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유가부수 조작 혐의 조선일보 무혐의 처분
2년 5개월 수사하더니 "증거 못 찾았다" 면죄부
지국에 온 신문 절반이 폐지업체로 직행하는데?
인터넷 쇼핑몰서 새 신문 1kg당 몇백 원에 팔려
수사 대상 조선일보 정부광고비, 두 자릿수 증가
"검찰이 압수수색 방해…재수사로 전모 밝혀야"
지국에 오는 신문의 절반이 포장도 뜯기지 않은 채 폐지 수거업자를 통해 계란판 제조공장으로 직행하는 게 대한민국 유력 신문들의 민낯이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포장지의 으뜸' '냄새 및 습기 제거용' '강아지 배변판'으로 1kg당 몇백 원에 팔리는 실상도 널리 알려져 있다. 본사와 지국간에는 '밀어내기' 및 '뜬 부수'가 발생하고, 광고주가 아니라 신문사가 회원 대다수를 차지하는 ABC협회와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 벌어진다.
지난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사무검사와 일부 언론의 탐사보도 등을 통해 신문업계에 만연한 부수 조작 실태가 수면 위로 떠올라 큰 파문을 일으켰지만, 2년 5개월간의 수사는 허망하게 막을 내렸다. 유가부수 조작 의혹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던 조선일보를 두고 지국과 폐지업체 압수수색까지 벌이며 수사 의지를 보였던 경찰은 결국 윤석열 정권 들어 시간만 끌다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 면죄부를 내준 것이다. 이에 야당 측에서는 재수사를 통해 사건의 전모를 다시 밝혀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부수를 조작해 정부에서 광고비와 보조금을 부당 수령했다는 의혹으로 고발된 조선일보 법인과 방상훈 사장, 한국ABC협회 등에 대해 '혐의 없음'으로 지난 8일 불송치 결정했다고 28일 밝혔다.
시민단체 민생경제연구소에 전달된 수사결과 통지서를 보면, 경찰은 조선일보가 ABC협회에 유료부수 현황을 보고할 때 ABC협회 규정에 따른 유료부수 보고가 아니라 전국 지국에 판매한 '지대부수'를 토대로 산출한 내역을 유료부수 현황으로 보고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독자가 직접 구독료를 낸 유료부수를 집계하지 않고 본사가 지국에 판매한 부수를 유료부수로 산출하면 상당한 규모의 유가부수 부풀리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경찰은 그러나 조선일보 본사와 지국 등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협회와 조선일보가 공모해 유료부수를 부풀렸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자료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 보고된 유료부수가 허위인 것은 맞지만, 조작이나 공모의 증거를 찾지 못했으니 법적으론 처벌할 수 없다는 얘기다.
ABC협회가 밝힌 2020년 조선일보 유가율(발행부수 대비 유료부수 비율)은 무려 95%였고, 성실률(신문사 보고 부수와 ABC협회 표본지국 부수 공사 결과와의 격차)도 98%나 됐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는 2021년 3월 16일 ABC협회 사무감사 발표를 통해 "ABC협회에서 발표한 유가율·성실률과 실제 유가율·성실률 간 상당한 차이를 확인했다"며 "신문지국 평균 유가율은 62.99%, 평균 성실률은 55.37%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신문사와 ABC협회가 주장하는 유가부수에 얼마나 거품이 많은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조사 결과였는데, 경찰 수사는 허탈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빈손으로 끝났다.
경찰은 또 조선일보가 ABC협회에 보고한 유료부수 공사 결과가 단순 참고 자료일 뿐 실제 정부 광고비와 보조금 산정에 활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정부 광고비는 정부 기관과 매체가 협상해 결정되기 때문에 조선일보와 ABC협회가 정부 기관을 속여 광고비를 부당하게 수령했거나 실무자들의 업무를 방해했다고 볼 증거가 불충분해 혐의가 없다는 것이다.
경찰은 ABC협회 자료와 대조해 조작 여부를 확인하려고도 했지만, 검찰은 "협회와 조선일보를 공모관계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경찰의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두 번이나 반려했다. 경찰은 조선일보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전속 고발권을 가진 공정거래위원회가 고발하지 않아 '공소권 없음'으로 불송치했다.
앞서 언론소비자주권행동·민생경제연구소 등 8개 단체는 2021년 3월 2일 조선일보와 ABC협회가 서로 공모해 정부기관과 한국언론진흥재단에 발행·유료 부수를 2배로 부풀려 광고비와 보조금을 부당하게 받았다며 이들을 사기·공정거래법·보조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부수 조작 시정은 악의적 왜곡 보도에 대한 징벌 배상제 도입 같은 '언론개혁'의 축에조차 못 낄 초보 과제"라면서 "문체부 조사 결과 '100만 구독'을 과시하며 영향력을 행사해온 유수의 모 일간지 유료부수가 ABC협회 공표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ABC협회가 공표하는 부수는 수백, 수천억에 이르는 각종 정부 보조금과 광고 집행의 기준으로 부수 조작은 언론시장 질서 왜곡은 물론, 국민 혈세를 훔치는 범죄"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도 2021년 3월 17일 "부수 조작은 국민과 정부를 속인 사기에 해당한다. 조선일보는 조작된 부수로 보조금을 부정 수령했다"며 조선일보와 ABC협회를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2021년 11월 조선일보 신문지국을, 같은 해 12월에는 조선일보가 발행한 신문을 넘겨받은 의혹이 있는 수도권 등지의 폐지업체들을, 지난해 7월에는 서울 중구 조선일보 본사와 경기도 안양 소재 자회사 조선IS를 잇따라 압수수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권에서 끝내 조선일보 수사가 지리멸렬하게 종결되자 고발 당사자였던 민주당 측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찬대 최고위원은 30일 민주당 전남도당 회의실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황당한 결론"이라며 "거짓말을 한 것은 맞는데 거짓말을 한 증거는 찾지 못해서 잘못이 없다고 한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지 묻고 싶다"고 했다.
박 최고위원은 "심지어 ABC 협회 회장 지시로 부수 조작이 이뤄졌다는 협회 사무국장의 증언도 있었다"면서 "그런데도 경찰은 시간을 질질 끌다 정권이 바뀌니 2년 5개월 만에 증거를 못 찾았다고 한다. 못 찾은 건가? 안 찾은 건가? 이런 수사 행태가 경찰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는 행위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쏘아붙였다.
김의겸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신문이 폐지로 팔려나가는 장면이 생생히 보도됐고, 외국에서 호떡 포장지로 쓰이기도 했다"며 "증거는 차고 넘치는데 증거 불충분이란다. 2년 5개월 동안 제대로 된 수사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어 "오히려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한 정부 광고 지표를 전면 재검토하고, 관련자들을 전광석화처럼 불러들이고 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언론사에 정부 광고가 합리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정책'이 수사 대상인가?"라면서 "소도둑 잡으라고 했더니 외양간 고친 사람들을 문책한다. 부수 조작 수사는 슬며시 접고 오히려 제도 개선을 한 사람들을 상대로 추궁하는 형국"이라고 개탄했다.
21대 국회 전반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으로 부수 조작 문제를 의제화했던 김승원 의원도 전날 페이스북에서 "검찰의 방해로 경찰이 가장 핵심적인 자료를 확보하지 못하게 되면서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될 수 없었다"며 "조선일보의 증거인멸 가능성도 수사에서 배제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의심했다.
민주당 국회의원과 여러 시민단체가 경찰에 고발한 시점은 2021년 3월이고 이후 8개월이 지난 11월에야 조선일보에 대한 본격적인 압수수색이 시작됐는데, 이 기간 동안 조선일보가 각 신문지국 자료를 파기하고 허위·조작 정보로 교체했다는 제보가 지속적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에 경찰에 신문지국 하드디스크 포렌식 및 허위조작 정보 존재 여부 등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해야 함을 수차례 촉구했으나 경찰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김승원 의원은 "수사 대상이던 조선일보는 오히려 지난해 정부광고비로 전년 대비 10% 증가한 76억원(787건)을 지급받았다. 10개 일간지 및 3개 경제지 가운데 정부 광고비가 두 자릿수로 증가한 유일한 신문사가 바로 조선일보"라며 "재수사를 통해 사건의 모든 전모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언론자유특별위원회는 성명을 내고 "서울경찰청이 조선일보의 신문 유료부수 조작 사기 혐의 등에 대해 부실수사로 면죄부를 줬다"면서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으니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외면하며 시간을 끈 것이 부수 조작 범죄행위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수순이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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