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의 정치 새판] 추첨시민의회에서 의원 세비 정하게 하자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이탄희 의원의 감동폭탄 제안

‘의원세비부터 절반으로 줄이자.’ 선거제개편을 주제로 소집된 국회전원위회의 첫날, 이탄희 의원은 동료의원들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그래야만 선거제 개편을 논의할 자격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감동적인 고해이자 진정성 있는 제안이었다. 국회의원이 국민의 신뢰를 획득하는 데 그만큼 효과적인 조치는 없을 것이다. 국회의원의 특권포기의지와 민생개혁의지를 절반 세비만큼 극적으로 드러내는 상징행위는 더 없을 것이다. 국민의 박수와 환호가 터질 것이고 국회의원에 대한 신뢰가 높아질 것이다. 국회의원 연봉을 지금의 1억5000만 원에서 7500만 원으로 줄이자는 이탄희 의원의 감동폭탄 제안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나는 설령 여야 지도자들과 현역의원들이 이탄희 의원의 제안을 과감하게 수용해서 세비절반 감축 및 즉각 시행을 의결해도 우리나라의 깨어 있는 국민들이 그 충정만 고맙게 받고 절반 감축안을 수용하진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일반국민들도 국회의원 권한과 책임의 중대성을 모르지 않고 국회의원을 부패 유혹에서 지켜주고 싶다. 국회의원의 독립성과 품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적정수준의 보수지급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나는 국민이 직접 뽑는 선출직의 적정보수와 혜택, 향후 조정기준과 조정절차는 미니시민들로 시민의회를 만들어서 일반시민의 집단지성과 사회적 합의로 결정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모르긴 해도 그때 4인 가구 중위소득의 2배를 넘지 않는 선으로 결정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2023년 현재 4인 가구 중위소득은 월 540만 원, 연 6480만 원이고 2배는 1억 2960만원이다. 2023년 현재 국회의원 세비는 1억 5426만원이다. 이것을 중위소득의 2배로 줄인다면 지금 받는 세비의 84%가 된다. 이렇게만 돼도 16%를 줄이는 셈이다. 나는 여기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나를 더 보탠다면 국회의원 세비 중 비과세대상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시민의회는 그밖에도 향후 조정 작업을 맡길 독립전문위원회 설립을 권고할 가능성이 높다. 촛불시민들이 오랫동안 꿈꿔온 제도개혁의 하나다.

 

13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이 양곡관리법 재의안에 대해 무기명으로 투표하고 있다. 2023.4.13 연합뉴스
13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이 양곡관리법 재의안에 대해 무기명으로 투표하고 있다. 2023.4.13 연합뉴스

4인 가구 중위소득의 2배가 적정할 듯

이탄희 의원이 밝혔듯이 우리 국회의원의 세비는 세계최고 수준이다. 절대금액으로 봐도, 1인당 GDP 배율로 봐도, 구매력 기준으로 봐도 다 톱10에 든다. 우리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 국회의원들이 셀프입법을 통해 급여수준을 꾸준히 슬금슬금 올려온 결과다. 소모적인 입씨름만 하고 시대과업은 손 놓고 있으면서도 봉급은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얘기다. 우리 국회의원은 그밖에도 헌법과 법률, 국회규칙과 정당관행으로 보장받는 각종 특권과 특혜가 무지 많다. 국회의원들을 하려는 정치지망생이 무지 많은 이유이자 국회의원만 보면 짜증이 난다고 토로하는 국민이 무지 많은 이유다. 국민의 원성과 요구가 하늘에 닿지만 지금까지도 국회의원의 어떤 특권과 특혜를 어떤 수준까지 내려놓겠다고 구체적으로 약속하거나 실천한 정치지도자는 지금까지 없었다. 국회의원 특권 해소는 거대양당 지도자나 국회의원들의 양식과 자율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다.

국민 모르게 셀프입법과 정치관행으로 쌓아올린 국회의원 특권의 성채와 폐단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입만 열면 국민대표기관이라고 큰 소리 치는 국회가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공공기관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실은 의원세비와 정치후원금, 선거구와 투표방식 등 국회의원의 개인적 이해관계가 걸린 입법사안들을 국회의원들이 직접 결정하는 셀프입법권이 국회불신과 정치혐오를 불러오는 가장 잘못된 특권이자 가장 먼저 없애야 할 특권이라는 인식이 절실히 요구된다.

셀프입법권, 가장 잘못된 특권

이미 선진국 중에는 본인급여에 대한 셀프입법의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고 대안을 마련한 나라가 드물지 않다. 예를 들어, 독일은 2014년부터 연방의원 세비를 독일의 공사부문을 망라한 월평균임금에 연동시켰다. 결과적으로 독일연방의원들은 2021년에 처음으로 0.7% 감봉을 경험했다. 코로나 영향으로 2020년에 평균임금이 0.7% 줄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2009년 우리나라의 특활비소동과 유사한 의회경비스캔들을 겪고 나서 바로 의회표준법을 제정하고 독립의회표준공사(Independent Parliamentary Standards Authority)를 출범시켜 영국의원의 보좌진 인건비와 사무실유지비 등 직무수행비용과 봉급, 연금혜택을 규율한다. 나아가서 의원 보수를 2015년부터 ‘공공부문’의 평균임금에 연동시킨다. 영국과 독일은 객관적인 지수에 연동하는 방안으로 의원세비 증감을 객관화함으로써 셀프입법 재량에 제동을 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선출직보수책정문제에 고유한 이해충돌요소를 인지하고 대응하는 일에서 제일 빠른 나라는 미국연방과 50개 주(state)다. 연방의회는 이미 1789년에 이 문제를 인지하고 수정헌법안을 발의했으나 여러 사정이 겹쳐서 203년이 지나서야 비준된 수정헌법 제27조를 통해 의원급여 셀프입법권을 제한했다. 상원의원이나 하원의원의 보수를 변경하는 어떤 법도 차기 하원선거까지는 효력이 없다고 수정헌법으로 못 박은 것이다. 입법당사자인 현역의원에게 보수변경입법을 적용해선 안 된다는 뜻이자 지나친 보수‘증액’을 주도한 의원들을 차기선거에서 떨어뜨리라는 뜻이다.

이 수정안은 1992년에야 비준요건을 갖춰서 발효했으나, 역사적으로는 1789년에 수정헌법인 제1조~제10조와 동시에 발의됐던 최초 수정헌법안의 하나였다. 수정헌법 제27조의 역사는 필라델피아 헌법제정회의에 참석했던 미국헌법의 아버지들이 의원들의 급여 셀프입법의 문제점을 깊이 깨닫고 곧바로 수정헌법안을 제출해서 바로잡으려 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미국헌법은 처음부터 의회의 대통령보수 책정권한에 대해서 동일한 제약을 붙였다. 대통령보수는 예산권을 가진 의회가 정하는 게 당연하지만 “대통령의 보수는 임기 중에 증액하거나 감액할 수 없다”는 규정이 그것이다. 의회는 임기 중 감액으로 현직대통령의 임무수행역량을 떨어뜨려도 안 되지만 임기 중 증액으로 현직 대통령의 환심을 사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해밀턴은 ‘연방주의자 논고’(Federalist Papers) 제73호 논설에서 그 이유를 “사람에 대한 지원 권한은 사람의 의지에 대한 권한”이기 때문이라고 한마디 문장에 응축했다.

미국 연방의원 세비는 2009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대로다. 미국의회가 2010년 이래로 매년 생계비 인상률에 따른 세비 자동인상안을 부결시켜왔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2022년 말 뉴욕 주 의회는 상하원의원 세비를 연11만 달러에서 연14만 2000달러로 무려 29%나 단번에 인상하는 셀프법안을 통과시켜서 공분을 샀다. 뉴욕주지사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민주당 의원들이 주도한 예산법안이라 민주당 주지사가 그대로 공포하고 말았다. 다음 선거가 2년 후인 24년 11월에 있기 때문에 유권자의 망각을 기대하고 그렇게 올렸겠지만 과연 그럴지 지켜볼 일이다. 뉴욕 주 헌법도 급여 셀프입법에 고유한 이해충돌 요소를 의식하고 통제장치를 마련했지만 수정헌법 제27조와 달리 ‘당해 회기’에만 효력이 없다고 규정했기 때문에 억지력이 없다.

미국, 선출직 보수는 독립위원회에서 결정하거나 권고

펜실베이니아 주의원 보수도 2023년에 7.8%나 인상됐는데 이는 의원 보수가 소비자물가지수에 연동된 결과라서 뉴욕 주와는 다르다. 2020년부터 코로나로 워낙 많은 돈이 풀려 2022년엔 인플레가 심했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세비인상폭이 컸다. 이미 뉴욕 주와 펜실베이니아 주의 사례를 통해 드러난 것처럼 미국의 50개주는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상하원의원의 본인급여 셀프입법을 규제한다. 가장 강력한 사례는 이미 1990년에 국민개헌발의권을 행사해서 독립시민보수위원회를 설립하고 주지사와 주의원 등 모든 주선출직의 보수와 복지혜택을 결정해온 캘리포니아 주 사례와 독립위원회의 권고를 국민투표에 붙여 결정하는 애리조나 주 사례다. 캘리포니아 주 의회와 애리조나 주 의회는 의원세비 결정권한이 전혀 없다.

미국의 21개 주는 의원보수를 독립위원회에서 결정하든가 권고하는 방식으로 의원의 셀프입법을 제약한다. 위원회의 권한은 주마다 조금씩 다르다.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위원회 권한이 아주 강해서 위원회가 결정하면 그것으로 확정된다. 의회의 셀프입법을 원천봉쇄했다. 일반적으로는 위원회 결정이 권고적 효력만 갖기 때문에 의회의 승인절차를 거쳐야 확정된다. 알라스카 주나 워싱턴 주 의회처럼 의회가 위원회 권고에 대해 표결 여부를 결정하되 표결하지 않기로 선택하면 위원회 권고안이 90일 후 법으로 성립하는 입법례도 있다. 아리조나 주처럼 위원회의 권고안을 반드시 국민투표에 붙여서 확정짓는 방안도 바람직하다.

10개 주는 의원세비를 특정직군 공무원 급여(예를 들어, 판사평균급여나 교사평균급여), 가구중위소득, 소비자물가지수, 가구생계비 등에 연동시켜 결정한다. 예를 들어, 매사추세츠 주나 알라버마 주는 의원보수를 가구‘중위소득’에 연동시키고 2년마다 조정하도록 헌법에 못 박았다. 펜실베이니아 주에서는 의원보수를 소비자물가지수(인플레율)에 따라 조정한다. 플로리다 주에서는 의원보수를 주공무원의 평균급여 인상율에 따라 조정한다. 끝으로 주 의원들이 본인보수 셀프입법권한을 갖지만 연방수정헌법 제27조처럼 보수인상혜택을 차기의원부터 적용함으로써 현역의원의 본인보수 인상유혹을 억제하는 주도 몇 있다.

직접민주주의에 의한 대의민주주의 통제 

가장 강력한 캘리포니아 주의 독립위원회 사례를 좀 더 알아보자. 1990년 6월에 국민발안 제112호가 국민투표를 통과하면서 설립됐다. 일반시민들이 국민발안권으로 헌법 개정에 성공해서 의회의 의원급여 셀프입법권한을 박탈했다는 점에서 직접민주주의에 의한 대의민주주의 통제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공식명칭은 캘리포니아‘시민’보수위원회(California Citizens Compensation Commission, CCCC)이다. 위원회는 6년 임기로 주지사가 임명하는 7인으로 구성된다. 캘리포니아 헌법에 따라 3인은 특정된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공공부문에서, 2인은 기업부문에서, 2인은 노동부문(노동조합)에서 나와야 한다. 다만 전직이건 현직이건 주의 선출직 기관이나 의원, 직원은 위원이 될 수 없다. 시민보수위원회는 캘리포니아 주의 주지사부터 주의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 선출직의 보수와 혜택을 결정할 권한을 갖는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도 1990년 이전까지는 주 의회가 그 일을 했다.

위원회는 매년 6월말까지 인상 여부 및 인상률을 정해야 한다. 위원회는 1990년 가을 5차례 회의를 해서 첫 번째 급여조정을 마친다. 주지사의 연봉을 8만 5000달러에서 12만 달러로 대폭 올렸다. 헌법에 정한 다른 선출직 기관장 중 주검찰총장과 주교육감은 주지사 연봉의 85%, 부지사, 국무장관, 감사원장은 75%로 정했다. 주의원의 연봉은 머지않아 주지사의 55~60% 수준으로 상향조정할지를 검토하는 조건으로 일단 주지사의 43.75%로 정했다. 상원의장과 하원의장은 일반의원보다 20% 더 높게, 상하원의 원내대표들은 10% 높게 정했다. 선출직들의 건강보험 기타 혜택은 적절한 것으로 판단하고 그대로 유지했다.

1991년에는 의회지도부에 대한 회의참석일당, 차량제공, 퇴직연금과 의료보험 등 다양한 혜택을 전반적으로 심사했다. 위원회가 개최한 공청회에서 일반시민의 요구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1994년에 위원회는 1990년에 약속한 바에 따라 주 의원들의 연봉수준을 다시 검토해서 주지사의 60%에 맞춰 올려줬다. 위원회는 매년 소비자물가지수, 생계비지수, 공무원급여인상률 등을 검토해서 인상률을 정하는데 경제상황이 안 좋을 때에는 인상을 몹시 꺼린다. 2009년 국민투표를 통과한 국민발안에 따라 재정적자가 지속되는 기간 중에는 연봉인상이 금지된다. 2009년 위원회는 무려 18% 감액을 결정하기도 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의 고통분담 차원이었다.

국회 셀프입법권한 제어할 다양한 장치 마련해야

이상에서 국회의원들의 본인급여 셀프입법에 내장된 이해충돌요소를 다른 나라들, 특히 미국연방의 50개 주(state)들이, 어떻게 제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이는 비단 의원세비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이미 선거구획정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독립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14인 재획정위원회를 구성하는데 그 중 8명은 일반유권자 중에서 몇 가지 요건을 갖춘 이들을 대상으로 시민배심원을 뽑는 절차에 준해서 추첨으로 뽑도록 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회의장 직속으로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구성, 운영된다. 다만 국회가 최종승인 권한을 갖기 때문에 위원회의 권고를 그대로 수용한 적은 없었다.

세비와 선거구 획정, 의원정수 등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다. 그밖에도 헌법을 포함한 정치관계법에서는 국회의원과 정당이 직간접적으로 당사자성을 갖는다. 국회의원의 셀프입법권한을 제어하는 다양하고 혁신적인 제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의회민주주의 발전과 국회신뢰 회복을 위해 몹시 중요한 이유다. 나는 추첨시민의회가 중요한 수단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세비, 우리 맘대로 에헤라디야’는 더 이상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국회의원의 셀프입법은 금지되어야 한다. 이 글은 어떤 대안이 있는지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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