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건폭’ 매도 발언에 건설 노동자들 분노

민노총 건설노조 4만여명 남대문서 정부 규탄

장시간 노동, 위험 작업 강요 관행부터 중단을

총파업 경고 ··· 이태원 유가족들도, 연대 발언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2.28. 연합뉴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2.28. 연합뉴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28일 윤석열 정부의 노조 강경 대응에 반발하며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건설 현장 조직폭력배라는 의미의 '건폭'으로 매도한 윤석열 정권에 대해 '검폭(검찰 조직폭력배)'이라고 맞받아치며 강력 규탄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 도심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강경한 정책을 규탄하는 대규모 결의대회를 열었다. 결의 대회에는 전국 각지에서 산별 노조 조합원이 건설노조 지지를 위해 모이면서 주최 측 추산 4만 3000명(경찰 추산 4만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30분 쯤 경복궁역, 종각, 경찰청 앞에서 각각 사전 결의대회를 열고, 도심을 향해 행진해 민주노총 결의대회 본집회가 열리는 숭례문 앞에 총집결했다.

건설노조 정민호 부위원장은 경복궁역 앞에서 열린 사전결의대회에서 "삶과 죽음의 중간에서 일하고, 새벽에 별을 보고 출근해서 저녁에 달을 보고 퇴근하는 건설 노동자들은 무사히 저녁에 가정의 품으로 돌아가길 기도한다"며 "윤석열 정권은 이런 노동자들을 '건폭'이라고 한다"고 큰 목소리로 지탄했다.

"월급받고 세금 떼는 것도 불법인가"

이들이 이날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연 것은 최근 윤석열 정부가 노조에 대해 '탄압' 수준의 강경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건설노조가 현장에서 노조원 채용을 강요하고 월례비를 강제로 받는다며 대대적으로 수사를 벌이는 한편, 면허 정지 카드까지 꺼내 엄포를 놓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건설노조는 정부가 건설 현장의 특수성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특히 건설 하도급 업체들이 타워크레인 등 건설기계 기사에게 수고비 명목으로 지급하는 월례비의 경우, 연장근무나 위험노동, 건설사의 공기 단축 요구 등과 관련이 깊다는 게 건설노조의 설명이다.

건설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은 높은 곳에서 일을 하는 특성상 용변 처리나 점심 식사 등을 모두 타워크레인에서 해결하고 8시간 이상 초과 근무하는 경우가 잦다.

또 이들은 오전 7시부터 건설 현장 작업이 곧바로 진행될 수 있도록 현장 노동자들보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 일찍 나와 자재나 거푸집을 나르는 등 사전 준비작업도 하고 있다.

아울러 노동자들은 업체 요구에 따라 콘크리트가 충분히 양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푸집을 인양하는 등 위험노동을 하거나, 업체들로부터 공기 단축을 위해 "우리 현장 일부터 빨리 처리해 달라"는 요구를 받기도 한다.

이 때문에 건설 현장에서는 제대로 된 근무 환경을 보장받지 못한 기사들이 연장노동, 위험노동 부담까지 떠안는 만큼, 업체에서 월례비라는 이름으로 비공식적인 수당을 보상해주는 것이 관행이 됐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2.28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2.28

법원은 최근 타워크레인 월례비를 "사실상 근로의 대가인 임금의 성격"으로 규정했다. 

광주고법 민사1-3부(재판장 박정훈) 지난 16일 전남 담양군 소재 철근콘크리트 업체가 타워크레인 기사 16명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월례비 지급은 수십 년간 지속된 관행으로, 사실상 근로의 대가인 임금 성격을 가지게 됐다. 공사 입찰 시 시방서에 월례비 등을 견적금액에 반영했고, 원청 및 기사들과 합의한 것으로 보이고 강제로 지급했다고 볼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일부 노조원들의 고액 월례비 요구 등 특수한 사례를 전체의 문제처럼 호도하면서 이를 '건폭'이라고까지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건설노조 측은 오히려 이 같은 관행을 부추긴 것은 건설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수 년 전부터 타워크레인 월례비 대신 정상적인 임금 형태로 지불하고 작업을 지시하라는 것이지만, 업계는 이에 답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 부위원장은 월례비에 대해 "건설 공기 단축을 위한 작업과 위험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받는 대가"라며 "월례비는 세금을 공제하고 받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들이 월급 받고 세금 떼는 것도 불법이냐"라고 말했다.

아울러 채용 문제도 입장이 다르다. 건설업 현장은 업체 편의대로 공정에 필요할 때만 단기 일용직으로 고용하고 편리하게 해고를 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이른바 '오야지'라고 불리는 소개업자 인맥, 유료 직업소개소를 통해서만 일자리를 구한다.

이 같은 불안정한 고용은 노동자가 노임 갈취나 임금 체불 등이 있을 경우 구제받기 어려운 형태이기 때문에 건설사가 직접 계약 형식으로 고용해달라는 게 노조의 요구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무조건 '채용 강요'라며 불법행위라고 하고 있다. 건설노조는 정부가 다단계 하도급 고용 구조를 원하는 건설사의 목소리만 일방적으로 대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건설노조 탄압 규탄 결의대회에서 발언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2.28. 연합뉴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건설노조 탄압 규탄 결의대회에서 발언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2.28. 연합뉴스

"건설자본 대변하는 윤석열 정권 심판하자"

노동자들은 이날 숭례문 앞에서 결의대회를 갖고 △주52시간 초과근무 거부 △위험작업 요구 금지 및 위반 사업장 고발조치 △월례비 대가로 장시간 노동자 위험작업 강요하는 관행 중단 등을 정부 및 건설사에 요구하며, 윤석열 정부의 노조 탄압을 규탄했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윤석열 정권은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있다. 1% 부자 재벌에게는 세금을 깎아주고 영업 사원을 자처한 대통령이 노동자 권리는 박탈하고 서민 생계는 파탄내고 있다"며 "일주일에 69시간 노예 노동을 하라고 강요한다"고 외쳤다.

이어 "노동자 투쟁을 종북으로 매도하고 노조 회계장부를 공개하라고 협박하며 부패 집단으로 몰아가고, 급기야는 현장 안전과 투명한 고용질서를 위해 노력한 건설노조를 폭력 집단으로 몰아 뿌리 뽑겠다고 한다"면서 "윤석열 정권이 하는 것은 법치가 아니라 폭치"라고 규탄했다.

그는 "분양가 상승 원인은 건설노조가 아니라 비자금을 조성해서 수천 억씩 해먹는 건설사 때문이고, 여기저기서 떼먹는 중간 착취 때문"이라며 "때려 잡고 뿌리 뽑아야 할 것은 헌법에 보장된 노조가 아니라 불법을 조장하는 건설 자본과 집값을 밀어올리는 투기 자본"이라고 소리쳤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가 관심갖고 들여다봐야 할 것은 노조의 회계장부가 아니라 국민들의 고통"이라면서 "민주노총은 이미 7월 총파업 투쟁을 결의했고, 정권의 전면적인 탄압이 자행되면 언제라도 즉각적인 총파업 투쟁에 돌입할 것"고 경고했다.

건설노조 장옥기 위원장은 자신들을 '건폭'이라고 한 윤석열 정권에 대해 "윤석열 정권이야말로 국가권력을 사적으로 이용하고 온 나라를 검찰 독재로 만드는 검찰 폭력, '검폭'"이라며 "건설노조는 건설 노동자들에게 최소한 인간답게 살기 위한 마지막 보루"라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우리는 과거에 이름없는 '노가다' 일꾼으로 일하면서 안전은 무시되고 불법 다단계 하도급으로 저임금, 장시간 노동 속에서 일했다. 이제 우리는 그런 현장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에 건설노조를 사수하고 지켜낼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28일 건설노조 탄압 규탄 결의대회 뒤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들이 행진을 하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을 본뜬 인형을 실은 트럭이 행렬 가장 앞에서 이동하고 있는 모습. 2023.2.28. 김성진 기자
28일 건설노조 탄압 규탄 결의대회 뒤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들이 행진을 하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을 본뜬 인형을 실은 트럭이 행렬 가장 앞에서 이동하고 있는 모습. 2023.2.28. 김성진 기자

이날 결의대회를 마친 노동자들은 오후 4시 10분쯤 숭례문에서 출발해 서울역과 남영역을 거쳐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 전쟁기념관 앞까지 행진했다. 이들은 행진하면서 "건설자본 대변하는 윤석열 정권 심판하자" "건설노조 사수하자 공안탄압 박살내자" "8시간 노동 지켜내자" "안전한 일터 지켜내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경찰 100개 기동대(6000명 규모)가 도심에 배치됐지만 행진 중에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한편 이날 민주노총 결의대회에는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유가협) 이종철 대표가 참여해 연대발언을 했다. 이 대표는 "저는 대한민국 평범한 가장"이라며 "여기 계신 건설노조 조합원 여러분 또한 저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누가 우리를 이 거리로 내쫓았을까요"라고 자문하며 "이 무능한 정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정부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과 조직 필요하다"며 민주노총과 건설노조에 연대를 호소했다.

이날 민주노총과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지지 서명을 하고. 이태원 참사 마지막 생존자의 치료비를 위한 모금 등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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