 다른 것인가?

30년전 러시아 핵폐기물 투기뿐 아니라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서도 조선일보는 불과 2년 부정적 논조였다. 문재인 정부 때였던 2021년 4월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결정이 발표되자 조선일보는 14일자 “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 인접국 불안 배려하지 않았다”란 사설에서 ‘오염수에 방사성 물질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고 ‘일본 정부가 다른 대안이 전혀 없어 불가피하게 오염수를 방류하는 것으로 보기도 힘들다’면서 오염수 방류 결정에 우려와 비판을 내비쳤다.

“후쿠시마 보관 오염수의 70%엔 삼중수소뿐 아니라 기준치를 넘는 세슘, 스트론튬 등 다른 방사성 물질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조사돼왔다. 일본은 이것 역시 정화해 방류하겠다고 하지만 인접국의 불안을 털어낼 수 있는 투명한 모니터링 절차를 제시하지는 못했다.…일본 정부가 다른 대안이 전혀 없어 불가피하게 오염수를 방류하는 것으로 보기도 힘들다.”(2021.4.14.)

조선일보는 이어 “일본 생선 얼씬도 마!”, “커지는 일 ‘방사능 오염수 논란’… 경북 반대·규탄 성명 한목소리” (2021.4.15.), “영·호남 9개 시·군, 원전 오염수 방출, 인류 안녕 위협 행위” (4.16), “일 대사관 앞, 원전 오염수 방류 항의 잇단 시위”(4.19), “부산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규탄 시위 잇따라”(4.21) “오염수 배출, 규탄한다… 전남도의회도 결의안 채택”(4.21), “제2한산대첩의 각오…통영서 ‘일 규탄’ 어선 200척 모였다”(4.26) 등의 기사를 통해 한달 내내 오염수 방류 반대 분위기를 전했다.

 

이랬던 조선일보는 윤석열 정부 들어 논조가 갑자기 변했다. 30년 전 러시아 핵폐기물 투기 당시, 2년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 당시와는 완전히 다른 입장이다. 독자는 어리둥절해질 수 밖에 없다.

“영 방사능 석학, 정화 거친 후쿠시마 물, 1리터도 마시겠다‘"(2023.5.15.),  ”함운경 ’오염수 괴담대로면, 내달 한일 횟집 다 문닫아야‘”(5.26), “후쿠시마 방류때 한국인의 방사선 피폭량은 ‘X-레이 1000만분의 1’” (6. 2), “우리도 바다에 민망한 걸 버리던 때가 있었다”(6.7), “충북대 약대 교수 ‘일 오염수 희석해 마시겠다, 더는 공포조장 말라’”(6.7)

이 신문에서 ‘환경담당기자’를 했던 한 논설위원의 최근 ‘환경칼럼’은 실소를 넘어 폭소를 자아낸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불유쾌한 일’이지만, ‘안전하다는 판정이 난다면 이웃(일본) 사정을 이해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도 예전에 축산분뇨를 바다에 버린 일이 있으니 일본의 방사성 오염수 해양 방류를 이해해 주자는 논리다. 이런 주장을 하는 상상력과 ‘이웃 일본’에 대한 한없는 너그러움이 놀라울 뿐이다.

“우리도 바다에 못된 오염물질을 갖다 버리던 시절이 있었다. 1988년부터 군산, 포항, 부산의 먼 바다 쪽에 엄청난 오물을 투기했다. 축산분뇨, 하수슬러지, 식품가공 찌꺼기 등 고농도 유기물들이다…화가 나고 일본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도 어쩔 도리가 없어 그렇게 하려하고 있다.”(2023.6.7., 한삼희의 환경칼럼)

하나의 사안에 진실은 두 개인 것인가?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를 포함한 여러명이 2년 전 “후쿠시마 오염수에는 인체에 치명적인 삼중수소를 비롯하여 60여종의 방사성 물질이 포함되어 있는데 완전한 제거가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라고 쓰여진 오염수 방류 규탄 결의안을 낸 바 있다. 그러나 지금은 조선일보와 국민의힘이 똑같이 ‘전문가들의 의견’과 국민의 걱정을 ‘괴담’과 ‘선동’으로 몰고 있다. 정치도 언론도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식이다. 국민을 우롱하고 기만하는 못된 짓이다. 

정치는 국민이 선거를 통해 바로잡을 수 있지만, 상습적 말바꾸기와 거짓말로 국민을 우롱하고 위기에 빠뜨리는 언론은 도대체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 이런 언론의 행태를 두고 보는 수많은 언론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언론신뢰가 뚝뚝 떨어지고 언론이 회피와 혐오 대상으로 전락해도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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