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념일 제정 뒤 정부 불참 '처음'

시민들 자발적으로 민주열사 추모제

4대 종단은 6월 항쟁 '비상시국대회'

시민들의 1987년 함성이 2023년으로

"호헌철폐" 대신 "적폐청산 독재타도"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10일 오전 서울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민주路 - 같이 걸어온 길, 다시 가야 할 길'을 주제로 '제36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스님(왼쪽부터)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 진보당 윤희숙 상임 대표 등 야당 지도부가 민주화운동 희생자를 기리며 묵념하고 있다. 정부 인사와 여당 지도부 등은 불참했다. 행정안전부는 차관의 축사도 취소했다. 2023.6.10. 연합뉴스
10일 오전 서울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민주路 - 같이 걸어온 길, 다시 가야 할 길'을 주제로 '제36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스님(왼쪽부터)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 진보당 윤희숙 상임 대표 등 야당 지도부가 민주화운동 희생자를 기리며 묵념하고 있다. 정부 인사와 여당 지도부 등은 불참했다. 행정안전부는 차관의 축사도 취소했다. 2023.6.10. 연합뉴스

이제는 시민들의 민주주의 역사와 성과마저 부정하는 것인가.

군사독재를 끝내고 1987년 헌정 체제를 이끌어낸 6·10 민주항쟁 36주년인 10일, 정부의 일방통행과 독선이 6·10의 의미를 퇴색시켰지만 시민들의 함성과 촛불이 그날의 열기를 되살렸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국가기념일 제정 이후 처음으로 6·10민주항쟁 기념식에 불참해 행사를 '반쪽짜리'로 만들었고, 시민들은 거리에 몰려나와 윤석열 정권의 '검찰독재'를 규탄하며 퇴진을 요구했다.

정부 불참한 반쪽자리 6·10 민주항쟁 기념식

이날 오전 10시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는 제36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 '민주로(路) - 함께 걸어온 길, 다시 가야 할 길' 행사가 열렸다. 6·10 민주항쟁 기념식이 민주화 성지로 불리는 명동성당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 한덕수 국무총리,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장관 직무대행) 등 정부 인사와 여당 지도부는 아무도 행사에 나오지 않았다. 정부가 6·10민주항쟁 기념식에 전면 불참한 것은 2007년 국가기념일 제정 이후 처음이다. 행안부 차관은 기념사마저 취소했다.

정부가 불참을 선언한 것은 기념식을 주관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32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위원회'의 행사에 후원 단체로 이름을 올렸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위원회는 지난 8일 <한겨레 신문> 10면에 '열사의 염원이다. 민중세상 가로막는 윤석열은 퇴진하라' 문구 등이 포함된 지면 광고를 낸 바 있다.

 

10일 오전 서울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민주路 - 같이 걸어온 길, 다시 가야 할 길'을 주제로 열린 '제36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계성고등학교 윤정은, 정누리 학생이 6.10 민주항쟁을 기억하는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2023.6.10. 연합뉴스
10일 오전 서울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민주路 - 같이 걸어온 길, 다시 가야 할 길'을 주제로 열린 '제36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계성고등학교 윤정은, 정누리 학생이 6.10 민주항쟁을 기억하는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2023.6.10. 연합뉴스

행안부는 다음 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대한 특별감사를 예고하고 나섰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해당 행사에 대한 공모 선정을 취소하고 지원금 집행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명 대표는 기념식 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시작한 이 현장을 대통령과 정부 당국자가 보이콧한 것을 유감스럽다"며 "민주항쟁이 없었다면 오늘의 윤석열 대통령도, 오늘의 정권도 없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공식적 정부 행사를 비토한다는 것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라며 "대한민국이 민주국가임을 부정하는 행위라 참으로 유감스럽다"고 했다.

양회동 열사 영정 올라간 민주열사 추모제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위원회는 예정대로 이날 오후 2시 30분부터 서울시청 동편 도로에서 '제32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 추모제'를 열어 민주화 운동에서 희생된 780여 명의 영정을 모시고 추모했다.

참가자들은 추모제에 앞서 종로 보신각 앞에서 서울시청까지 희생자 영정을 들고 행진했다.

장옥기 민주노총 건설노조 위원장은 양회동 열사 영정을 들고 "윤석열 정권이 6개월이 넘도록 건설노조의 정당한 조합 활동을 불법으로 매도해서 건설노동자 22명을 구속시키고 1000여 명을 소환조사 하고 있다"며 "그 과정에 양회동 열사가 희생했다"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더 이상 윤석열 정권과 건설자본은 우리 건설노동자들의 인간 존엄을 짓밟지 말라"며 "건설노조는 양 열사가 염원하는 모든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윤석열 정권을 반드시 퇴진시키라는 그 투쟁에 가장 선봉에서 투쟁하겠다"고 했다.

 

10일 오후 서울시청 앞 도로에서 열린 제32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 추모제에서 한 시민이 헌화 및 묵념을 하고 있다. 2023.6.10. 연합뉴스
10일 오후 서울시청 앞 도로에서 열린 제32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 추모제에서 한 시민이 헌화 및 묵념을 하고 있다. 2023.6.10. 연합뉴스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민주유공자법) 촉구 목소리도 이어졌다. 이 법은 민주화운동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예우를 담고 있지만 국민의힘 반대로 입법이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민주유공자법제정추진단 장현일 단장은 "60년 전에 민주화 운동했던 분들조차도 아직 유공자로 인정하지 못할 정도로 역사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이 운동장을 바로잡을 책무는 살아 있는 우리에게 있다. 돌아가신 열사들이 남긴 책무를 잊지 말자"고 말했다.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위원회는 결의문을 통해 "윤석열 정부는 검찰독재, 노조탄압, 공안탄압, 언론탄압으로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며 "열사의 염원이다, 반민족 반민생 반평화 친재벌 윤석열 정권 퇴진시키자"고 했다.

4대 종단·시민사회 6월 항쟁 비상시국대회 열어

오후 6시부터는 서울 지하철 시청역~숭례문 앞 대로에서 36주년 6월 민주항쟁 계승 비상시국대회가 열렸다.

비상시국대회는 비상시국 기독교 연석회의, 한국사회 대전환을 위한 범불교시국회의,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원불교 사회개벽 교무단 등 4대 종단과 촛불행동,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전국비상시국회의 추진위원회가 주최했다.

 

10일 오후 서울시청 앞 도로에서 열린 제32회 에서 참가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2023.6.10. 연합뉴스
10일 오후 서울시청 앞 도로에서 열린 제32회 에서 참가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2023.6.10. 연합뉴스

김상근 목사(전국비상시국회의(추) 상임고문)는 "소통·타협·협상이 없다"며 "법은 협상 없이 가결되고 대통령은 머뭇거리지 않는다. 심사숙고하는 척도 안 하고 즉각 거부권을 행사한다. 윤석열 집권 단 1년 만에 이 나라에 정치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감사원·선관위·방통위·권익위는 정치적 독립체고 협의체 기구이고 기관장 임기가 있다. 임기가 아직 남았다고 대꾸하니까 감사원 동원하고 검찰·경찰 시켜서 위원장들을 뒤지고 쪼이고 먼지털이한다"며 "낯뜨거운 짓이다. 민주주의 파괴"라고 했다.

김 목사는 "수많은 땀, 수많은 눈물, 수많은 피, 수많은 장애자, 수많은 죽음, 이 수많은 희생 위에 이루어진 민주주의"라며, 윤 대통령을 향해 "제발 박정희·전두환 시대로 돌아가지 마라. 당신, 돌아가면 끝장이다"라고 했다.

진우 스님(시국법회 야단법석 대변인)은 "바른말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찍어내는 간신나라 충신들이 많다"며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모두가 종교인이었듯이 지금 제2의 심리적 일제 강점기하에 우리는 독립운동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은 검찰 공화국"이라며 "'유죄확정의 원칙'을 가지고 정적을 찍어서 몇백 번이나 되는 압수수색을 하고 피의사실을 수사단계부터 흘려서 명예살인을 하는 검찰 공화국을 반드시 무찔러야 한다"고 외쳤다.

 

4대 종단 종교인들이 36주년 6월 항쟁 비상시국대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2023.6.10. 사진 이호 작가
4대 종단 종교인들이 36주년 6월 항쟁 비상시국대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2023.6.10. 사진 이호 작가

김성근 교무(원불교 사회개벽 교무단 대표)는 "건설 노동자를 건폭으로 몰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서슴없이 경찰봉을 휘둘러 폭력적으로 진압하였으며, 이제는 사라졌던 최루액을 부활시켰다"며 "이제 자국민들에게 위압적인 국가권력을 폭력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4년이 채 남지 않았다.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공권력으로 국민을 대했던 폭압자 중 국민으로부터 심판받지 않은 자가 없었다. 그 심판의 시기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며 "윤석열 정권을 규탄하고 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1987년 함성이 2023년으로 "적폐청산 독재타도"

6월 민주항쟁 계승 비상시국대회에 이어 같은 장소에서 '6월항쟁 정신계승 윤석열 검찰독재 타도'를 주제로 '43차 촛불대행진'이 열렸다.

행사에는 5000명(연인원)의 시민이 참가했으며, '오솔잎의 율동배우기' 가수 김성만 공연, 노래 모임 블루웨이브의 공연, 노래 '그날이 오면' 합창 등이 진행됐다. 시민들은 1987년 '호헌철폐 독재타도' 구호를 '적폐청산 독재타도'로 바꿔 외쳤다.

민주당 최강욱 의원은 무대에 올라 "군부독재를 뺨치고 남을 이상한 족속들이 나타나서 나라를 망가뜨리고 있다"며 "감히 헌법, 법치주의를 운운하면서 그토록 피 흘려 쟁취했던, 어렵게 쌓아올린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근본으로부터 훼손하고 있다"고 했다.

최 의원은 "(대통령은) 법대를 나왔다면서, 법을 집행한다면서 국민들을 겁박하고 압박한다. 계속 눈을 부라리면서 국정을 파탄시키고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고 민생을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외교는 너무나 부끄러운 현실에 차마 언급하기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10일 촛불대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이 서울 도심에서 용산 대통령실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2023.6.10. 사진 이호 작가
10일 촛불대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이 서울 도심에서 용산 대통령실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2023.6.10. 사진 이호 작가

그는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시민들의 역량을, 대한민국 민주주의 성취를 무엇으로 봤기에 저렇게 얼토당토않은 행동을 하는 것이냐"며 "저 무도한 자들에게 국민의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반드시 똑똑히 새겨줄 시기가 왔다"고 외쳤다.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하청노동자 유혈진압 사태를 언급한 뒤 "경찰이 이렇게 시민을 때리는 것은 법 집행이 아니라 범죄일 뿐"이라며 "이미 제압한 다음 수갑을 뒤로 채우는 뒷수정을 한 것은 신체 고통과 망신을 주기 위한 것이다.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했다.

오 국장은 "경찰이 시민을 적으로 상정하고 무모한 도발을 획책하고 있다.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오로지 대통령만을 위해 경찰을 이상한 방향으로 내몰고 있는 윤희근 씨는 경찰청장 자격이 없다. 당장 물러나야 한다"고 외쳤다.

시민들은 본 집회를 마친 뒤 오후 9시까지 용산 대통령실을 향해 행진했다. "6월 항쟁 정신으로 검찰독재 타도하자" "6월 항쟁 정신응로 윤석열을 끌어내리자" "노동말살 공안탄압 윤석열 독재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10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 인도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과 시민들이 경찰에 항의하고 있다. 2023.6.10. 건설노조 제공
10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 인도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과 시민들이 경찰에 항의하고 있다. 2023.6.10. 건설노조 제공

한편 민주노총건설노조는 오후 6시 30분부터 파이낸스 빌딩, 청계광장 인근에서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노동자와 시민들은 문화제를 마친 뒤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을 향해 행진했다. 건설노조 측은 경찰청 앞 도로와 인도를 모두 집회 장소로 신고했지만, 경찰이 병력을 투입해 일방적으로 인도를 막으면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참가들은 '윤석열 아웃(OUT)' 스티커를 펜스와 인도·도로 경계석 등에 붙이는 상징의식을 하며 항의했고, 경찰은 "스티커를 붙이려는 행위는 '국가중요시설 훼손 행위'로 중대한 범죄행위"라며 "퍼포먼스를 중단하라. 채증하겠다"고 재차 경고방송을 했다.

집회는 물리적 충돌이나 연행 없이 오후 9시쯤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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