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전원위 이후 민주당의 딜레마와 탈출구 ①
지난 4월 13일 국회 전원위원회가 아무런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한 채 나흘간 말잔치의 막을 내렸다. 4월 10일부터 나흘간 오후 4시간씩 국회의원 총100명이 국회방송의 생중계 아래 7분 발언을 이어갔다. 크게 볼 때 선거제 개편목표, 지역구의원 선출방식, 비례의원 선출방식, 의원정수 확대 여부 등 4가지 주제를 다뤘다. 처음부터 상호토론이 배제됐기 때문에 공허한 말의 향연으로 끝날 가능성이 예약됐었다. 스타 탄생이 기대됐는데 누구나가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던 이탄희 의원이 그 주인공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탄희 의원 외에도 내용적으로는 김종민 의원이, 전원위 평가로는 용혜인 의원이, 근본 대안 제시로는 강민정 의원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전원위에서 돋보인 국회의원 4인
이탄희 의원은 소선거구제 양당정치의 폐해를 설득력 있게 개진하며 연설을 시작했다. 지금과 같은 양당제정치 아래서는 상대방의 실수만 잘 공격해도 집권다수당이 되기 때문에 거대양당이 상대방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쉬운 정치에만 매달리고 꼭 필요한 시대 과업 해결은 외면한다고 진단했다. 거대양당의 적대적 공생정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선거제 개편의 목적을 정치 다양성 증진에 두고 선거구 크기를 키워야하며 큰 선거구에서 큰 정치인이 나온다고 호소했다. 나아가서 의원 보수를 절반으로 깎자고 제안하며 이 정도의 특권 내려놓기를 해야 선거제 개편을 할 수 있다고 마무리했다.
20대 국회에서 선거법 개정 논의를 주도했던 김종민 의원은 역시 전문가다웠다. 그는 1987년 민주화 이래로 경제규모와 국민소득이 계속 늘어나서 선진국이 되었지만 소득격차배율, 수도권집중률, 자살률, 출생률 등 민생지표, 즉, 삶의 질 지표는 일제히 악화했으며 그것이 잘못된 정치의 결과라는 진단으로 시작했다. 이어서 OECD국가 중에서 대선거구 다당제국가들이 삶의 질 지표에서 모두 상위권인 반면 미국, 영국, 프랑스, 호주 등 소선거구제 양당제국가들이 하위권을 깔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우리나라도 다당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하며 대도시만이라도 대선거구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마지막 날에 등판한 용혜인 의원은 전원위 평가로 시작했다. 전원위가 아무런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하고 말잔치로 끝났으며, 이제부터 합의안을 마련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해서도 안 된다고 소리를 높였다. 이어서 전원위에서 의원정수 축소와 비례대표의석 폐지를 주장한 국힘당 동료의원들에게 뻔뻔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질책했다. 용 의원은 이미 20대국회 때 대표성과 비례성, 다원성을 높이기 위해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만들어냈는데 그걸 살릴 생각 없이 어째서 똑같은 얘기를 되풀이하느냐고 물으며 지금의 정당득표율 3% 요건이 너무 엄격하니 1%로 낮추자고 제안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발언은 강민정 의원에게서 나왔다. 그는 선거제 개편에 이해당사자성을 갖는 현역 국회의원들이 과연 당리당략과 재선 욕망을 뒤로 하고 국민의 편에서 선거제 개편 논의에 임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는 이해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선거제 개편안을 추첨시민의회에 의뢰하자고 제안했다. 국회가 시민의회의 권고안을 존중해서 선거법을 개정하되 ‘2028년’ 총선부터 적용하자는 것이었다. 2024년 총선은 위성정당 금지조항을 입법하고 현행법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치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의견은 강 의원이 유일했다. 국회의원 100명이 발언했는데도 이런 의견이 안 나왔다면 아주 이상할 뻔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두 가지 이유로 강 의원과 같은 입장이다. 첫째, 국회의원이 선거제 개편 사안에서 국민을 대리할 경우 본인과 소속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른 이해충돌에서 벗어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국회의원이 자기 세비나 자기 지역구, 자기 선거방식을 정하는 건 공정과 상식에 어긋난다. 그건 엄연히 주권자의 몫이라야 한다. 대리인인 국회의원의 선출방식과 보수, 보좌진 규모와 특혜 등은 국회의원이 정할 게 아니라 주권자가 정해줘야 옳다. 추첨으로 선발된 미니주권자집단으로 시민의회를 운영해서 일반시민의 집단지성과 사회적 합의로 국회의원의 보수 등을 심의, 권고하게 하면 민주적 정당성에서 흠잡을 데가 없을 것이다.
둘째, 이번 국회 전원위가 무위로 끝난 데서 드러나듯이, 총선이 1년도 안 남은 상황에서는 거대양당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선거제 개편이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으로서는 여야 간에 최소합의가 가능한 선거제는 이른바 도농복합안 뿐이다. 그러나 도시지역 중선거구제를 핵심으로 하는 이 안은 거대양당의 나눠먹기 안이라서 양당제를 강화할 뿐 다당제 촉진효과가 없기 때문에 결코 찬성할 수 없는 안이다. 국회의장이 이 안을 선호하고 있지만 내년 총선이 다가올수록 유불리 예측가능성이 높아져 여야 합의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고 희망이다. 선거제 개편은 시민의회가 주도해야 맞지만 거대양당이 주도할 경우에는 결과 예측 가능성이 없는 차차기 총선부터 적용할 방침을 세우고 진행해야만 여야 합의를 기대할 수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의 전원위 평가, 너무나 주관적이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전원위가 종료된 다음날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전원위에서 “여야를 초월해서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이고, 지역소멸에 대응하며, 지역주의를 완화하는 선거제 개편을 해내야한다는 공감대를 이뤘다”고 평가하고 “특히 진영을 초월해 중대선거구제, 권역별비례대표제 등에 대해 공감대를 확인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공감대에 힘입어 선거제 개편은 “빠르면 5월말, 늦어도 상반기 안에 끝내는 게 좋겠다”는 희망 일정도 제시했다. 그가 보기에 “이제 토론의 시간은 지나고 협상의 시간”이 남았을 뿐이다.
김진표 의장이 생각하는 선거제 개편의 목적은 “승자독식, 지역주의, 진영정치를 청산”하고 “협치의 제도화”를 통해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일대 전환하는 데 있다. 그는 개헌 의지도 숨기지 않았다. 이번에는 “국민 다수가 동의하는 최소한의 합의 내용만”으로 개헌을 추진하자는 전략을 내놨다. 이때 대통령 4년 중임제와 대통령추천, 국회선출 국무총리제는 필수이고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도 여야 합의가 가능하지 않겠느냐 낙관했다. 국민투표는 “내년 총선 때 함께 하는 것도 방법이니 그때를 목표로 여야 어느 쪽에도 선거에서 유불리가 나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합의안을 갖고 개헌을 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김진표 의장이 지적한 공감대가 실제로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공감대가 진짜로 확인되었다면 이른바 도농복합안이 여야 간에 합의될 것이다. 도시지역에서는 중선거구를 해서 소선거구제를 극복하고 대표성과 비례성을 높이고, 농촌지역에서는 소선거구를 그대로 유지해서 지역 소멸 위기에 대처하고, 비례의석은 인구비례에 따라 6개 권역으로 나눈 후 권역별 정당득표율에 비례해서 배정함으로서 영호남 지역주의를 완화하자는 것이 국회의장이 선호하는 것으로 소문난 도농복합안이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국회의장이 확인하였다는 여야의 공감대는 그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국회의원 특권 해소책부터 내놓아야 성공할 수 있다
역대 국회의장 중에서 김진표 의장이 선거제 개편과 개헌에 제일 적극적이다. 선거제 개편을 위해 사상 두 번째로 전원위를 소집해서 국회의원 100인의 7분 발언을 생중계한 김 의장의 방식은 시민의회 소집보다는 못하지만 국회로서는 가장 공적인 방식을 선보인 것으로 긍정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김 의장은 나이브하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국회의원 특권을 그대로 둔 채 선거제 개편이나 개헌을 주도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가 의원 특권 해소에 성의와 진심을 보이라는 국민과 시대의 요구에 눈감는 이상 도농복합안 ‘야합’은 몰라도 정치 발전을 위한 여야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필요한 도덕적 권위와 민심의 지지를 확보할 길이 없을 것이다. 반면에 국회의원의 보수와 특혜를 추첨시민의회에 맡겨서 일괄 검토, 조정하겠다고 선언해보라.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입법하겠다고 선언해보라. 국민의 박수와 환호가 쏟아질 것이다. 안심하시라. 시민의회의 집단지성은 국회의원 세비를 무턱대고 크게 깎지 않는다. 당연히 현역 의원들의 원성도 크지 않을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위성정당을 해선 안 된다는 여야 합의나 입법을 이끌어내고 2024년 차기 총선은 현행 연동형비례대표제로 치르되 곧바로 당리당략이나 재선 욕망에서 자유로운 추첨시민의회를 구성해서 2028년 총선부터 적용될 더 나은 선거제가 무엇인지 숙의, 권고하게 하겠다고 선언해보라. 또한 이번 기회에 소선거구제로 의원정수의 84.3%를 뽑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물론이고 소선거구제로 의원정수의 90%를 뽑는 광역의회 선거제도를 함께 손보겠다고 선언해보라. 이러면 선거제 개편과 개헌의 진정성과 용기를 인정받고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들 사이에서도 국회의장의 지도력이 살아나서 실질적 추진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게다.
다시 강조하지만 김진표 국회의장이 진실로 선거제 개편과 개헌에 성공해서 한국정치 대전환의 초석을 놓은 위대한 국회의장으로 기억되고 싶다면 전원위 소집이나 도농복합안 꼼수로는 안 된다. 담대하게 의원 특권 해소와 시민의회 소집, 비례대표제 강화에 앞장설 각오를 밝히고 국민의 열화 같은 성원과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만 여야 지도부를 설득해서 필요한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고 그래야만 개헌 동력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 다른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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