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의 정치 새판] 정치권 외면하는 중대정책사안 논의 적격
여론조사 한계 뛰어넘는 안
21세기 혁신민주주의국가에서도 시민의회가 대의민주주의의 병폐와 한계를 모두 치유할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 선거의회를 대체하거나 더 큰 역할을 수행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다만 첫째, 정치권에서 논란만 무성할 뿐 교착상태에 빠진 중대한 정책사안; 둘째, 격렬한 윤리적 논쟁을 수반하는 민감한 정책사안; 셋째, 정치권이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해서 외면해온 중대한 정책사안; 넷째, 정치권이 당사자성을 갖는 정치관계법 등 이해충돌사안은 일차적으로 추첨으로 ‘미니 국민’을 구성한 후 숙의적 방식으로 '시민 눈높이 해법'을 권고하는 시민의회 방식으로 접근하되, 선거의회가 그 정책권고를 수용하고 불수용할 경우에는 국민투표에 붙이는 방식으로 푸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실세계에서는 정치권, 특히 국회가 위에서 언급한 유형의 중대정책사안들을 1차적으로 시민의회에 맡기는 대신 헌법재판소를 바라보거나 여론조사결과를 읊조리며 손 놓고 있기 일쑤다. 헌재는 숙의성과 집단지성에서 뛰어나지만 여론의 눈치를 살피면서 아주 느리게 움직일 뿐 아니라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은 법조엘리트기구라는 점에서 민주적 정당성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헌재는 구체적 사건성이 있어야만 활용할 수 있고 사후적으로만 접근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에 시민의회는 헌재와 달리 일반시민으로 구성된 국민의 축소판이라는 점에서 그 결정의 원초적인 민주적 정당성은 누구도 시비를 못 건다. 시민의회의 안건은 헌재와 달리 구체적 사건성을 요구받지 않으며 권리판단안건이 아니라 정책형성안건이라는 점에서도 다르다.
사람들이 낯설거나 지배적 통념이 없는 새로운 사안에 대해서는 여론조사 자체가 불가능한 반면 이미 지배적 통념이 형성된 사안에 대해서는 조사결과가 현상유지를 옹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더욱이 조사결과는 학습과 숙의를 거치지 않은 일반시민의 개인적 인식과 선호, 의견의 총합만을 알려줄 뿐이다. 시민의회는 여론조사의 한계에서 자유롭다. 집단학습과 숙의토론이 필수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새로운 주제나 주장을 소화하고 지배적 통념을 성찰할 역량이 생기며 고립된 개개인의 반응이 아니라 집단지성의 산물을 내놓는다. 시민의회의 정책권고는 표층적 국민의사가 아니라 집단지성으로 주조된 심층적 국민의사를 드러낸다.
진영논리 당리당략 개입 여지 없어
여론조사는 가상 시나리오에 의한 사고실험이나 찬반의견을 넘는 종합처방에 친하지 않지만 시민의회는 학습숙의과정에서 ‘다른 조건들’이 바뀔 경우까지를 상상하며 다양한 사고실험을 할 수 있고 그 결과까지를 감안하여 종합해법을 처방할 수 있다. 여론조사가 즉자적인 민중의사를 알아보기 위해 동원하는 강자의 무기라면 시민의회는 깨어 있는 민중의사를 강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민중의 무기다. 단순한 참고자료에 지나지 않는 여론조사결과와 달리 공식 시민의회의 정책권고안은 정부나 의회에 존중의무는 물론이고, 불수용할 경우 설명책임을 지운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시민의회는 선거의회(국회, 지방의회)와 달리 정당이나 선거를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심의과정에서 진영논리나 당리당략, 공식당론이나 선거공약, 특수이익이나 부패유혹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 강한 당파심이나 권력의지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비타협적 투쟁이나 적대적 공생보다 상호존중과 사회적합의를 지향하게 돼 있다. 벨기에 동부 독일어권의 오이펜 자치주는 시민의회의 의결정족수를 아예 80%이상 찬성으로 높게 법제화함으로써 시민의회의 최종권고안은 사회적 합의를 담아내야 한다는 취지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시민의회는 직접민주주의적인 국민투표와도 작용방식과 효과가 다르다. 국민투표는 모든 국민이 참여할 수 있고 그 결정에 구속력이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그러나 일반시민이 국민투표 대상 정책사안을 제대로 알고 투표하는 데 필요한 정보와 지식, 숙의 수준에 도달하기가 너무 어렵다. 시민의회에서처럼 공식적인 학습숙의과정이 제공되기 어렵기 때문에 어디서나 투표율이 매우 낮다. 단순찬반투표이기 때문에 복잡미묘한 문제는 국민투표에 친하지 않고 주로 원 포인트 사안에 대해 실시되는 한계가 있다. 투표결과에 구속력이 있기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찬반캠페인의 대립갈등과 사후후유증을 피하기 어렵다.
단순 찬반 국민투표보다 매력적
시민의회는 전문가모임이나 이해관계자모임, 공익활동가모임이 아니라 일반시민모임이다. 전문가나 이해관계자는 시민의회에서 발표와 질의응답 주체가 될 수 있을 뿐이고 정책안 권고주체는 시민의회의 일반시민들이다. 시민의회에는 다양한 삶의 경로를 경험한 평범한 시민들이 모여 있는 덕분에 전문가나 활동가와 달리 획일적인 집단사고의 위험성이 크지 않다. 시민의원은 전문가들과 달리 추상적인 관념이나 이론적 정합성에 별다른 가치를 두지 않는다. 시민의회는 활동가모임도 아니다. 시민의회는 삶의 현장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일반시민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활동가모임보다 덜 이념적이고 대의명분에 덜 집착하며 덜 전투적이다.
요컨대, 시민의회 방식은 첫째, 여론조사의 즉흥성이나 통념성에서 자유롭고; 둘째, 선거의회의 진영논리와 당리당략 및 선출의원의 재선욕망과 부패유혹에서 자유로우며; 셋째, 국민투표의 찬반적합성 요건과 찬반대립갈등에서 자유롭고; 넷째, 헌법재판소의 법조엘리트주의와 사건성에서 자유로우며; 다섯째, 전문가집단의 그룹사고와 이론편향에서 자유롭다. 여섯째, 시민의회 방식은 활동가집단의 이상주의나 운동논리에서도 자유롭다. 위의 모든 장점을 가진 시민의회는 집단지성으로 깨어난 미니국민의 뜻이 어디를 향하고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정부와 의회에 알려주고 그 존중과 수용을 촉구하는 민주적 제도형식이라는 점에서 민중을 위한, 민중에 의한, 민중의 무기라고 할 수 있다.
시민의회의 다양한 장점은 전체국민(주민)의 인구통계학적 축소판인 일반시민들이 상이한 관점과 입장을 대변하는 다양한 전문가집단의 지원 아래 함께 학습하고 토론한 끝에 최대한 사실과 증거에 입각하여 숙고된 의견을 내는 데서 나온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어록에 따르자면 시민의회의 정책권고안은 서생(전문가)의 문제의식이 상인(생업시민)의 현실감각과 결합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시민의회의 정책권고안은 일반시민들의 집단지성으로 도달 가능한, 깨어 있는 국민의사의 최대근사치라고 볼 수 있다. 시민의회의 정책권고보다 더 담대하고 더 진취적이고 더 감동적인 정치적 해법이 불가능하진 않겠으나 대표성과 숙의성이 충분히 확보된 시민의회의 정책권고가 차선의 정치적 해법이 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관찰했듯이 “각 개인이 따로따로 있으면 전문가보다 판단이 못하겠지만, 함께 모인 개인들의 집단은 전문가보다 낫거나 최소한 전문가만큼은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다.” 대표성과 숙의성을 보장받는 추첨시민의회는 이런 믿음 안에서 고안된 21세기 민주주의의 ‘오래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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