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 46년 만에 국회 통과 간호법, 휴짓조각으로

윤 거부권 남발에 정국 경색, 국정 혼란 악화일로

"매표용 악법" 지목된 노란봉투법 등 정해진 수순

야권 "국민 갈등 부추기고 이용하는 저열한 정치"

대한간호협회, 21대 국회 내 간호법 재추진키로

"내년 총선서 반드시 심판…복지부 장‧차관도 단죄"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간호법을 재표결하고 있다. 2023.5.30. 연합뉴스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간호법을 재표결하고 있다. 2023.5.30.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상습적 국회 무력화 수단이 되면서 정국 경색과 국정 혼란, 사회 갈등이 끝을 모르게 확대되고 있다.

입법 추진 46년 만에 가까스로 국회 문턱을 넘었던 간호법은 이 법 제정을 지지했던 윤 대통령과 실제 발의했던 여당에 의해 결국 폐기되고 말았다. 대한간호협회는 "자신들이 약속했던 간호법의 마지막 명줄을 끊었다"며 정부‧여당을 향해 격렬한 분노를 표시하고 '저항권 발동'과 '총선 심판'을 선언했다.

국회는 30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윤 대통령이 법률안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던 간호법 제정안을 다시 표결에 부쳤다. 재석 의원 289명 중 찬성 178명, 반대 107명, 무효 4명으로 결과는 부결이었다.

지난달 27일 다수결의 대원칙에 따라 정당하게 국회를 통과했던 법안이 한 달여 만에 휴짓조각이 된 것이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을 다시 의결하려면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3분의 2 이상 찬성이라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데, 재적의원(299명) 중 국민의힘 의원(113명)이 3분의 1을 넘기 때문에 재의결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월 11일 대한간호협회를 직접 방문해 간호법에 대한 적극적 지지 의사를 밝혔고, 국민의힘 측에서도 조속한 입법을 약속했었다. 실제 2021년 3월 간호법 제정안 3건의 대표 발의자는 각각 국민의힘 서정숙‧최연숙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으로 대표 발의자 3명 중 2명이 국민의힘 소속이었다. 게다가 공동 발의자로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총 46명이나 됐다. 특히 서정숙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간호법안에 공동 발의자로 참여한 의원 33명은 전원 국민의힘 소속이었다(당시 탈당으로 무소속이었던 박덕흠 의원 포함).

 

 2021년 3월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이 대표 발의했던 간호법안에 공동 발의자로 참여한 의원 33명은 전원 국민의힘 소속이었다. 국회 홈페이지 의안 검색
2021년 3월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이 대표 발의했던 간호법안에 공동 발의자로 참여한 의원 33명은 전원 국민의힘 소속이었다. 국회 홈페이지 의안 검색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유관 직역 간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간호 업무의 탈(脫) 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며 철저히 의사 집단에 편중된 논리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법률안 재의요구권으로는 지난달 4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이어 두 번째이고, 역시 국회를 통과한 박진 외교부 장관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 건의안을 묵살한 것까지 포함하면 네 번째 거부권 행사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간호법 투표 결과를 밝힌 뒤 "정치적 대립으로 법률안이 재의 끝에 부결되는 상황이 반복돼 매우 유감"이라며 "국민 여러분께도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여소야대 국회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효과적 무기로서 거부권 남발에 이미 맛을 들인 상태여서 국회의장의 유감 표명도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전가의 보도를 다시 휘두를 시점은 그리 멀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양곡관리법, 간호법에 이어 "민주당의 매표용 악법"이라고 지목한 일명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과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방송 3법 개정안 등), 학자금 무이자 대출법(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 개정안) 등이 6월 임시국회에서 야권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하면 윤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 거부권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런 망국적 입법 폭주를 막을 수 있는 건 대통령 재의요구권밖에 없다"고 말해 거부권 행사를 기정사실화했다.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간호법 제정안이 재표결 끝에 부결된 뒤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방청석을 나서고 있다. 2023.5.30. 연합뉴스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간호법 제정안이 재표결 끝에 부결된 뒤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방청석을 나서고 있다. 2023.5.30. 연합뉴스

간호법 재의결 부결 뒤 민주당 김한규 원내대변인은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국민들께 죄송하다. 간호사들의 오랜 열망이자 국민의 건강을 위한 간호법은 결국 좌초됐다"며 "민주당은 국민에게 더 나은 간호 혜택을 제공하는 길을 포기하지 않겠다. 더 내실 있게 공공의료체계를 강화할 수 있는 법안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정의당 위선희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오늘 국민의힘은 공천권에 눈이 멀어 독립적인 입법부의 권한을 스스로 내팽개쳤다"며 "게다가 시행령 정치에 이어 입법부의 권한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정치는 가히 사상 최악이다. 국민의 갈등을 부추기고, 그 갈등을 이용하는 저열한 정치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전체를 퇴행시키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진보당 손솔 대변인은 "직역간 갈등을 부추기고 가짜뉴스를 생산한 파렴치한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면서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간호사 단체가 말한 대로 '후안무치한 탐관오리들'이다. 민심 이반 윤석열 정권은 반드시 국민들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영경 대한간호협회 회장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간호법안 재의의 건 투표가 부결된 뒤 국회 본청 앞에서 '간호법 재추진을 위한 성명서'를 발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5.30. 연합뉴스
김영경 대한간호협회 회장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간호법안 재의의 건 투표가 부결된 뒤 국회 본청 앞에서 '간호법 재추진을 위한 성명서'를 발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5.30. 연합뉴스

특히 당사자인 대한간호협회는 이날 본회의 재표결 이후 국회 본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국회 임기 만료 전에 간호법을 재추진하겠다고 못박았다. 또 간호법이 무산되는 과정에서 책임이 있는 정치인들을 상대로 내년 총선에서 사실상 낙선운동을 벌이기 위해 총선기획단을 꾸린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협회는 '간호법 재추진을 위한 성명서'에서 "대통령이 후보 시절 약속했던 간호법을 대통령 스스로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국민의힘은 자신들이 발의하고 심의했던 간호법의 마지막 명줄을 끊었다"며 "간호법은 국가권력에 의해 조작 날조됐다"고 규정했다. 이어 "62만 간호인은 저항권의 발동을 선언한다"면서 "의사와 의료기관의 부당한 불법 진료 지시를 거부하는 준법투쟁에 참여하고 내년 총선에서 부패정치와 관료를 심판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협회는 ▲국가권력에 의해 조작 날조된 간호법안의 실체적 진실을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국민들께 전파 ▲의사와 의료기관에 의한 부당한 불법 진료 지시 거부 ▲2024년 총선에서 불의한 국회의원 반드시 심판 ▲국민을 속인 보건복지부 장관과 차관 단죄 등을 실천하겠다고 공언했다.

김영경 회장은 "제가 먼저 간호법 제정을 위한 준법투쟁과 2024년 부패 정치와 관료 척결을 위한 총선 활동을 솔선하겠다"면서 "더 이상 후배 간호사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남겨주지 않을 것이다. 50만 간호사 회원과 12만 간호대학생 여러분! 다시 한번 힘과 지혜를 모아 간호법 제정을 위해 투쟁하자"고 역설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