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수지 흑자국 무색하게 1400원 근접

정작 달러 인덱스는 아직도 100 밑돌아

관세협상 불확실성 등이 원화약세 원인

한국 금융·외환시장, 대외충격에 취약해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원화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내리고 달러화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100 미만으로 떨어졌는데도, 유독 원화만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에선 경상수지 흑자 누적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적 규모의 대미투자 및 관세협상 불확실성 등이 원화 약세를 야기하는 원인으로 지목한다. 한편 한국은행은 한국이 신흥국들과 비교해 금융 및 외환시장에서 대외충격에 더 취약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1400원에 근접한 원·달러 환율

2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 거래일보다 1.0원 내린 1392.6원을 기록했다. 환율은 전주보다 4.9원 오른 1398.5원으로 출발한 뒤 개장 직후 1399.0원까지 뛰었다. 영국 재정적자 우려에 달러가 강세를 나타낸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유로와 엔 등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전 거래일보다 0.21% 오른 97.677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환율은 이날 점차 상승 폭을 줄이다가 하락 전환해 1390원대 초반까지 내렸다. 무엇보다 외국인 국내 주식 순매수가 환율에 하락 압력으로 작용했다. 외국인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약 4778억 원을 순매수했다.

 

코스피가 0.7%가량 오른 3460대에서 장을 마치며 사상 최고치를 재차 경신한 2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한 딜러가 활짝 웃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23.41포인트(0.68%) 오른 3468.65에 장을 마쳤다. 2025.9.22. 연합뉴스
코스피가 0.7%가량 오른 3460대에서 장을 마치며 사상 최고치를 재차 경신한 2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한 딜러가 활짝 웃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23.41포인트(0.68%) 오른 3468.65에 장을 마쳤다. 2025.9.22. 연합뉴스

달러는 글로벌 약세를 지속 중

주목할 대목은 달러가 다른 통화 대비해선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달러 인덱스는 FOMC 회의 직전인 16일 96.65까지 떨어졌다가, 금리 인하 결정이 발표된 이후 이날까지 4거래일 연속 오르며 97.76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비록 달러 인덱스가 반등 중이긴 하나 기준선인 100을 밑돌고 있고, 올해 1월엔 110을 웃돌았던 사실을 고려해 시장은 글로벌 달러 약세 국면이라고 진단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은 역사적 고점에 해당하는 1400원선을 위협하는 수준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이주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8월 초 고점 대비 달러 인덱스와 달러·엔 환율은 각각 3.8%, 2.9% 하락하는 동안 원·달러 환율은 1.7% 하락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이 말은 다른 통화 대비 원화가 유독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뜻이다.

 

달러 [연합뉴스 자료사진]
달러 [연합뉴스 자료사진]

과도한 대미투자 및 관세협상 불확실성이 원화 약세의 주된 원인?

시장에선 유독 달러 대비 원화가 약세를 면치 못하는 요인으로 크게 두 가지를 꼽고 있다. 천문학적 해외 투자로 인한 달러의 해외 잔류와 한미 관세 협상 불확실성 증대다.

우선 개인과 기관의 해외 투자와 기업의 대미 직접 투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 실수요가 구조적으로 증가했다. 이주원 연구원은 "내국인의 미국 주식 보관금액이 누적되고 있으며, 기관의 환전수요도 상당하다"고 했다. 심지어 일부 기업들은 대규모 대미 투자에 대비해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환전하지 않고 쟁여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구조적 경상수지 흑자국이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이 무색하게 기업의 대미 직접 투자의 폭증 및 개인과 기관의 빅테크 등미국 기업 투자가 늘어나면서 경상수지 흑자로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로 유입되지 않고 미국 등에 머물거나 환전대기 중이라는 사실은 곤혹스럽다.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를 둘러싼 한미 협상 장기화도 원·달러 환율 상승의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위재현 NH선물 연구원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압박이 지속적으로 환율에 반영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자칫하면 대규모 달러 유출이 발생할 수 있는 마당이니 원화가 약세를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선적된 수출품 컨테이너들.  뉴욕차임스  이코노미스트 8월 20일치
선적된 수출품 컨테이너들.  뉴욕차임스  이코노미스트 8월 20일치

신흥국들 보다 취약한 금융 및 외환시장

원화가 휘청거리는 마당에 우리나라 금융·외환 시장이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대외 충격에 민감하고 취약한 편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한은이 22일 공개한 '금융·외환시장 심도를 고려한 정책대응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17개국(8개 선진국과 한국 포함 9개 변동환율제 신흥국)을 대상으로 글로벌 리스크 충격에 대한 국가별 반응 계수를 2004년부터 2024년까지 측정한 결과, 우리나라(2.11%p)가 신흥국 평균(1.68%p)보다 높았다.

글로벌 리스크 충격을 반영한 지표로는 글로벌 위험회피 지수가, 금융·외환시장의 반응 지표로는 유위험 금리평형(UIP)프리미엄이 사용됐다. UIP프리미엄은 국내 경제주체가 대외 차입 시 글로벌 투자자에게 지불해야 하는 추가 비용으로, 일반적으로 대외 충격을 받으면 자국 통화 가치가 떨어지고 시장금리는 올라 UIP프리미엄이 커진다.

 

글로벌 리스크 충격에 따른 국가별 UIP프리미엄 반응계수. 출처 : 한국은행. 연합뉴스 재인용
글로벌 리스크 충격에 따른 국가별 UIP프리미엄 반응계수. 출처 : 한국은행. 연합뉴스 재인용

이번 분석에서 우리나라는 글로벌 리스크 충격을 받을 때 다른 신흥국 평균보다 상대적으로 더 큰 폭으로 UIP가 확대됐다. 그만큼 한국 금융·외환시장의 심도(depth)가 얕다는 뜻이라고 한은은 설명한다. 보고서는 "금융·외환시장의 심도가 얕은 국가는 글로벌 리스크 충격 시 실물 부문도 더 크게 위축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대외 충격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려면 금융·외환시장의 심도 개선이 중요하다"며 "현재 추진되는 외환시장 구조개선 방안과 2026년 예정인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등이 심도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쯤되면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한 3500억 달러 투자를 받아들일 수 없는 까닭이 납득된다. 우리나라의 외환시장은 3500억 달러 투자가 아니더라도 그리 견고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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