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선거제개편 딜레마와 탈출구 ③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윗글 ②에서 알아보았듯이 국회전원위에서 민주당과 국힘당 간에는 선거제개편과 관련해서 아무런 공감대도 형성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민주당과 국힘당은 정개특위에서 몇 가지 개편방안을 심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선 국회의장이 도농복합안(도시지역 중선거구제 + 농촌지역 소선거구제 + 병립형 권역별비례대표제)을 정개특위에 넘길 것으로 점쳐진다. 민주당과 국힘당은 상당기간 당론을 정하지 않은 채 도농복합안 등 몇 가지 개편방안을 놓고 정개특위에서 입씨름을 벌이며 시간을 끌 게 틀림없다. 과거의 전례를 보더라도 선거법개정 작업이 일찍 끝난 적은 없었다. 총선 두 달 전에 간신히 끝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1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첫번째 토론자로 나와 발언하고 있다. 전원위 개최는 지난 2003년 '이라크 전쟁 파견 연장 동의안'에 대한 토론 이후 20년 만이다. 전원위 토론에 참여하는 의원은 총 100명으로, 의석 비율에 따라 각 정당에 배분됐다. 더불어민주당 54명, 국민의힘 38명, 비교섭단체 의원 8명이다. 2023.4.10 연합뉴스
1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첫번째 토론자로 나와 발언하고 있다. 전원위 개최는 지난 2003년 '이라크 전쟁 파견 연장 동의안'에 대한 토론 이후 20년 만이다. 전원위 토론에 참여하는 의원은 총 100명으로, 의석 비율에 따라 각 정당에 배분됐다. 더불어민주당 54명, 국민의힘 38명, 비교섭단체 의원 8명이다. 2023.4.10 연합뉴스

민주당과 국힘당의 선거제개편 합의, 무망하다

국힘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중선거구 선호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도농복합안에 대해서는 열린 자세를 취하겠지만 비례성을 강화하는 모든 선거제개편 방안에는 반대 의사를 견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국힘당이 바라는 것은 2020년 선거법개정 이전의 85.3% 소선거구제 + 15.7% 병립형비례대표제로 돌아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선거구제 아래서 물경 70년간 제1당 지위를 누린 보수정당으로서 소선거구제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내심 거대양당에게 유리한 도농복합안이 싫지 않지만 지금까지 뱉은 정치개혁=다당제 입장이 있어서 양당제 강화효과를 낼 도농복합안에 합의해주기가 쉽지 않다. 만일 그리한다면 정치개혁을 열망하는 국민들에게 엄청난 실망과 배신감을 안기는 자해수가 될 것이다.

20대 국회 후반기 내내 선거법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당시의 선거법개정을 물거품으로 돌리자는 국힘당의 요구를 들어주기도 어렵다. 민주당의 자기부정일 뿐 아니라 국민들의 공분과 질책이 쏟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민주당이 도농복합안과 과거회귀안에 반대의사를 명확하게 밝히는 순간 선거제개편에 관한 새로운 여야합의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을까 판단된다. 그렇다고 민주당은 2020년 개정선거법을 되살리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현행 연동형비례대표제는 민주당이 다음 총선에서 과반수의석을 확보하는 데 불리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국힘당과 현행 연동형비례대표제보다 비례성과 다양성에서 못한 나쁜 타협안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다.

향후 민주당과 국힘당이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검토할 수 있는 대안은 국회의장의 도시중선거구 + 농촌소선거구 도농복합안 외에도 두 개가 더 있다. 하나는 박주민 의원의 100% 대선거구 비례대표제 안의 단계적 타협안으로 제출된 김종민 의원의 서울특별시와 6개 광역시 대선거구 비례대표제 안이다. 다른 하나는 현행법의 전국 단위 연동형비례대표제에 대한 타협안으로 제안된 권역별 연동형비례대표제다. 그 외에 당연히 현행법의 전국 단위 연동형비례대표제가 살아 있다. 모든 합의가 불발할 때 현행법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민주당과 국힘당의 딜레마다.

도농복합안, 다당제 정치개혁에 역행하는 양당제 강화안

도농복합안은 농촌지역은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되 도시지역은 2,3인 중선거구제로 바꾸고 비례의석은 권역별로 쪼개서 정당득표율에 따라 병립형으로 나누자는 안이다. 이 안에 따르면 거대양당 후보들이 나란히 당선돼서 2등이나 3등 후보의 지지율까지 대표되기 때문에 사표율이 현저히 줄어들고 거대양당의 나눠먹기로 거대양당의 의석격차가 줄어들기 때문에 불비례성도 그만큼 완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제3당 원내진입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다. 2석이건 3석이건 중소선구에는 거대양당 소속의 2,3인 현역의원과 2위 낙선자 2,3인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이다. 제3당 후보들이 이들보다 지명도와 경쟁력이 있기는 쉽지 않다. 중선거구제로 바꿔도 소선거구제 시절과 다를 바 없이 당선되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다. 게다가 6개 권역별로 비례의석을 쪼갤 경우 대체로 10~15%의 정당득표율을 기록해야 병립형으로 1명의 비례의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비례의석도 기대난망이다. 이렇게 볼 때 제3당의 원내진입은 십중팔구 지금보다 더 봉쇄된다. 한마디로 도시중선거구 도농복합안은 다당제 전환효과가 아니라 양당제 강화효과를 낸다. 민주당이 어떤 경우에도 국힘당과 합의해서는 안 되는 안이다.

대선거구비례대표제를 대도시부터?

이번에 제출된 비례성 강화 개편안은 두 개가 있다. 박주민 의원이 발의한, 전국의 253개 소선거구 모두를 30여 개의 6~12인 대선거구로 바꾸자는 100% 대선거구(비례대표제)안과 김종민 의원이 제안한, 특별시와 광역시의 113개 소선거구부터 6~12인 대선거구로 바꾸자는 45% 대선거구(비례대표제)안이 그것이다. 거대양당이 박주민 의원의 급진적인 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에 김종민 의원이 서울시와 6개 광역시만이라도 우선 대선거구제를 해보자는 타협안을 내놓은 것이다. 여기서도 김종민 의원의 타협안을 다룬다.

김종민 의원은 소선거구제는 양당제를 낳고 대선거구제는 다당제를 낳는다는 경험적 인식 아래 지금의 소선거구제 중심을 대선거구제 중심으로 바꾸되 일단 특별시와 광역시에서만 해보자고 제안했다. 서울, 부산, 인천, 대구, 대전, 광주, 울산의 의석수를 다 합치면 113석(253석 지역구의 44.6%)이다. 이 정도만 대선거구로 해도 비례성과 대표성, 다양성을 상당 부분 구현할 수 있다며 단계적, 점진적 전환을 주창했다. 서울의 민주당 강세지역과 호남지역구의 의석수가 서울의 국힘당 강세지역과 영남지역구의 의석수와 비슷한 수준이니 거대양당에게 공정하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중소도시와 농촌지역의 소선거구 140개를 그대로 둔 채 특별시와 광역시만이라도 대선거구제를 해보자는 김종민 의원의 타협안은 ‘도시 중선거구와 농촌 소선거구 복합안’과 달리 ‘대도시 대선거구와 기타지역 소선거구 복합안’이다. 최소한 대도시 소선거구 113개를 6~12인을 뽑는 대선거구로 통합해서 비례대표제를 하자는 안이라서 소선거구 중독에서 벗어나는 데 좋을 뿐 아니라 다당제 촉진효과도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6인에서 12인을 뽑는 대선거구라지만 거대양당이 주도하는 입법과정을 거치면서 38개 안팎의 6,7인 대선거구로 낙착될 가능성이 99%다. 그래야 제3당 후보의 당선을 최대한 봉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김종민 의원의 대도시 대선거구제만 채택돼도 대표성과 비례성, 다양성이 상당히 강화될 수 있다.

 

15일 오전 서울 KBS 스튜디오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개최한 제1차 정책토론회에 앞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3.3.15 연합뉴스
15일 오전 서울 KBS 스튜디오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개최한 제1차 정책토론회에 앞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3.3.15 연합뉴스

유권자는 개방명부형을 선호한다

일반적인 비례대표제 아래서는 일단 정당득표율에 따라 정당별 의석수가 결정되면 그 수만큼 정당명부의 우선순위에 따라 당선자가 결정된다. 이 경우 일반유권자는 정당명부의 명단은 물론이고 당선순위 결정에 아무 역할을 못한다. 그래서 박주민 의원이 제안한 것이 개방명부제다. 유권자가 정당(명부)에 표를 줄 때 정당명부의 우선순위를 바꿀 수 있게 하자는 안이다. 유권자들은 비례대표 후보명단과 당선순위를 정당이 일방적으로 정한다는 이유로 비례대표제에 소외감과 반감을 갖기 쉽다. 유권자에게 당선순위 변경권한을 주는 방안은 일반유권자가 비례대표 당선인을 직접 정하는 효능감을 주기 위해 고안된 방안이다.

개방명부형 비례대표제 아래서는 유권자가 후보명단 자체를 바꾸진 못하지만 당선순위를 바꿀 수 있다. 유권자의 선택에 따라서는 정당이 후순위로 돌린 후보를 당선시킬 수도 있고 선순위에 박아놓은 후보를 낙선시킬 수도 있다. 캐나다 BC주의 시민의회 경험은 일반시민들이 대선거구 비례대표제를 실시할 경우 시민에게 최종조정권을 주는 개방형 정당명부 방식을 선호할 것이라고 말해준다. 유권자에게 우선순위 변경권을 부여해도 실제로 행사하는 유권자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절대다수의 유권자는 이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정당이 정한 우선순위를 존중한다.

후보개개인을 잘 알지 못하는 일반유권자가 정당명부상의 후보순위를 독자적으로 변경하는 건 매우 어렵고 성가신 일이다. 외국 사례를 보면 10% 안팎의 유권자만이 간신히 1,2순위를 변경하는 정도다. 그렇다고 유권자의 우선순위 변경권이 필요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것이 있으면 정당이 비례대표후보의 당선순위를 정할 때 아무래도 민심을 의식해서 신중하게 정할 수밖에 없다. 지도부 맘대로 정하면 유권자들이 투표를 통해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군소정당의 원내진입효과는 50% 연동형비례대표제만 못하다

제3당들의 후보들이 6,7인 대선거구에서 몇이나 붙을지는 미지수다. 6,7인 대선거구에도 6,7인의 현역의원과 6,7인의 2위 낙선자가 재선을 벼르고 있을 게 틀림없다. 한 선거구에서 6,7인을 뽑지만 유권자의 표는 정당투표 한 장밖에 없기 때문에 제3당에 표를 주려면 그 정당이나 후보가 매우 매력적이어야 한다. 제3당 돌풍이 불지 않는 이상 제3당이 6,7인 대선거구에서 1명을 당선시키는 데 필요한 정당득표율(6인 선거구인 경우 15.2%, 7인 선거구인 경우 12.3%)를 올리기는 매우 어렵다. 더욱이 김종민 의원의 대도시 대선거구제 안은 47석 비례의석을 인구수에 따라 6개 권역별로 나눈 다음 다시 정당득표율에 따라 정당별로 나누자는 것이어서 제3당이 한 석이라도 넘보려면 권역별로 다르겠지만 정당득표율이 최소 10%는 넘어야 한다. 거대양당에서 분당한 제3당들이라면 몰라도 진보계열 제3당들은 병립형비례의석도 차지할 전망이 없다는 얘기다.

2020년 개정선거법은 2024년 총선부터 47석 비례의석 전석을 정당득표율 대비 부족의석 보전용으로 내놓는다. 정당득표율 3%를 넘는 제3당들은 지역구에서 전패하거나 후보를 내지 않아도 비례의석만으로 최대 47석까지 차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정당득표율 3%를 넘을 제3당들이 몇이나 될지는 알 수 없다. 진보계열은 정의당과 진보당 외에 상상하기 어렵지만 거대양당에서 분당해서 나올 제3당들은 정당득표율 3%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 거대양당에서 분당한 제3당들에게 2020년 개정선거법이 유리할지, 아니면 대도시 대선거구제가 유리할지는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정당지지율이 15%를 넘는 제3당의 경우 6,7인 대선거구마다 1인씩 당선자를 낼 수 있기 때문에 대선거구제가 유리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제3당들에게는 현행법의 연동형비례대표제가 유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말해서 거대양당에서 분당하고 대선주자까지 갖춘 제3당이 아니라면 현행법의 50% 연동형비례대표제가 김종민 의원의 45% 대선거구비례대표제보다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대도시 대선거구제는 분당을 부채질하고 유권자에게 낯설다

오늘의 정치상황에서 거대양당이 걱정하는 것은 기존의 제3당들이 아니라 분당해서 생길 수 있는 제3당들이다. 거대양당의 관점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분당을 막아야 하는데, 대도시 대선거구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율을 웬만큼 올릴 수 있는 제3당 후보의 당선가능성을 높일 수 있어서 분당을 부채질할 위험성이 크다. 거대양당이 박주민 의원의 100% 대선거구 비례대표제 안은 물론이고 김종민 의원의 대도시 대선거구 비례대표제 안에도 눈길을 주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는 이유다. 게다가 일반시민들도 대선거구 비례대표제가 너무 낯설고 복잡할 뿐 아니라 후보 개인이 아니라 정당의 후보명부에 투표하기 때문에 효능감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반기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거대양당의 입장에서는 좋은 핑계거리까지 있는 셈이다.

권역별 연동형비례대표제? 거대양당에 이익, 군소정당에 불이익

마지막 선택지는 전국단위 정당득표율에 비례해서 정당별 의석수를 정하는 현행법의 연동형비례대표제를 권역별 정당득표율에 비례해서 정당별 의석수를 정하는 권역별 연동형비례대표제로 바꾸자는 안이다. 이 안은 전원위에 공식적으로 올라온 3개 안의 하나였다. 권역별 연동형은 거대양당이 각자의 취약지구인 영호남에서 의석을 확보하는 효과가 있을 뿐 군소정당의 원내진입에는 장벽효과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해하기 쉽다. 전국적으로 3%의 고른 지지율을 갖는 제3정당을 가정해보자. 전국단위 100% 연동형 아래서 이 정당은 9석을 보장받고 50% 연동형에서는 4.5석을 보장받는다. 이제 권역별 연동형에서 몇 석을 얻는지 보자. 6개 권역이 각각 국회의석 50석씩을 갖고 있다고 가정할 때 각 권역에서 3% 정당지지율은 100% 연동형에서는 1.5석씩을 주고 50% 연동형에서는 0.75석을 주는데 두 경우 모두 다른 정당들의 득표율에 따라서는 1석이 되거나 0석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권역별로 나뉠 때 군소정당이 손해를 보게 된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현행법의 전국단위 연동형비례대표제에 비해 이익은 거대양당에게 돌아가고 손해는 군소정당이 부담하는 방안이기 때문에 민주당과 국힘당이 이 안에 합의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물론 이래서는 안 된다. 다당제 촉진이라는 정치개혁의 명분을 민주당이 힘과 이익의 논리로 내팽개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3당들의 원내진입을 촉진해서 정치다양성을 증진할지 여부로 판단하건대 권역별 연동형은 전국단위 연동형보다 못하다. 요컨대, 권역별 연동형비례대표제는 다당제 정치개혁과 군소정당의 관점에서 조금도 동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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