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장관 "한미 협상 밀고 당기는 과정"
안보실장 "내용이 중요, 감당 가능해야"
정부, 협상 장기화 대비 지원 방안 마련
한미 관세 협상 후속 협의가 대미 투자 방식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난항을 겪으면서, 협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미국은 일본과 합의한 방식을 한국에도 강하게 압박하고, 한국은 국익을 훼손하는 협상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협상이 타결되는데까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김정관 산업부장관은 "한미 협상이 밀고 당기는 중"이라고 했고, 위성락 안보실장도 "관세협상은 내용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등 이재명 정부의 핵심 관계자들도 같은 견해를 보이고 있다. 한편 한미 관세 협상 타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돼, 정부에서는 수출기업에 대한 지원방안 마련을 적극 강구하고 있다.
일본방식 따르라는 미국 VS 그럴 순 없다는 한국
17일 통상 당국에 따르면 한미 통상 당국은 지난 7월 말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이후 현재까지 협상의 세부 이행사항을 확정하고 문서화하기 위한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한미 양국은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기로 한 25%의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3500억 달러(약 486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시행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협상안에 합의했다.
한미 통상 당국은 관세 협상 후속 조치를 위해 지난 8일 워싱턴 DC에서 실무협의를 갖고, 지난 12일에는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뉴욕을 찾아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면담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 장관 귀국 바로 다음 날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다시 워싱턴 DC로 떠나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회담하는 등 고위급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일본이 먼저 대미 투자 관련 양해각서(MOU)에 서명하며 일본차에 대한 품목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조치가 시행되자 국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5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고, 실무협의를 통해 대미 투자 결정 주도권을 미국이 행사하고, 투자 이익의 90%(투자금 회수 전에는 50%)를 미국에 넘기는 조건에 합의하는 내용의 MOU에 서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미 투자와 관련해 미국이 한국에도 일본과 같은 방식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3500억 달러를 주는 대신 차라리 25%의 관세를 물자'는 주장까지 분출되고 있다. 한국 정부도 국익 관점에서 미국의 지나친 요구는 받기 어렵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 15일 관세 협상 마무리가 늦어진다는 지적에 대해 "국익이 훼손되지 않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무리한 요구가 있다면 ‘국익의 보전’(목표로) 놓고 협상해 나가겠다는 원칙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미국이 요구하는 3500억 달러의 대부분을 현금으로 투자하면 외환시장에 어려움이 닥칠 수 있기 때문에 미국 측에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요청하는 등 협상 세부 사항을 하나하나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도 대체로 합의문에 성급하게 서명하기보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중하게 협상을 마무리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기까지 조금 더 오래 교착 상태가 지속될 것 같다. 길면 두세 달 정도 서로 협의하면서 접점을 찾아나갈 것 같다"며 "조선, 원자력, 반도체 등 한국이 강점이 있고 미국은 잘 못하는 분야의 협력 방안을 통해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자동차도 중요하지만, 국민 경제 전체에 미치는 모든 영향을 고려해 협상해야 한다"며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마스가 등 카드로 재량권을 확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외교가에서는 오는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를 계기로 한미 관세 협정 문서화 작업이 마무리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어쨌든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협상이 밀고 당기는 과정에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한미 관세 협상 후속 협의와 관련해 "협상이 교착 국면에 있다가 이어지고 있는 과정"이라며 "협상이 밀고 당기는 과정에 있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16일 세종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대미 협상 관련 질문에 "(협상장에서) 저도 책상도 치고 목소리도 올라가기도 하고 하는 그런 과정에 있다"며 "양측이 '윈-윈'하기 위해 이런 과정들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어떤 분들은 3500억 달러를 미국이 다 가져가는 게 아니냐고 하는데, 그런 구조는 아니다"라며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1500억 달러 사업처럼, 미국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고 강조했다.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기 위해 3500억 달러를 미국에 주느니 협상을 엎자'는 이야기도 나온다는 질문에 그는 "저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면서도 "관세 협상 내용을 봤을 때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느냐가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라며 협상 타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인도나 스위스, 중국을 보면 (협상이) 안되면 관세가 무지막지하게 올라가는 상황"이라며 협상 타결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장관은 러트닉 장관과 지금까지 스무번 미팅했다고 소개하고, "우리가 10년, 20년 전에 알던 미국이 아닌, 새롭게 태어난 미국을 상대하고 있다"라고도 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무역 합의를 압박하는 미국을 상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읽힌다.
한국보다 먼저 투자 양해각서(MOU)에 서명하며 무역협정을 마무리한 일본의 대미 협상에 대해서는 "언더스탠딩(MOU의 '양해')이라는 측면에서 최고의 국익 접점을 찾은 것으로 본다"며 "자동차 전체 품목관세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의 딜(합의)은 언제든 일본 측에 불리하거나 국내법에 안 맞으면 깰 수 있고, 5500억 달러가 한꺼번에 가는 것도 아니어서, (합의가) 일본 기업에도 도움이 되고, 관세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위성락 안보실장, “관세협상, 장기화 바람직 않지만…내용이 중요, 감당 가능해야”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17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한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간담회에서 한미 관세 협상과 관련해 "우리의 국익을 적절한 범위 내에서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며 "당장은 진전이 없지만 많은 논의가 오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의 과정을 거쳐 뭔가 타협점을 찾아갈 것으로 생각한다"며 "언제쯤이라고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타결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전망했다. 위 실장의 이 같은 발언은 전날 대통령실이 "시한에 쫓겨 손해 보는 합의에 서명할 수는 없다"는 뜻을 밝힌 것과 같은 호흡이다.
또한 위 실장은 한미 관세협상 후속 협의와 관련해선 "(협상이) 장기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실현 가능, 지속 가능해야 하고 국익을 적절한 범위에서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우리에게 큰 손해가 되는 합의는 지속 가능하지 않고 한미 관계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감당할 수 있고 합리적인 협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한미 관세 협상 장기화에 대비해 피해 기업 지원책 마련에 나서는 중
한편 정부는 한미 관세 협상 장기화에 대비해 기업들의 대미 수출 감소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지원 방안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수립한 '미국 관세 협상 후속 지원 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미국의 관세 부과로 어려움을 겪는 수출기업들을 위해 13조 6000억 원의 정책자금을 연내 긴급 지원할 예정이다. 이 정책 자금은 △한국산업은행 3조 원 △한국수출입은행 6조 원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4조 2000억 원 △중소기업진흥공단 4000억 원 등으로 구성된다.
또한 정부는 수출기업의 유동성 확보를 위한 무역보험 공급 규모를 역대 최대치로 늘리기로 했다. 정부는 현재 256조 원인 올해 무역보험 공급 규모를 270조 원으로 늘리고, 보험·보증료 60% 할인 대상을 기존 품목관세 업종에서 전 업종으로 넓힐 계획이다.
정부는 국익을 최대한 수호하기 위해 미국과의 관세협상을 호흡을 길게 하면서 끈질지게 이어가고 있다. 그 뿐 아니라 대미 수출 감소로 피해를 입을 기업들을 위해 천문학적 정책자금을 배정하고 무역보험 공급 규모도 역대 최대치로 늘리고 있다. 한마디로 국익수호를 위해 안팎으로 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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