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차례 압수수색, 1000여 명 소환, 15명 구속

건설노조 간부‧활동가 거의 전원이 처벌 표적돼

거대 자본에 맞선 정당한 요구들을 '갈취'로 몰아

허위 사실로 사회적 편견‧멸시 부추겨 낙인찍기

열악한 환경 속 '건설현장 주역' 자존감 무너뜨려

'노동자의 날' 분신한 간부 "제 자존심 허락 안 돼"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간부가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법원 앞에서 분신을 시도한 1일 강원 강릉시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건설노조원들이 검찰과 정부를 규탄하는 긴급 집회를 벌이고 있다. 2023.5.1. 연합뉴스
민주노총 건설노조 간부가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법원 앞에서 분신을 시도한 1일 강원 강릉시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건설노조원들이 검찰과 정부를 규탄하는 긴급 집회를 벌이고 있다. 2023.5.1. 연합뉴스

누군가 자신의 몸에 신나를 붓고 라이터 불을 당겨서 온몸을 불태우려 한다면 거기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억울하고 세상을 향해서 절규하고 싶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날'이라는 5월 1일 강원도의 법원 앞에서 분신을 한 건설노조 지역 간부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이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였다. 윤석열 정부가 집권하고 나서 1년 내내 이어진 건설노조 죽이기가 낳은 결과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1계급 특진을 내걸고 경찰과 검찰을 동원해 대대적인 압수수색, 영장청구, 구속기소를 추진했다. 특별단속이라는 명목으로 13차례의 압수수색, 15명의 구속이 이루어졌고 현재까지 소환장을 받고 수사 대상에 올라있는 사람만 1000여 명에 달한다.

이것은 건설노조의 간부나 활동가 거의 전부가 법적 처벌의 표적이 돼 있다는 말이다. 끝없는 압수수색과 소환조사와 구속영장 청구에 건설노조는 다른 활동과 사업들이 마비될 지경이다. 민주노총을 지지하는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구속수사만은 면하게 해달라'는 탄원서 작성에 동참하고 있다. 탄원서를 써도 써도 끝이 없을 정도로 새로운 구속 대상자에 대한 탄원이 또 올라온다.

표적수사와 탄압을 위해서 윤석열 정부와 친정부적 주류언론들이 건설노조에 뒤집어씌운 낙인들은 아주 고약한 것이다. "협박" "강요" "갈취" "돈 뜯기" "횡포" "횡령" "뒷돈" "건폭"…. 건설노조와 건설노동자들은 파렴치한 깡패와 괴물들처럼 그려졌다. 최근에 두드러진 것은 진보당과 연결해 건설노조를 '종북 간첩'들의 "숙주"라고 낙인찍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하나도 사실이 아니다. 건설노조는 정치권력과 결탁한 건설자본의 이윤만을 위한 불법 다단계 하도급 속에 저임금 일용직으로 죽고 다치면서 일하던 건설노동자들의 권리와 목소리를 대변해 왔다. 건설노조가 없었다면 그 누구도 건설현장에서 '을 중의 을'인 노동자들의 끔찍한 현실을 바꾸지 못했을 것이다.

'조합원 채용 요구'는 노조를 배제하고 탄압하는 건설자본에 맞서 '노조원도 채용해 달라'는 정당한 요구였지 '협박과 강요'가 아니었다. '노조 전임비 요구'는 노조 업무를 전담하는 전임자에게는 다른 회사들처럼 임금을 줘야 한다는 당연한 요구였지 '공동갈취'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것을 통해 건설노동자들은 '우리도 건설 현장의 당당한 주역'이라는 자부심을 얻었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충북지부 조합원들이 1일 노동절 대회에 앞서 사전집회를 연 뒤 충북도청 앞을 행진하고 있다. 2023.5.1. 연합뉴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충북지부 조합원들이 1일 노동절 대회에 앞서 사전집회를 연 뒤 충북도청 앞을 행진하고 있다. 2023.5.1. 연합뉴스

따라서 건설노조를 '건설 현장에서 수많은 불법과 비리, 폭력과 갈취를 저지르고 있는 건폭'으로 몰아간 것은 건설노동자들의 자존감을 다시 시궁창에 처박아 버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분신한 간부가 유서에서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네요"라고 쓴 이유다.

건설현장을 번듯한 직장으로 바꾸고 있다는 자부심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이웃과 동료 시민들의 눈초리가 차가워질 때 더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200년 전의 유럽에서는 노동자들이 단체를 만들어 교섭을 요구하는 것은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공갈과 협박'이었는데, 윤석열 정부와 족벌언론들은 순식간에 한국사회의 시계를 먼 과거로 거꾸로 돌려버렸다.

능력과 학벌을 내세워 엘리트 코스만 밟아서 출세한 검사들에 기반한 정권이 가장 열악한 조건 속의 건설노동자들을 무시하며 만만한 상대로 골라서 사회적 편견과 멸시를 부추기고 있는 상황도 건설노동자들이 분노와 모멸감을 참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더구나 실제로 조합비 횡령과 조직적 부정선거를 저질러서 한국노총에서마저 제명된 이들은 민주노총 건설노조와는 정반대의 입장에 있고 오히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지지 선언'을 했는데, 정부와 언론은 이런 사례를 가져와 민주노총 탄압에 이용하기만 하는 야비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오늘 노동절 집회에서 건설노조 장옥기 위원장은 "정부는 건설현장에서 한 해 수백 명이 사망해도 관심도 없고 오로지 건물이 올라가고 자본이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태도"라면서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구속의 사유가 되고 검찰이 전국의 노조 본부와 지부를 토벌대처럼 압수수색하는 사이 건설현장은 무법천지가 되고 있다"고 분노했다.

현재 전신화상에 심정지 상태를 넘나드는 건설노조 지역간부는 유서에서 건설노조의 동료들에게 "함께 해서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영원히 동지들 옆에 있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미 하반기 윤석열 정부에 맞서 총파업과 총력 투쟁을 추진하고 있던 민주노총과 건설노조는 이 비극을 만들어 낸 책임자들인 윤석열 대통령, 원희룡 국토부 장관, 경찰, 검찰을 더욱더 용서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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